“바울의 칭의론, ‘값싼 용서’ 전락해 정의 상실했다?”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칭의론의 사회적 해석’ 주제 세미나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아카데미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아카데미

한국신학아카데미 2024년 가을학기 학술세미나가 1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아카데미 세미나실에서 ‘칭의론의 사회적 해석’을 주제로 개최됐다.

이날 제1세미나에서는 김동춘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칭의와 정의: 정의의 관점에서 본 칭의 교리’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칭의론, 하나님 정의 위한 것 돼야
개인 차원 넘어 사회적 재구성을
칭의, 약자들 편 되어주는 것 본질
역사적 예수 환대 관점 재해석을

김동춘 교수는 “종교개혁 칭의론은 ‘값싼 용서’ 교리가 아닌, ‘하나님의 정의’를 위한 칭의론이 돼야 한다. 정의 없는 칭의론은 값싼 용서로 둔갑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정의는 사라지고 말았다”며 “또 다른 문제는 개인 내면의 실존적 죄에만 주목함으로써 사회적 차원에서 의로워짐은 간과했다는 것이다. 이제 칭의론은 사회적 차원에서 재구성해야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김 교수는 “칭의와 정의가 연결되지 않는 것은, 칭의는 구원 개념이고 정의는 윤리 개념이라는 전제 때문”이라며 “반면 정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사회적 칭의론은 사회적 관계에서 불의, 억압, 착취, 부당함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밀려난 자들, 실패한 자들, 희생자들, 약자들의 권리를 회복하고 그들의 편이 되어 주는 것이 본질이다. 그렇게 칭의란 정의론이 된다”고 설명했다.

정의 관점의 칭의론에 대해선 △바울적 칭의론과 복음서와 구약의 칭의론의 일치 △율법(구약)과 복음(신약)이라는 이분법 극복 △배타적 칭의론에서 환대의 칭의론으로 등을 주장했다.

김 교수는 “바울의 칭의론을 오히려 복음서의 하나님의 정의 관점으로, 즉 역사적 예수의 환대의 관점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며 “칭의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됨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의롭게 됨까지 거론해야 한다. 즉 인종차별과 성차별, 문화적 차별, 경제적 차별 등 집단 린치와 매도로부터 의롭게 됨을 말하고, 사회적 편견과 기존 도덕의식에 의해 비인격적 존재로 규정당하는 비인간성으로부터 의롭게 되는 사회적 차원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했다.

이신칭의 근본 이해 외면한 채
제임스 던 해석 너무 의존한 것
믿음 없이 사회정의 추구하면,
그리스도 통한 구원과 같은가?

다소 과격한 발제에 대해, 논평도 진행됐다. 정일웅 교수(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 소장)는 논평에서 “바울의 칭의론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개인의 불의한 내면의 죄가 중보자 그리스도로 용서받는’ 이신칭의의 근본 이해는 외면한 채, 오로지 사회 속에서의 정의 실현만을 말한 제임스 던의 해석에 너무 의존한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를 통한 칭의가 하나님의 정의와 동일하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없이도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행동하기만 하면 그것이 과연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동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김균진 교수(맨 왼쪽)가 논평하고 있다. 그 오른쪽은 김동춘 교수와 정일웅 교수. ⓒ아카데미
▲김균진 교수(맨 왼쪽)가 논평하고 있다. 그 오른쪽은 김동춘 교수와 정일웅 교수. ⓒ아카데미

전통 칭의론 대안 정의적 칭의론?
개인 변화와 인격적 측면 결여돼
인간 본성 이기적, 마음 변화부터
바울 칭의론, 정치적·혁명적 의미

김균진 교수(연세대 명예교수)는 “전통적 칭의론에 대한 발제자의 비판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사회적 개념으로서 ‘하나님의 정의’는 오히려 인격적 측면을 결여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며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가 회복된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각 사람, 곧 개인들이 정의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서 그들의 권리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본성에 있어 이기적 존재, 자기중심적 존재이기 때문”이라며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인간의 이기적, 자기중심적 본성의 변화이다. 이 본성이 변화되지 않는 한, 이 세상의 불의와 죄악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하나님의 칭의가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 회복과 그들의 편이 되어주는 것, 사회 속에서 정의롭게 사는 것’만을 뜻한다면,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며 “예수를 믿을 필요 없이, 사회적 약자 보호에 대한 구약 율법의 계명들을 철저히 지키고자 노력하면 될 것”이라고 발제자를 비판했다.

김 교수는 “바울의 칭의론이 사회정의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발제자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바울의 칭의론 속에는 무서운 사회정치적·혁명적 의미가 숨어 있다”며 “바울은 하나님과 개인의 직접적 관계를 주장함으로써 성직자들의 중재를 부인, 성직계급의 지배와 수탈에서 인간을 해방한다. 하나님 앞에(coram Deo) 서 있는 각 사람의 존엄성과 자유와 모든 인간의 평등함도 시사했다. 또 민족과 인종과 사회 계급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유기체적 하나 됨을 주장한다”고 풀이했다.

김균진 교수는 “루터의 칭의론도 당시 교황주의의 거짓과 수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모든 신자들의 사제직’을 선언함으로써 사회 계급 차별을 철폐하고, 근대 유럽 인권·해방 운동을 유발했다. 칭의론은 루터의 ‘종교개혁의 무기’였다”며 “유대교 지도자들과 교황주의자들이 바울과 루터를 죽이려 한 이유는 단순히 종교적·신학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정치적·경제적 특권이 깨지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바울의 칭의론은 단지 죄 용서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회적·정치경제적 정의와 직결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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