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담아낸 은혜, 윤민식 작가
세 번 밑 색칠 작업, 죄 사함 과정
그림을 통해 찾아가는 하늘의 길
아름답고 영롱한 빛 같은 형태로
‘주님과 거니는 시간들’ 그려내다
하트, 하나님 사랑이자 주님 심장
각진 부분이 없이, 서로 둥글둥글
“캔버스라는 공간에서 그분은 늘 친밀하고 따뜻하게, 때론 단호하고 거룩하게 다가오신다. 관계의 어려움으로 힘들어할 때는 친구가 되어 회복의 모양으로 다가오시고, 은혜로 충만할 때는 형형색색으로 사랑을 표현하시며, 홀로 외로워할 때는 사랑 가득한 말씀을 들려주신다.”
윤민식 작가가 쓰고 그린 <그분이 나의 영혼에 아름다운 빛깔을 담아놓았다>는 그림을 통해 하늘의 길을 찾아가는 작가의 여정을 담았다. 작가의 그림을 감상하는 순간, 무장해제돼 그분이 계신 천국으로 떠나는 듯한 환상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작가의 작품들은 11월 한 달 동안 ‘주님과 거니는 시간’이라는 주제로 새문안교회 내 새문안아트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극동방송 내에 위치한 극동갤러리를 비롯해 성도교회 내 성도갤러리, 일산 거룩한빛광성교회 올리브향기 등 다양한 곳에서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다.
강태성 박사(AD갤러리 대표)는 윤민식 작가의 작품에 대해 “아름답고 영롱한 빛과 같은 형태로 세상을 그려낸다. 작가는 나무와 별, 해, 달, 하트, 꽃잎 등 다양한 사물을 단순화시켜 아름다운 색으로 옷 입힌다”며 “그 색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파스텔조로, 다채로우면서도 은은하게 꿈과 사랑을 품을 듯한 형태를 가득하게 만든다. 반짝이는 듯한 영롱한 물체와 사랑, 인내 등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를 선보인다”고 평론했다. 다음은 윤민식 작가가 들려주는 그림과 글 이야기.
그분이 나의 영혼에 아름다운 빛깔을 담아놓았다
윤민식 | 미래사CROSS | 216쪽 | 18,000원
-원래부터 신앙적인 의미를 담은 그리셨나요.
“실은 대학원(성신여대 조형대학원)에서 기독교 미술을 했어요. 성경 속 이야기를 시대별 화풍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르네상스부터 아르누보,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연구하듯 그렸죠. 논문도 그런 내용으로 썼고, 대학원 때부터 집중적으로 시작했죠.
예를 들어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는 장면은 아르누보 화풍으로 그려 봤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하는 장면은 찢어 붙이기로 표현했어요. 이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작업을 꾸준히 해 왔죠. 그때는 말씀 중심으로 묵상하듯 그렸어요. 책 2장에 바벨탑이나 아벨과 가인의 제사, 믿음의 그릇 등에 대한 내용이 있어요. 관련 구절을 묵상해서 그린 다음 글을 쓴 내용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잠시 손을 놓았다가, 다시 시작하면서 방향을 조금 바꿨어요. 예전에는 십자가를 드러내 그리기도 했고, 사물을 중심으로 그렸어요. 다육식물은 원래 광야에 살던 것이라 크리스천의 삶과 비슷하게 느껴졌어요. 다육이를 키우면서 놀랐던 건, 깜빡하고 물을 안 주면 말라 죽어가는 거예요. 그러다 생각이 나서 물을 주면 다시 살아나죠.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비슷하죠? 광야 같은 삶 속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빛줄기 하나면 다시 살아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생각으로 다육이를 그렸죠.
얼마 전엔 아이들 데리고 터키 여행을 갔는데, 사이프러스 나무가 많았아요. 유럽이나 중동 지역 사이프러스 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어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그런데 사이프러스 나무도 하늘로 뻗은 그 가장 윗부분을 잘라 버리면 고사한다는 설명을 듣고 큰 울림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이프러스 나무도 그리게 됐죠.
