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과 탄핵안… 산산조각난 유리 조각도 독창적 작품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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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옥 박사 기독문학세계] 나라를 생각하며

계엄령 선포 책임 물어야 하나
조기 대선 치러질 경우 5가지
범죄 혐의자 출마 혹 당선 가능
엘리엇 <황무지>로 위로받아

▲비상계엄 이후 대통령 탄핵안 발의 관련 보도. ⓒ채널A

▲비상계엄 이후 대통령 탄핵안 발의 관련 보도. ⓒ채널A

황무지 바위 그림자 아래 솟아난 찬란한 햇빛이여!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국민들의 분노, 해제, 그리고 대통령 탄핵 소추안 표결 시작…. 표결이 시작되기 두 시간 전부터 나는 지인들에게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의 기도문을 퍼날랐다.

계엄령 선포는 분명한 잘못이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가결로 인해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다섯 가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에 출마 혹 당선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개인적 판단에서, 지인들은 서로 기도문을 퍼날라 주었다.

탄핵은 무산되었으나, 또 이어질 것이다. 온 나라는 시시각각 혼란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개인마다 조직마다 자기 소견을 들고 거리로 뛰쳐 나왔다. 아수라장이다. 전쟁을 방불케 한다. 마치 파괴된 문명과 피폐해 가는 인간 정신을 보는 듯하다.

서재로 들어와 침통한 맘을 누르려 이 책 저 책들을 뽑아본다. 누구를 통하여 이 나라가 위로를 받고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나는 미국 시인 T. S. 엘리엇(1888-1965, Thomas Stearns Eliot)의 <황무지(The Waste Land, 1922)>가 생각났다. 황무지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된 문명과 황폐화된 인간 정신을 배경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시인을 공부하던 시절 처음 무질서하고 혼란해 보이던 그의 시는, 나중에 무작위적 조합 속에 숨어 있는 의미의 질서를 나타냄을 알았다.

<황무지>의 마지막 제5부 제목은 ‘천둥이 말하다(What the Thunder)’이다. “돌 무더기(stony rubbish)”, “산산이 부서진 이미지들(heap of broken images)”, “한 줌의 먼지 속 공포(fear in the handful of dust)” 등을 통해 시인은 인간의 유한성과 파괴된 문명과 피폐한 정신의 흔적, 혼란 속에서 느껴는 불안을 고발한다.

그러나 시 말미 “붉은 바위의 그림자 아래(shadow under this red rock)”를 통해, 절망의 황폐 속에서도 인식과 재생의 가능성을 암시하면서 외친다.

“산티 산티 산티(Shantih shantih shantih(평화여 평화여 평화여)!” 흰두교 경전을 인용한 것이다. 재생과 희망의 선포이다. 인간의 창조적 정신은 파괴를 극복하고, 새로운 아름다움과 질서를 세울 수 있다는 선언이다.

시간이 꽤 지난 듯 서재의 창문으로 찬란한 햇살이 스며든다. 창문 쪽 도자기들과 크리스탈 화병 그리고 금속성 장식 소품들이 빛에 반사되어 형체 구분 없이 반짝거리며 빛을 발한다. 옆광을 받은 프린터기의 상아색과 컴퓨터 화면도 무지개의 몇 가지 색이 되었다.

창문 전체가 마치 스테인드글라스가 된 듯하다. 예기치 않은 아름다운 색채에 놀라, 나는 쓰던 글을 멈춘다.

언젠가 런던 워털루 역(Waterloo Mainline Station)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쯤 달려 윈체스터 역에 내려 대성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윈체스터 성당의 수많은 걸작품 가운데 내 발걸음을 사로잡은 곳은 전통적 의미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전혀 다른 느낌의 대성당 서쪽 창문 스테인드글라스였다.

1642년 영국 청교도 혁명을 이끈 크롬웰이 성당 기물들과 함께 서쪽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파괴했다. 유리 조각들은 부서져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나 흩어졌다.

사람들은 그 조각들을 마음에 품고 전쟁이 끝나가를 기다렸다가 다시 창문을 복원하고자 하였으나, 원래 디자인에 대한 자료도 없고 파편처럼 흩어진 조각으로는 어떤 형체도 만들 수 없었다.

시민들은 조각난 유리들을 균형에 구애 없이 퍼즐처럼 이어 전체를 완성하였다. 그 결과 세계의 유일한 걸작품, 전혀 새로운 아름다움이 탄생한 것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인식의 빛으로 재생을 꿈꾸고 희망을 품으라 한다. 비록 산산조각난 유리 조각일지라도, 빛이 투과될 때 어우러지는 색채의 아름다움으로 독창적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역사는 증언한다.

그러나 나는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못한다. 나라의 회복과 재생의 때는 우리 당대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의 멀고 먼 후세대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바위 그림자 위에 솟아난 찬란한 햇볕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렇게 일상의 삶을 살아가며,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일뿐이다.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송영옥 교수
영문학 박사, 기독문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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