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학자들이 선정한 ‘2024 올해의 성경구절’
학자들 신약 9인, 구약 11인 선정
로마서 8장 28절, 최초 중복 선택
어렵지만 희망·용기 잃지 말아야
하나님 섭리 역사 선명하게 확신
2024 올해의 사자성어, 도량발호
옥스퍼드 올해의 단어, ‘뇌 썩음’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잘 어울리는 2024년, 한국 신학자들 20인이 ‘올해의 성경구절’을 선정했다.
교단과 교파, 연령대는 물론, 조직·성서·역사·실천 등 신학 제 분야를 망라해 원로와 신학대 총장, 주요 학회 대표 등 대한민국 신학계를 대표하는 20인이 2024년을 마무리하면서, 교수신문이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나 영국 옥스포드 사전이 선정하는 ‘올해의 단어’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올해의 성경구절’과 그 이유를 고르고 담았다. ‘희망의 2025년’을 기원하며 말씀을 고른 이들도 있었다.
성경 자체가 너무 방대하기에, 신학자 20인은 교수신문처럼 사자성어 보기를 주고 객관식으로 선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관식으로 성경 66권 모든 구절 중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다.
‘올해의 성경구절’ 참여 신학자는 지난 2019년 6인을 시작으로 올해 20인까지 확대된 가운데, 6년째인 올해 주목할 만한 현상이 두 가지 나타났다. 먼저 구약을 선택한 신학자가 11인으로, 신약을 선택한 9인보다 근소하게나마 많았다. 분량상 구약이 압도적이지만, 매번 신약을 선택한 신학자들이 더 많았다. 구약은 그간 시편 말씀을 제외하고는 잘 선택받지 못했다.
성경 권별로는 구약의 경우 시편 3인, 잠언 2인 외에 레위기, 여호수아, 느헤미야, 전도서, 이사야, 아모스, 하박국 등을, 신약의 경우 사도행전 2인, 로마서 2인 외에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디모데전서, 야고보서 등을 각각 뽑았다.
둘째는 6년 만에 처음으로 신학자들 중 같은 성경구절을 선택한 경우가 생겼다는 점이다. 박조준 목사(웨이크신학원 명예총장)와 이상원 박사(총신대 전 부총장) 2인이 ‘로마서 8장 28절’을 ‘올해의 성경구절’로 꼽았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이 성경구절은 최근 ‘롬팔이팔’이라는 책 제목과 유튜브 채널명으로도 알려졌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적용 중심의 주석서 <에브리데이 스터디바이블(성서유니온)>에서는 이 구절에 대해 “하나님은 단지 고립된 각각의 사건에서가 아니라, 모든 것에서 우리의 선(유익)을 위해 일하신다. 이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유쾌하리라는 뜻은 아니며, 고통까지 선하다고 할 필요는 없다”며 “설령 타락한 세상에 악이 만연할지라도, 하나님은 모든 상황이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이끌 수 있다”고 해설하고 있다.
또 “하나님은 오로지 우리를 행복하게 하려고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목적을 이루려고 일하신다는 데 주목하라. 또한 이 약속이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데도 주목하라”며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부르신 자들만이, 다시 말해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게 하시는 자들만이 이 약속을 적용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새로운 시각,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는다”고 풀이하고 있다.
해당 구절에 대해 박조준 목사는 “한국교회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예수를 본받고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려는 목회자들이 있는 한, 교회는 여전히 사회의 희망”이라며 “로마서 8장 28절 말씀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확신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토록 살아 역사하신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같은 구절을 선택한 이상원 교수는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듯, 역사 안에서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은 그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뜻”이라며 “성도와 교회의 궁극적 유익을 위해 모든 일을 기획하고 추진하시는 인간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가 단 한순간도 중단되는 일이 없는 것을 영적인 안목으로 선명하게 바라보고 확신하면서 나아가는 2025년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신학자들의 설명은 현 시국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연말 갑작스런 비상계엄과 탄핵소추 등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에 나라를 걱정하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 모든 혼란과 분열상을 궁극적으로 선하게 이끄실 것이라는 믿음과 바람이 담겼다는 분석이다.
다른 신학자들도 대부분 국가적 혼란상에 대한 위기 의식과 정치인들의 문제를 지적했다. 잠언 12장 19절에 대해 이상규 박사(백석대)는 “정치인들의 거듭된 거짓말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거짓된 혀는 공정과 정의를 해치고 결국 사회 공동체를 파괴한다”, 시편 22편 28절을 선택한 민경배 박사(웨이크신학원 석좌교수)는 “아주 극심한 혼란과 격랑의 시간이다. 다들 이 위기를 풀어나갈 길을 찾으나, 암중모색”이라고 개탄했다.
