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벌써 2년, 이태원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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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선교사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안식 (10) 이태원 역에서

이윤재 선교사님이 지난 여름 한국 체류 당시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방문하고 전한 단상을 전해 드립니다.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이태원으로 올라가는 이태원역 지하도 계단.

▲이태원으로 올라가는 이태원역 지하도 계단.

간밤에 뒤척이며 잠을 잤더니 어깨가 뻐근했다. 요즘 잠을 잘 못 자는 것은 시차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무엇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잤지 하고 생각하니, 문득 이태원이 떠올랐다. 재작년 10월이었으니까 벌써 2년이 가까워 오는 이태원 참사는 그야말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할로윈 축제 때문에 모인 사람 중 159명이 사망하고 195명이 부상당한 이 안타까운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길을 나섰다. 인터넷에서 찾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증언하는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책을 사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타는 지하철을 묻고 물어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한 뒤, 나는 서둘러 이태원역으로 향하였다.

이태원 지하철 팻말이 보이는 순간,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 아무 일도 없었을 것 같은 평범한 지하철이 2022년 10월 29일 저녁,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피눈물난 지하철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사고가 일어난 지점에 도착한 나는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넓이 약 2미터, 길이 약 25미터의 이 작은 도로에서 그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다니. 젊은이 300여 명을 생사의 기로에 몰아넣은 작은 길은 지극히 평범한 길이었다. 그렇다. 천사도 악마도 항상 평범의 얼굴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쏜살같이 떠밀려 내려갔던 길을 천천히 걸었다. 죽은 이들은 아무 말이 없고, 살아 있는 이들은 그들을 위해 특별한 기억을 남기지 않았다. 길의 맨 끝에 ’10.29, 기억과 안전의 길(October 29, Memorial Alley)’이 전부였다. 죽음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벼운 기념이었다. 다시 걷고 또 걷는 사이, 뉴스로만 들었던 사람들의 절규와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태원 길을 돌아보는 이윤재 목사.

▲이태원 길을 돌아보는 이윤재 목사.

해밀턴 호텔과 세계음식거리를 통과하는 이 거리에 사람들이 몰린 것은 그날 저녁 10시경. 올라가고 내려가는 사람들로 순식간에 마비를 보인 이 도로는 사람들이 우왕좌왕 넘어지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앞으로’, ‘뒤로’를 외치는 사람들 가운데 넘어지고, 그 위를 덮치고, 또 넘어지고, 그 위에 사람들이 쌓이면서 숨을 못 쉬고 의식을 잃은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위기를 직감한 사람들이 수없이 경찰에, 소방서에 살려 달라고 신고를 했지만,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참여자 중에는 할로윈 축제에 처음 참석한 호기심 많은 고등학생도 있었고, 모처럼 즐거운 데이트를 위해 분위기 좋은 이태원에서 만난 20대 커플도 있었다. 할로윈을 좋아해서 매년 온 사람도 있었고, 할로윈과 상관없이 친구와 함께 구경 나왔거나 어머니와 쇼핑하러 나온 자녀들도 있었다. 도로의 끝을 지나 해밀턴 호텔 쪽으로 걸었다. 한국 어디서나 볼 수 이 작은 뒷골목, 사람들은 왜 그날 다른 데를 두고 이곳에 왔을까?

어쩌다 이곳에 온 사람 중에는 결혼식 날짜를 잡고 웨딩플래너를 만나러 온 예비 부부도 있었다. 늙으신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아들도 있었다. 어머니를 동생에게 맡기고 호주로 유학을 떠난 언니도 있었다.

▲이태원 길에서 기도하는 이윤재 목사.

▲이태원 길에서 기도하는 이윤재 목사.

또한 그들 중에는 간신히 살아 남았지만 극심한 죄책감과 2차 가해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159번째 사망자도 있었다. 지금도 가족들은 밤잠을 자지 못하고 신음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식이 돌아오지 못하는 긴 밤, 그들은 소주를 마시고 밤새도록 울고 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건이 일어난 후 보여준 우리의 모습은 선진국이라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무 책임이 없다는 정부 관계자들, 마지막까지 견디다 안다깝게 목숨을 버린 꽃다운 16살의 죽음 앞에 국무총리가 했다는 말, “그는 더욱 강해졌어야 한다”는 말은 사람이 지위가 높다고 사람됨의 수준도 높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특별히 대통령이 보인 태도는 그에게 권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공감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에게 이태원은 함께 울어야 할 백성의 아픔이 아니라 빨리 처리하고 넘어갈 골치 아픈 사건임이 분명했다.

노무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의 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아마 그는 허름한 잠바를 입고 유족들과 어울려 소주 한 잔 하면서 함께 울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유족들에게 특별법보다, 법적 책임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대통령이 알았으면 좋겠다.

▲사들고 간 책 &lt;우리 지금 이태원이야&gt;.