그림을 집중해서 계속 그리다 보니, 계속 새로운 게 나와요. 하트는 어려서부터 그리는 것인데, 저는 놀면서도 ‘하트 나무’를 자꾸 그렸어요. 그 하트가 제 그림 속에서, 나중에 그리스도의 심장이 됐어요. 그렇게 요즘 그림들의 시그니처가 됐죠. 그림을 보시면 나무 줄기마다 ‘하트’가 열려 있어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안에서 사랑이 이렇게 자라나는 거죠. 그렇게 변해오다, 이제 나무까지 온 거예요.”
-그림을 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습니다.
“책 2장 속 그림은 대부분 초록과 굵직한 색들을 썼어요. 아이들이 어리고 제 신앙도 어렸을 땐 계속 하나님과 씨름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책에도 예전에 썼던 글은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들이 많고, 그림도 살짝 어두워요. 하지만 요즘에 쓴 글은 확정적인 내용이 많죠.
그림을 다시 시작하면서 처음엔 아이들 진학 문제나 믿지 않는 남편과의 갈등 등으로 색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느낌이지만, 그림에 집중하면서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어요.
항상 기도하면서 그리려고 해요. ‘그림 작업량만큼 기도하자’는 것이 제 목표죠. 그렇게까지 기도는 못하지만, 매일 아침 1시간씩 기도는 지키려고 노력해요. 기도한 후 찬양을 틀어놓고 그림을 그리는데, 처음엔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시는 게 아니라, 제게 가장 필요한 것부터 회복시키셨어요. 바로 웃음이었죠. 웃음을 회복시키시니, 다음부터는 제가 너무 행복해졌어요. 제가 원하는 걸 주시진 않았지만, 제게 기쁨을 주셨어요. 교회 사람들이 ‘너 뭐가 그렇게 행복하냐’고 할 정도로요.
하나님께서 그림을 통해 제 삶을 회복하셨듯 이 그림을 보시는 분들이 행복과 평안, 위로와 회복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계속 기도하고 있는데, 초창기 그림을 보고도 사람들이 위로와 평안을 느낀다고 고백했어요. 그러면서 청소년 시절 행복할 때 썼던 색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잃었던 모습을 되찾는 것처럼, 잃었던 색들을 찾았어요. 제 작품이 밝아진 과정입니다(웃음).”
-남편께서 아직도 믿지 않으시나요.
“네. 그런데 제 그림이 되게 밝으니, 이유를 물어 보죠. 그래서 답했어요. 한 4년 전쯤 하얀 캔버스를 쳐다보면서 뭘 그릴까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우리 민식이를 위해 뭘 그리지’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때 이 하얀 캔버스가 마치 저 같았어요. 하나님께서 처음엔 저를 이렇듯 깨끗하게 만드셨잖아요. 그런데 아담과 함께 원죄가 들어왔고, 다시 그리스도로 인해 사해졌죠.
그때부터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얀 캔버스를 ‘거룩한 나’로 보고, 거기다 검은색을 칠해요. 그 다음 그리스도의 보혈인 붉은색을 칠하고, 보혈로 깨끗해진 흰색을 칠해요. 그리고 나서 제가 원하는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관람객들이 ‘이렇게 밝고 아름다운 그림 속에 그 색들이 묻어 있다’고 물어보세요. 이번 전시에서도 그렇고요.
하나님의 사랑이 눈으로는 안 보이잖아요. 하지만 죄 사함의 과정이 다 들어 있죠. 그것이 복음이죠. 이 그림에 예수님과 십자가는 보이지 않지만, 그런 기도를 담아서 그렸기에 복음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믿지 않는 분들이 그림에 대해 물어보면 이렇게 말씀드리는데, ‘이게 복음이네요’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어떤 분들은 ‘그런 색이 깔려 있어서, 그림이 화사하지만 묵직하다’고 하시고요. 한 분은 ‘화려하고 화사한 것 같은데 차분하고, 차분한 것 같은데 화려하고, 어두운 것 같은데 밝고, 밝은 것 같은데 어둡다’고 하셨어요.
이런 반응들을 의도한 건 아니지만, 기도는 했죠. 그림 제목들도 ‘회복, 치유, 사랑, 절제’ 같은 것들이 많아요. 저는 구상은 다 해놓지만, 스케치 없이 바로 그려요. ‘희락’에 대해 그리기로 했다면 제 영혼의 기쁨을 갖고 희락을 표현하고, 절제를 그린다면 절제에 대한 색을 고민하겠죠. 삶 속에서 어떻게 절제하고, 어떻게 하면 절제를 이룰 수 있으며, 절제했을 때 감정이 어떤지 등을 생각하면서 그립니다.”
