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전시회 개막… 그는 정말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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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위대한 열정 반 고흐 전’ 리뷰

법의학자, 변호사 등 의문 제기
스스로 복부 쏘는 경우 1.3%뿐
오른손잡이로서 부자연스럽고
근거리 총상 상처도 맞지 않아
고흐, 평소 자살에 부정적 의견
죽임당한 화가에 낭만적 예찬

▲반 고흐 전이 열리는 한가람미술관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 모습. ⓒ서성록 교수

▲반 고흐 전이 열리는 한가람미술관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들 모습. ⓒ서성록 교수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24.11.19- 2025.3.16

12년 만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 전시회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반 고흐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반 고흐의 주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오텔로의 크뢸러 미술관에서 대여해온 것들이다.

그의 전시가 열릴 때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전시장은 장사진을 이룬다. 전시장 내부를 들어서니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관람객들이 붐볐다. 작년 이맘 때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갔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생전 무명 작가로 살았던 고흐는 전설이 되었지만, 그의 삶은 줄곧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그가 자살로 생애를 맞았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동시에 미화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우발적 살인이든 고의적 살인이든 ‘살인’이라는 용어에 저항한다. 예술가에게 낭만을 구하려는 사람에게 그것은 시적이지도, 극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신화는 종종 진실보다 그럴 듯해 보인다.

사람들이 반 고흐를 대하는 방식은 이중적이다. 첫째는 그가 탁월한 화가였기 때문에 그의 천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의 작품에 환호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해 그를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특히 후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반 고흐를 이해하는 장애 요인이 되어왔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자살 신화’는 그다지 신빙성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에게 반 고흐의 자살을 각인시킨 계기는 어빙 스톤(Irvin Stone)의 베스트셀러 『삶에 대한 욕망』(Lust for Life)을 대본으로 한 영화 『열정의 랩소디』(1956)가 대성공을 거두면서부터이다.

화가 고흐의 삶을 그린 전기 영화로 커크 더글러스가 고흐로, 안소니 퀸이 고갱을 연기해 호평을 받았는데, 여기서 반 고흐는 밀밭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 유서를 쓰고 주머니에서 꺼낸 권총으로 자살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줄리앙 쉬나벨 감독의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줄리앙 쉬나벨 감독의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이후로도 반 고흐의 생애를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꽤 있었으나, 근래에는 다른 맥락에서 그의 죽음을 재조명한다. 줄리앙 쉬나벨(Julian Schnabel)이 감독한 <영원한 문에서(At Eternal Gate)>가 대표적이다.

영화에서 소년은 들판에서 그림을 그리는 빈센트에게 총격을 가하고 황급히 들판에서 도망친다. 치명상을 입힌 소년은 빈센트에게 ‘부모님께 비밀로 해주세요’라는 말을 하며 사라진다.

어떤 연유로 두 영화는 그의 죽음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였을까? 사실 그의 죽음과 관련해서 보면, 각색된 측면이 없지 않다. 처음에는 소설가 어빙 스톤에 의해 ‘그럴 것이다’고 추정한 것이 후에는 요지부동의 사실로, 그를 신화의 예술가로 만드는 요건이 된 것이다.

이런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은 후기 인상주의에 관한 연구로 존경받는 미술사학자 존 리월드(John Rewald)였다. 그는 1930년대 오베르를 방문해 빈센트가 사망한 시기 그곳에 살았던 마을 주민들을 면담하며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비행 소년들이 우발적으로 빈센트를 쏘았고 빈센트는 그들을 보호하기로 결심하였다고 주장했다.

50년 후 리월드는 이 이야기를 젊은 학자 윌프레드 아널드(Wilfred Arnold)에게 전해주었고, 아널드는 이 사실을 『빈센트 반 고흐: 약물, 위기, 창조성』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존 리월드와 윌프레드 아널드의 주장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보다 최근에는 스티븐 네이페(Steven W. Naifeh)와 그레고리 스미스(Gregory White Smith)가 빈센트의 생애 전반을 다루면서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였다.