▲사들고 간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한번은 딸이 우리 앞에서 자기 사춘기 때 이야기를 꺼냈다. 사춘기 때 예민하게 자랐던 딸은 엄마에게 ‘그때 엄마가 나를 더 잘 잡아 주었다면, 그때 엄마가 나를 더 잘 지켜주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뜬금없는 소리를 사위가 있는 자리에서 했다는 것이다. 평생을 키워준 은혜는 잊어 버리고 기억도 안 나는 사춘기 때 이야기를 하는 딸을 보는 아내의 표정은 순간 일그러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놀라운 자제력을 보인 아내는 ‘아이구. 그랬니? 미안하다, 엄마가 몰라줘서. 엄마가 정말 미안해’. 놀라운 반전은 그 다음 순간 일어났다. ‘아니야, 엄마,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래. 그리고 지금은 괜찮아’. 아내의 짧은 인내로 위기를 모면한 우리는 부모는 죽을 때까지 자녀에게 미안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왜 대통령은 백성들에게 져 주지 못하는가? 왜 대통령은 항상 백성들을 이기려고만 하는가? 국민들이 원하는 대통령은 검사 대통령이 아니라, 아버지 대통령이다. 만일 그가 한 번이라도 나는 이 백성의 아버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가 잘못했다고 하는 말을 하는 데 조금도 주저할 일도 없고 백성들도 그가 그렇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뼈아픈 질문을 한국교회에게도 던지고 싶다. 이태원 참사 때 한국에 없어서 잘 모르지만, 일부 교회는 이 사건을 죄의 결과는 형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죄의 심판, 왜 믿는 사람이 귀신축제에 갔느냐? 젊은이의 탈선 등의 주제로 이해했다고 들었다. 물론 마음으로 안타깝게 여기고 그들의 고난에 동참한 교회들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난을 당할 때 교회의 일은 고난에 대해 설교하는 것보다 고난에 동참케 하는 것이다. 나무라는 작은 시가 있다.

나무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시를 썼는가?
더 이상 무슨 시를 덧붙이겠는가?
다만 몇 달 동안 사람을 껴안은 적이 없어
오늘
나는 소나무를 껴안는다.

▲텅 빈 이태원 길의 모습.

▲텅 빈 이태원 길의 모습.

우리는 고통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물론 선포와 해석은 교회의 사명 중 하나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고통을 껴안는 것이다.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다. 고통에 대해 연구하고 질문하는 것은 필요하다. 나무에 대해 우리가 별 일을 다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나무에게 가까이 다가가 따뜻하게 한번 안아주는 것이다.

류시화의 시가 있다.

내가 배가 고플 때
당신은 인도주의 단체를 만들었소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당신은 내 석방을 위해 기도해 주었소
내 몸에 걸칠 옷이 없을 때
당신은 내 외모에 대해 도덕적 논쟁을 벌였소
내가 병들었을 때
당신은 무릎꿇고 신에게 기도했소
하지만 그때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이었소
내가 집이 없을 때
난 당신이 당신의 집에서 하루 재워주길 원했소
내가 외로울 때
당신은 날 위해 기도하려고 멀리 떠났으나
나는 당신이 내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소
내가 배고플 때
내가 갇혔을 때
내가 외로울 때
당신은 어디 있었소?

지나간 6년, 내가 아프리카에 있었던 그 짧은 기간에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가 이토록 빨리 변해버린 것에 대해, 나는 그저 놀랄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는 극심한 논쟁적 사회가 되었다.

TV를 틀고 유튜브를 보면 내가 서야 할 노선은 분명해진 듯 보인다. 만일 내가 다른 노선에 선다면 나는 돌팔매질을 당할 각오해야 하며, 아마도 심각한 싸움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몇 년만에 다시 돌아온 한국 사회는 공감은 사라지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의 차거운 논쟁만 남은 것같다. 특별히 교회는 그동안 비호감인 집단에서 적대적 집단으로, 적대적 집단에서 무관심의 집단으로 변한 것 같다. 교회를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위해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데, 세상은 세상을 위해 존재하고 교회는 교회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지만,
또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존재한다.
세상은 그래도 예수를 좋아하지만
교회는 예수를 따르지 않는다.
만일 교회가 세상이 예수를 좋아한 만큼이라도 그를 좋아한다면
교회는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게 될 것이고
세상은 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교회만 사랑하고
세상은 세상만 사랑한다

이제 우리는
덜 설교하고 더 사랑하고
덜 물질적이 되고 더 희생적이 되고
덜 교회 안에 있고 더 교회 밖에 있고
덜 교인을 위해 있고 더 세상과 함께 있을 수 없을까?
그것이 이태원 형제, 자매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외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가?

이윤재 선교사

우간다 쿠미대학 신학부 학장
Grace Mission International 디렉터
분당 한신교회 전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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