-글도 인상적인데, 그리면서 같이 쓰신 건가요.
“과거에 써 놓은 글들도, 새로 쓴 글도 있어요. 예전에도 ‘그림으로 묵상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열 처녀의 비유: 기름은 준비되었는가’, ‘아벨과 가인과 제사’ 하는 식으로 그림마다 글을 썼어요. 제가 정말 그리고 싶은 작품이 100호 정도의 ‘최후의 만찬’이에요. 20년 전부터 그리고 싶었고 지금도 머릿속에 구상은 있는데, 그리는 게 쉽지 않네요. 이미 나와 있는 작품들과는 다른 ‘최후의 만찬’을 그리고 싶습니다.
또 하나 주님 앞에서 그리고 싶은 그림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휘장이 찢긴 장면이에요. 기도를 좀 더 쌓고 인생과 하나님에 대한 묵상이 좀 더 깊어진 다음 그리려 합니다. 지금 그리는 절제나 희락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그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 장면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거든요. 그래서 그 그림만 봐도 예수님의 고통이 느껴지도록 그리고 싶어요.
저는 원래 대학에서 디자인 전공이었어요. 직선이나 곡선도 정확하게 그릴 정도로 디자인 훈련을 많이 하고 채색에도 민감했죠. 그러다 보니 회화를 너무 그리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보렴’ 하시는 것 같았어요.
책을 내기로 결정한 뒤, 출판사에서 글은 진실하게만 써 달라고 하셔서 그렇게 노력했고, 짧지만 정말 임팩트 있는 삶의 모습들을 썼어요. 서너 줄 아니면 여섯 줄이라도요. 좀 더 길게 쓴 글들도 있죠. 제 믿지 않는 친구가 책을 읽더니 ‘성경 말씀도 좋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림에 맞는 성경 말씀도 곳곳에 넣었거든요.”
-끝으로, 관람객들 반응은 어떤가요.
“보시는 분들마다 너무 평안하다고 하세요. 빛깔에서 주는 평안함이 있다고요. 실은 색이라는 것이, 잘못 쓰면 굉장히 촌스럽거든요. 저는 보색을 많이 쓰는 편인데, 반대 색깔들이 어우러져서 안정감을 느끼게 되죠. 하지만 보색도 잘못 쓰면 다 비슷하게 어우러지지 않고 서로 비집고 나올 수 있어요.
제 작품들의 특징 또 하나는 크고 작은 꽃들이에요. 동그라미도 크고 작은 것들이 다양하죠. 그런데 어떤 것이 더 잘 보이느냐고 물어 보면, 어떤 작품에선 큰 것이 잘 보이고, 어떤 작품에선 작은 게 잘 보인다고 하세요. 저는 이게 우리 인생과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어떤 사람은 크게 잘 된 것 같지만, 작은 것이 더 빛날 때가 있죠. 바탕색과 대비를 많이 주면, 작아도 툭 튀어나와 보이거든요. 다른 사람들의 삶이 훨씬 커 보일 수 있지만, 우리의 작은 삶이 하나님 앞에서 더 반짝일 수 있죠. 그렇게 표현한 이유입니다.
자녀를 축복한다거나 평안을 표현할 때 쓰는 색들이 있어요. 그런 데서 차이가 있고, 나무의 위치에 따라서도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죠. 나무가 다 하트로 띠 띄워져 있는데, 이는 ‘사랑으로 띠 띄우라’는 의미입니다. 하트는 예수님의 심장을 나타내기도 하고, 너의 심장이자 나의 심장이죠.
동그라미는 어떤 기억, 좋거나 나쁜 기억, 슬프거나 아픈 기억들을 의미해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우주도 되고요. 그렇게 겹쳐 있는 동그라미들은 하나님 안에서 함께 어우러짐을 뜻하고요.
저는 각진 걸 싫어해요. 보시면 알겠지만, 제 그림엔 각진 부분이 없어요. 각이 있으면 모서리끼리 부딪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잖아요. 그런데 둥글둥글하면 서로 스무스하게 넘어가겠죠. 싫어도 좀 넘어가고, 아픈 것도 넘어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