그들은 변호사였지만 전문적인 연구가보다 깊고 넓게 파헤쳤다. 10년 이상 번역자, 조사자, 컴퓨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발간한 『판 호흐: 화가 반 고흐 이전의(Van Gogh: The Life)』에서, 두 저자는 오베르 출신 기업가 르네 세크레탕의 인터뷰에 주목한다.

그는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오베르에서 보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화가에 대해 입을 열었다. 르네는 자신의 형과 함께 커피에 소금을 넣고 화구 박스에 뱀을 넣는 등 빈센트를 괴롭히고 놀렸다. 그런데도 고흐는 열 여섯 살 소년을 적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르네는 당시 ‘와일드 웨스트쇼(Wild West show)’를 보고 카우보이 의상에 매료되었는데, 무법자 스타일은 르네의 부랑아 기질과 위험을 좇는 취향과 맞아 떨어졌다. 나중에는 카우보이 복장에 진짜 총을 추가하게 되었다.

르네는 총을 다람쥐와 새, 물고기를 쏘는 데 사용했으며, 총을 항상 배낭 속 손 닿는 데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르네는 인터뷰에서 총격이 일어난 날 빈센트가 그의 배낭에서 총을 ‘훔쳤다’고 했지만, 네이페와 스미스는 르네 세크레탕과 그의 형 가스통이 화가를 악의이든 부주의이든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고 보았다.

법의학자 빈센트 디 마이오(Vincent Di Maio)도 ‘자살 신화’에 의문을 제기한다. 디 마이오는 고흐의 총상 부위가 갈비뼈 바로 아래 왼쪽 복부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8백여 건의 권총 자살에 대해 연구한 그는 복부에 총을 겨누는 경우는 1.3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둘째로 오른손잡이인 빈센트가 만일 자신의 옆구리를 직접 쏘았다면, 자신의 왼쪽 옆구리를 골랐다는 것이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중대한 순간에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했다는 자체가 상식에서 벗어난다.

셋째로 빈센트의 상처가 완두콩 크기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빈센트가 스스로 총을 쏘지 않았다고 믿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당시 흑색 화약은 근거리 총상을 입을 경우 피부에 수백 개의 반점 같은 화상 자국과 타버린 화약가루 등 뚜렷한 흔적을 남기는데, 그의 경우 피부는 멀쩡했고 화약에 의한 화상 자국도 없었다. 화약의 흔적이나 화상이 없다는 것은 총이 적어도 50센티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사되었다는 뜻으로 분석한다.

반 고흐는 평소 자살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혹시 자살을 했더라도 유서를 남겼어야 했으나, 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오전에 인근에서 나무 뿌리를 화폭에 담았다. 다시 말해 전혀 죽을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다.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캔버스에 유채, 73x59cm, 1890,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캔버스에 유채, 73x59cm, 1890,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그의 죽음을 자살로 보는 것은 저주받은 화가에 대한 낭만주의적 예찬과 무관하지 않다. 그 대가로 그가 타살을 당했다는 사실은 묵살돼야만 했다. 만일 반 고흐가 명예를 누리며 노령까지 살았다면, 오늘날처럼 신화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자살이 훨씬 그의 내러티브, 신비감, 불가해함에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Vincent Di Maio and Ron Franscell, Morgue: A Life in Death, 윤정숙 역, 『진실을 읽는 시간』,소소의책, 2016, 358쪽).”

반 고흐를 자살로 마감한 미치광이 화가로 보는 것은 일부 사람들이 만든 그의 ‘자살 신화’를 아무런 의심 없이 따르는 것에 불과하다. 사망하기 두 달 전 반 고흐는 아를의 병실에서 <선한 사마리아인>(1890)을 제작하였다.

예수께서 아프고 힘든 자들을 구해주셨듯, 그리스도의 위로와 치유를 바라며 그린 것이다. 여기서 사마리아인의 도움을 받는 환자로 그려지고 있다. 지치고 병든 그는 그리스도의 손길을 절실히 간구하였다. 그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은 화가였다.

루머는 그럴 듯하지만,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연구로 그에 관한 누명이 밝혀져 천만다행이며, 우리 역시 풍문처럼 떠도는 사실에 의존했던 것을 바로잡고 지난한 삶 속에서도 꿋꿋이 사명을 다한 빈센트를 새로운 시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서성록 명예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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