사법부에 대한 우려도 컸다. 최덕성 총장(브니엘신학교)은 “우리나라 현실은 점차 법관의 판단에 의존하는 형국”이라며 “하나님은 법조인들에게 경고하고 있다”며 판결에 대한 말씀인 잠언 18장 5절과 아모스 24절을 보내왔다. 레위기 19장 15절을 고른 박욱주 박사(연세대)는 “2024년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실망이 크게 고조됐다”며 “새해에는 모쪼록 성경적 공의 개념에 부합하는 판결이 내려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회개도 촉구했다. 시편 18편 4-6절에 대해 정상운 박사(성결대 명예총장)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극심한 혼란과 고통의 때에 나라의 안정, 안보, 안녕을 위해,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엎드려 기도해야 한다”고, 느헤미야 9장 32-33절을 고른 김구원 박사(전주대)는 “우리 죄 때문에, 2024년 한국 사회와 교회가 처한 상황은 참담하다”며 “우리를 징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정의롭게 진실하다. 그분께서 진노 가운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기도하자”고 했다.
그럼에도 믿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권면도 있었다. 박명수 명예교수(서울신대)는 사도행전 27장 24-25절을 언급하면서 “지금 우리나라는 난파당한 배와 같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시아 복음화와 민주화라는 사명을 감당시키려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믿는다”고 호소했다. 국내 최대인 한국기독교학회 회장 황덕형 총장(서울신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언제나 길을 주시고 가르침을 베푸시고 기다리신다”며 “우리의 고집에도 그는 우리를 다시 고치실 것”이라고 기대했다.
교회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서창원 박사(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이사장)는 “바울에게는 주님의 공교회 개념이 가득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서 이탈해 가는 성도들과 교회를 보며 눈에서 눈물이 시냇물같이 흘러내리는 아픔이 있는가? 목사의 왕국이 아니라 주님의 공교회 세움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정성욱 박사(덴버신학교)는 “교회들이 우선 추구해야 할 타겟은 수량적 회복이나 성장이 아니라, 유기적 성장이다. 질적으로 더욱 온전해지고 영적으로 더욱 성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해 새 희망도 강조했다. 정일웅 전 총장(총신대)은 “밝아오는 새해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우리 주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경험하길 바란다”, 여호수아 1장 9절을 선택한 노영상 총장(실천신대)은 “어떤 상황에 서든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 속에서 어두움의 세력들을 떨쳐내야 할 것”,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우리나라에 간섭해 주시길 소망한다”, 최더함 박사(마스터스세미너리)는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핍박하고 멸시한다 해도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그때’를 기다린다면, 마침내 주의 결말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각각 덕담했다.
신학자 20인이 돌아본 2024년, 기대하는 2025년, 그리고 성경구절의 구체적 내용은 10인씩 두 차례로 나뉘어 게재되는 온라인 페이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참여 신학자들: 박조준, 민경배, 김영한, 이상규, 정일웅, 박명수, 정상운, 김재성, 안명준, 이상원, 최덕성, 황덕형, 노영상, 최대해, 서문강, 최더함, 서창원, 정성욱, 김구원, 박욱주(이상 호칭 생략).
◈올해의 사자성어는 ‘도량발호’
올해 2024년 가장 많은 전국 대학 교수들이 선택한 사자성어는 ‘도량발호(跳梁跋扈)’였다. ‘권력이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뛰는 행동이 만연하다’는 뜻으로, 교수 1,086명 중 41.4%(450표)를 얻어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2위는 28.3%(307표)를 얻은 ‘후안무치(厚顔無恥)’로,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 3위는 18.5%(201표)가 선택한 ‘석서위려(碩鼠危旅)’로,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뜻이다.
도량발호를 추천한 정태연 교수(중앙대 심리학과)는 “권력자는 국민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데 권력을 선용해야 함에도, 사적으로 남용하고 있다”며 “권력을 가진 자가 제멋대로 행동하며,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밟고, 자기 패거리를 이끌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이번 사자성어 선정은 ‘비상계엄’ 이전 진행됐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은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 별 의미 없는 온라인 콘텐츠를 과도하게 소비해, 개인의 정신적 혹은 지적 상태가 악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옥스퍼드 사전 ‘올해의 단어’는 전 세계 영어권 국가의 뉴스 자료 등에서 수집한 26억 개 이상의 단어나 문구로 활용도를 판단해 선정한다. OED에 따르면 ‘뇌 썩음’은 지난해 대비 사용 빈도가 230% 증가했으며, 아직 공식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밈(meme)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