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실천신학회 제47회 학술대회
인문학과 융합·창조적 사고 강조
한 분야만 탁월한 사람은 실수해
나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능숙하게 다룰 나만의 무기 필요
한국복음주의실천신학회(회장 신성욱 교수) 제47회 정기학술대회가 ‘인문학과 실천신학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16일 오전 경기 용인 남서울비전교회(담임 최요한 목사)에서 개최됐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이정일 목사(문학연구공간 상상 대표)가 ‘어떤 변화와 경쟁에도 우리를 살아남게 할 힘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했다. 그는 목회자와 신학자들 앞에서 인문학과 융합적·창조적 사고를 강조하면서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나만의 연장, 나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권면했다. 이를 위해 독서, 특히 소설 읽기를 추천했다.
이정일 목사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244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2010년 발매 중단을 선언할 정도로, 이제 과거의 지식은 유효하지 않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리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빠르게 읽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해졌다”며 “문제는 내가 그저 챗GPT를 쓰는 소비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새 이야기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creator)가 될 것인가다. 크리에이터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하든 남이 만들어준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인문학은 크리에이터의 삶을 살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제 한 분야에만 탁월한 사람은 실수할 가능성이 크고, 한 분야의 시각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지성과 감성, 인성과 영성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며 “지금 MZ세대의 관심사는 성장과 전문성이다. 이 두 가지만 갖추면 지금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나’라는 브랜드가 무엇이고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느냐를 알아야 한다. 시공간 구분은 의미 없어졌고, 개인이 미디어이자 브랜드가 됐다. 나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야기는 모의비행장치처럼 우리 현실과 똑같은 문제를 시뮬레이션하되, 더 극한 상황으로 진행한다. 작가는 주인공을 곤경에 빠트리고,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때로는 죽게도 한다. 신기한 것은 뇌는 이것을 진짜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이라며 “덕분에 우리는 현실이라면 위험했을 삶의 난제를 안전하게 풀어볼 기회를 얻게 된다. 독서는 소통할 수 있는 공통된 경험을 만들어준다”고 전했다.
이 목사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나누게 된다. 함께 나눌 경험이 풍성할수록, 세대와 세대가 돈독해진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은 이야기로 생각하는 것”이라며 “2-3세대가 공유할 토대를 만들기에 문학이 좋고, SF는 무난한 장르다. 어른이 된다는 건 현실과 순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라는 걸 『호밀밭의 파수꾼』이 말하고, 삶이 왜 모순되고 버거운지 양귀자의 『모순』이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어떤 경험이 내면에서 생겨난다. 그 경험을 공유하고 다음 세대로 전하려고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야기 덕분에, 삶을 조급하지 않게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정일 목사는 “우리는 변화와 혁신을 말하지만, 실제론 전통과 경험에 의존해 살 때가 많다. 새 것을 받아들이려면 기존 것을 놓아야 하고, 비범한 걸 찾아내려면 전혀 다른 것을 해본 엉뚱함이 있어야 한다”며 “뭔가 살짝 비틀 때,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이 작은 차이가 풍경을 바꾸고, 1등과 2등을 결정짓는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자유로운 사고를 주셨는데, 우리는 왜 거기서 멀어졌을까”라고 반문했다.
이 목사는 “스티브 잡스는 사업이 벽에 부딪혔다고 느끼면 인텔 CEO 앤디 그로브에게 전화해 고민을 나누거나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을 읽었다고 한다. 바쁜 그가 시를 읽을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랍다. 이게 유연함”이라며 “유연하면 호기심이 많아져 비약적 도약을 이뤄낸다. 호기심과 유연함이 만나면 통찰은 저절로 발현한다. 반대로 쉽고 단순한 일이 좋고, 사는 게 지루하고 삶에 재미 없으며, 호기심과 유연함이 사라졌다면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같은 사건을 신문 기사로 읽을 때와 소설로 읽을 때 확연히 다르다. 소설은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작가는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며 언제 어디서 왜 그가 실패했는지 풀어낸다. 신문 기사도 이런 사실을 육하원칙으로 설명하지만, 효과가 다르다. 정보는 섭취 후 배설되지만, 느낌으로 섭취되면 다르다. 독자는 주인공이 변화하듯 자신도 변화를 겪는다”고 했다.
