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록, 한 점의 그림] 연작 ‘예수의 생애’
성경 테마 역사적 회화 완성
조선 풍속화 양식 예수 생애
제한된 색조, 엄숙함 증폭해
‘집단적 기억의 형태’로 계승
사회봉사, 더 깊은 예술세계
예술 탁월성 의미 있게 사용
운보 김기창(1914-2001)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아내 박래현의 처가집이 있는 군산 인근의 구암동에 피난짐을 풀었다. 이 무렵 김기창은 조선시대 풍속에 따라 성경을 테마로 한 역사적인 회화작품 30점을 완성하게 된다.
김기창이 어머니 한윤명 여사를 따라 유년 시절부터 신앙의 가정에서 성장하였고 기독교 화가였던 스승 김은호(1892-1979) 화숙(畵宿)에서 지도를 받았으므로, 예수의 생애 연작을 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을 것이다.
자신도 그가 제작한 숱한 작품 가운데 <예수의 생애> 연작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장애인 대부로 우뚝 선 인고 80년”, 동아일보,1992. 4. 26)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술 재료를 구하기 힘든 전쟁 기간 중에도 “나는 다른 모든 일을 전폐하고 이 성화 제작에 내 온 심혈을 다 쏟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기창의 예수 일대기는 총 30점으로 구성돼 있다. 수태고지부터 아기 예수의 탄생, 동방박사들의 경배, 세례, 산상설교, 예루살렘 입성, 그리스도의 수난, 십자가 책형, 부활, 승천 등 예수의 생애를 망라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연작은 우리가 종전에 미술책에서 보던 서구의 그림과 사뭇 다르다. 지필묵으로 단련된 동양화가답게 수묵과 채색의 농담이 풍부하고, 능숙한 선으로 인물들의 동작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있다. 김기창은 예수의 생애를 복음서에 대한 고증과 연구에 기초하면서도, 기독교 서사에 풍속화 양식을 접목시켰다.
작품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조선이 배경이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는 병사는 ‘조선의 관군’, 마리아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 막달라 마리아는 ‘양반집 규수’, 형을 집행하는 백부장은 ‘사또’, 예수를 시험하는 마귀는 ‘도깨비’, 천사는 ‘선녀’로 각각 표현했고, 예수의 제자들은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있으며, 갓 쓴 예수는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린이를 축복하는 장면에선 ‘두루마기를 입은 아이’들이 엄마의 손을 잡고 있거나 품에 안겨 예수님을 만나고 있으며, 산상설교 장면에선 등에 봇짐을 메고 부채를 들고 있는 남정네에서부터 사대부들, 장옷을 걸치고 있는 부녀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마굿간은 말 대신 닭과 소가 뒤섞여 있는 ‘외양간’으로, 동방박사들이 경배를 드리는 곳은 ‘허름한 초가집’으로 표현됐다.
그림을 제작할 당시 김기창은 개화기 풍속화가 기산 김근준이 자신과 같이 풍속화풍으로 성화를 제작한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선례가 있었기에 작가 자신이 예수의 생애를 풍속화풍으로 제작하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예수의 생애를 조선 시대 풍속으로 재해석하였다는 것은 오광수의 지적대로 “기독교가 외래 종교가 아니라 이미 토착화된 종교로서 탈바꿈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의 생활과 풍속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작가로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작품을 최초로 권한 사람은 미국 선교사 앤더스 K. 젠슨(Anders K. Jensen, 1897-1956)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창도 젠슨 선교사가 전쟁 시기 군산을 찾아와 이 주제의 연작을 권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운보 김기창 성화집, 예수의 생애』, 경미, 1980, p.10).
그런데 우향 박래현은 젠슨 선교사가 작품을 권한 시기를 일제시대로 기억한다. 일본이나 중국에도 각자 나라별 다른 모습으로 예수의 생애를 그린 적이 있으니, 당신도 장래 한국의 성화를 완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우향, “빛의 메아리”, 『주부생활』, 1967년 3월호).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젠슨 선교사의 전쟁 기간 행적에 있다. 젠슨은 6.25 전쟁이 발발하는 그날부터 3년여 간 인민군 포로로 억류돼 있다가 1953년 5월에 석방돼 사실상 김기창을 만나기 어려웠기에, 박래현의 기억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1932년 어머니를 여읜 후 슬픔에 잠겨 있던 김기창을 위로하면서 한 말이, 역사에 길이 남을 명화를 탄생시킨 계기가 된 셈이다.
<예수의 생애>가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1954년 화신백화점 화랑에서였다. 화신화랑에서 열린 <운보 성화전>에는 그가 제작한 성화 29점이 출품됐다. 예수의 탄생에서 공생애, 죽음과 부활까지 망라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예수의 수난’이었다. ‘예루살렘 입성’, ‘최후의 만찬’, ‘겟세마네의 기도’, ‘빌라도 재판’, ‘수난당하다’, ‘십자가를 지시다’, ‘십자가에 달리심’, ‘시신을 운구하는 제자들’ 등 연작 중에서도 특히 수난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왜 예수의 영광이 아니라 수난에 초점을 맞췄을까. 예수께서 불쌍한 죄인을 위해 오시고 종국에 몸까지 내어주셨다는 그분의 한량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의 참화를 겪은 후 현실에서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던 전재민(戰災民)에게 그의 그림은 각별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우리 민족이 고난을 이기는 데 상당히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예수의 생애> 연작은 이후 1970년 뉴욕문화센터에서 가진 <예수 성화전>, 그리고 1978년 경미화랑에서 발간된 화집, 1993년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운보 김기창 팔순기념 대회고전,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바보천재 운보 그림전>, 2014년 서울미술관의 김기창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회 <예수와 귀먹은 양>에 각각 선보였다.
그리고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베를린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에서 개최된 <루터 이펙트>(Luther Effect, 500 Years of the Reformation) 초대, 2023년 쿰란출판사가 발간한 『운보 김기창 성화집 예수의 생애』, 2024년 서울미술관의 <더 라이프 오브 지저스>로 이어진다.
미술사학자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 교수는 그림의 제한된 색조에 주목하면서 마치 예술가가 그리스도의 고통과 그에 대한 궁극적 승리에서 위로를 얻은 것과 같은 예수 이야기의 엄숙함을 증폭시켰다고 보았다.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은 우리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집단적 기억의 형태’로 계승되고 있는 셈이다.
김기창은 장애인 복지 증진에도 앞장선 행동주의자였다. 그 자신이 소년 시절 장티푸스 후유증으로 무언(無言)과 불청(不聽)의 장애를 껴안고 살았던 화가로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지원 사업을 펼쳤다.
복지사업을 펴는 데 필요한 재원은 물론 주위의 도움도 있었지만, 대부분 작가 자신이 충당하였다. 이렇듯 작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앞장섰을 뿐 아니라, 생활 자체가 예술이며 사회봉사와 섬김이 더 깊은 예술 세계를 만들어준다고 여겼다.
“예술이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인데, 궁극적인 아름다움은 남을 위한 봉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작업을 통해서는 정적인 기쁨을 얻을 수 있고 봉사는 동적인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화가가 예술만을 위해 살다보면 환쟁이로 전락하지만 봉사가 곁들여지면 정말 예술가가 되지요.”(『운보 김기창 전작도록』, 도서출판 API, 1994, 4권, p.43)
작가는 그림만이 아니라 삶의 지평을 창의적으로 열어가는 것이 책임있는 예술가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예술적 탁월함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의미 있게 사용한, 일찍이 예술의 공공선에 대해 자각한 예술가였다.
서성록 명예교수
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