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한 삶 2024년 12월호 발행인의 글]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다윗의 죄가 사울의 죄보다 결코 작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다윗의 죄가 훨씬 심각해 보인다. 만약 한 나라의 왕이었던 사울의 죄와 다윗의 죄가 각각 밤 9시 TV 뉴스에 나온다면, 국민들 보기에 누가 더 악하다고 생각하겠는가.
사울이 지은 죄는 적어도 국민들에게는 이해받을 수 있는 죄일지 모른다. 하지만 다윗이 범한 죄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극악한 죄이다. 유부녀 밧세바와 간통했을 뿐더러, 그 죄를 숨기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살인했다. 이것은 하나님께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죄를 범한 것이다. 게다가 우리아 장군은 얼마나 충직한 부하였던가.
밧세바를 임신시킨 사실을 감추기 위해 전쟁터에 있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불러들이고, 아내와 같이 잠자리를 하도록 휴가를 준다. 하지만 충직했던 우리아는 전쟁 중에 어찌 자기 혼자만 쉴 수 있냐며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술도 먹여 보지만 그럼에도 우리아는 집에 가지 않는다.
이런 충신 앞에서 다윗의 양심이 깨어지지 않았고, 결국 전쟁터에서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적군의 칼에 의해 죽게 하는, 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시고 견딜 수 없으셨다. 그래서 다윗이 심은 대로 그의 집안에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을 말씀하신다.
이러한 다윗의 죄가 공개돼 성경에도 기록되었으니, 당시 백성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았겠는가. 한 나라의 존경받는 왕이 이런 죄를 지은 것이 드러난다면 어떻게 백성들 앞에 얼굴을 들겠는가. 이것은 지도자로서 자기의 전 존재가 걸린 문제였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 전 존재와 삶의 모든 것이 무너질지언정, 죄가 지적되었을 때 변명하지 않고 회개하였다. 그는 사람들 앞에 죄가 폭로되어 국민들에게 버림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을 더 두려워하였다.
성령님이 우리의 죄를 지적하실 때, 우리는 얼마나 진실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릴지 아니면 끝까지 쓰실지 기준은 우리가 죄를 짓냐, 짓지 않느냐가 아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 죄가 성령의 빛 앞에서 비추어졌을 때 우리가 회개하느냐, 회개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못할 죄악은 아무것도 없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그런데 우리의 체면과 명예와 쌓아 온 공적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회개를 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사울처럼 될 수 있다. 사울은 하나님께만 진심으로 용서를 빌면 되는 죄를 범했음에도, 회개하지 않고 변명하는 데급급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그에게서 완전히 떠났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은 마음의 중심이다. 중심이 사람들을 향해 있었던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말았다.
우리는 인생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에 우리 이름을 걸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 앞에서 나의 더러운 것과 부족한 것이 다 드러나 찌끼같이 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진실하게 살겠다고 결심해야 된다.
출처: 『정직과 순종, 영적 권위』, 이용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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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희 교수
에스더기도운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