또 “사고의 확장이 필요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 ‘왜 그렇지?’ 반문할 때가 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으나 실제론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걸 인지할 때”라며 “이게 자기 인식의 순간이고 사고가 확장되는 순간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는 이런 연습을 한다”고 소개했다.
구체적으로는 “작가가 툭툭 던지는 복선들, 대화들, 문장들을 처음엔 잘 간파하지 못하지만, 완독 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오면 갑자기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인물과 사건, 대사와 장면, 복선과 상징이 연결되면서 숨은 그림이 나타난다”며 “이때 우리는 경이로움을 느끼고 그 즉시 뇌에 신호를 보낸다. 내가 느끼는 감각이 섬세할수록 전두엽은 더 빠르게 반응한다”고 했다.
그는 “인간이 가진 독창성은 바로 이 전두엽이 하는 일이다. 전두엽은 뇌 앞쪽에 있으며 인지 기능을 총괄한다. 즉 미래를 계획하고 예측하며 현재의 문제를 과거 경험에 비춰 해결한다”며 “전두엽은 근육처럼 쓰면 쓸수록 활성화되고, 독특한 건 답을 보지 않고 문제를 풀려 애쓸 때 크게 활성화된다는 사실이다. 전두엽을 활성화하는 데 갈등·암시·상징·복선이 뒤얽힌 서사인 소설은 효과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이정일 목사는 “지금은 100세 시대이고, 한 가지 일만 하며 사는 시대는 끝났다. 미래학자들의 예측에 의하면 지금 초등학생 이하는 직종이 다른 직업을 적어도 7-8번 바꾸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낯설고 다양한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론 시대 변화가 너무 빨라져, 새로운 분야를 빠르게 이해하는 힘이 필요하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려면 능력보다 상황을 빠르게 해석하는 힘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이 목사는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전 세대에 걸쳐 퇴보하고 있다. 정보 사용 능력은 최상위권인데 해석 능력은 형편없다. 티머시 켈러나 하비 콕스의 책을 읽으며 놀라는 것은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게 뭔지 정확히 짚어주기 때문”이라며 “팀 켈러나 하비 콕스의 책을 읽으면 우리가 서 있는 삶의 자리가 보이고, 어떻게 하면 바로잡을 수 있는지 감을 잡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끝으로 “타자가 고민하는 경우는 투수에게 결정구가 있을 때다. 결정구가 없는 투수는 대개 초구로 빠른 직구를 던진다. 이것을 아는 타자는 느긋하다”며 “투수가 공을 던졌는데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진다. 스플리터다. 일단 휘둘렀으니 도중에 멈출 수 없어 헛스윙하게 된다. 투수가 확실한 결정구를 던지듯, 우리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나만의 연장, 나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후 이승진 교수(합동신대)가 ‘언약 해석학에 따른 성경해석과 강해설교를 위한 원리화’, 최창국 교수(백석대)가 ‘체화된 자아(인격)로서 몸과 영적 생명-삶의 상호성’, 김대혁 교수(총신대)가 ‘옥한흠 목사의 로마서 설교 분석: 저자의 의도성과 청중 맥락화의 관점에서’, 최승근 교수(장신대)가 ‘세례의 다양한 모델’, 장유정 교수(침신대)가 ‘기독교적 가르침의 실제: 초등과학 교육과정 재구성’, 이재형 교수(침신대)가 ‘히브리서 10장 1-18절의 구조적·문학적 분석을 통한 본문이 이끄는 설교로의 적용’을 각각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