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총장과 신학회 회장, 신진 학자들 망라
11.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잠언 18장 5절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
아모스 5장 24절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대한민국 국가 현실은 ‘인간의 전적 타락’ 교리가 참으로 옳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고급 법관이 로비를 받아 죄인을 무죄자로 만들어 주었다고 하고, 상명하복에 철저해야 할 군인이 국회에서 공공연하게 항명하겠다는 발언을 한다. 범죄자들이 국가권력을 탐하고, 성실한 국민을 우롱한다.
우리나라 현실은 점차 법관의 판단에 의존하는 형국이다. 법정이 진실을 가리는 곳이라고 생각함은 오판이다. 법정은 모든 것에 열려 있다. 하나님은 법조인들에게 경고한다.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잠언 18:5)”.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4)”.
12. 황덕형 박사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한국기독교학회 회장
이사야 57장 17절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언제나 길을 주시고 가르침을 베푸시고 기다리신다. 그분은 자비와 긴 인내로 우리를 기다려 주신다. 지치지 않고 반복되는 실패에도 또 다시 기다려 주신다. 다함이 없는 무한대의 기적을 보여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와 실패와 거역에도 실망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고집에도 그는 우리를 다시 고치신다.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변화를 이끌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패역하고 불순종하는 이 민족에 주님께서 변화와 자비의 길을 주실것을 고대한다.
13. 노영상 박사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상임이사, 바이블아카데미 총장
여호수아 1장 9절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올해는 개인적으로나 우리 인류 전체에 있어 매우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코로나19의 여파, 세계 곳곳에서의 전쟁 소식과 자연 재난, 그리고 올해 마지막까지 계엄 선포에 따른 국가적 위기 증폭 등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2024년이었던 것 같다.
이런 위기의 순간 우리는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말씀을 상기하게 된다. “강하고 담대하며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말씀이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제1보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서든지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 속에서 이런 어두움의 세력들을 떨쳐내야 할 것이다. 2025년 새해는 고통의 소식보다는 희망의 소식이 넘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하여 본다.
14. 최대해 박사
대신대 총장, 한국신학대학총장협의회 회장, 대교협 이사
사도행전 10장 28절
“이르시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인간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삶을 좌우합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지혜를 가지고 노력한다 해서 축복된 만남을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본문의 백부장 고넬료와 베드로는 결코 서로 만날 수 없는 사이였고, 친구가 될 수도 없었습니다. 제사장 아나니아와 사울도 서로 만날 필요도 없고, 친구가 될 이유가 없는 사이였습니다. 복된 만남은 주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연결될 때,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만남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만남은 언제나 주님의 보호하심과 그 속에 무한한 성장의 동력과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그래서 축복된 만남은 언제나 주님이 이끄십니다.
15. 서문강 박사
중심교회 원로, 청교도 연구자
하박국 2장 1-4절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은 심히 우울하고 답답하였다.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의로우심’의 진실과 ‘악인이 판세를 장악한 유다 왕국의 현실’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가 경외하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의 주재이심을 그는 확고하게 믿었다.
그의 확신은 단순하게 그의 종교적 정서의 산물이 아니었다. 도리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유다 왕국의 현실은 마치 ‘하나님께서 이 정황을 모른 체 방임하시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종의 ‘항변’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다.
하나님의 응답은 갈대아 사람들(바벨론 제국)을 통하여 유다 왕국의 악을 징치하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하박국 보기에는 마땅치 않았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우상숭배자들인 그 악인을 들어 자기 언약 백성인 유다를 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하나님께 ‘의문 어린 기도’를 드리고 응답을 기다렸다.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요점은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였다. 물론 그 믿음은 종교성의 연마의 열매가 아니었다. ‘결코 거짓되지 않고 반드시 속히 성취될 기록된 묵시–모세와 선지자들의 글(성경)–로 당신 자신과 그 목적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다. 그 ‘묵시’의 요점은 아들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어 그들로 완전한 의의 영원한 나라를 이룩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 하나님의 응답은 하박국을 깊은 수렁에서 건져내었다. 그는 이제 ‘눈앞의 현실’에서 눈을 떼고, ‘하나님의 구원과 그 나라의 영광의 현실’을 바라보게 되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지극히 가변적(可變的)이고 늘 흔들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취될 현실’은 영화롭고 영원하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닥칠 참담한 현실을 보고도 이제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눈에 보이는 현실도 여전히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그러나 그 눈에 보이는 현실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항상 살아 있는 말씀인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성경대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당신의 목적을 이루심을 믿고, 소망하는 자의 반열에 들게 하신 그분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노라.
우리는 2024년 세밑에 참으로 우울하고 답답한 현실을 만났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 우리의 얼굴을 들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자. 아멘
16. 최더함 박사
마스터스세미너리 책임교수, 바로선개혁교회
야고보서 5장 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인류는 처음부터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 사람들의 죄성은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부조리하게 만들었다. 까뮈마저 “그 어떤 인간도 삶의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세상은 모든 부조리의 대명사이다. 세상은 마치 파도와 같아서, 실제로 눈에 보이지만 단 한 번도 제자리에 존재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허영에 불과하다.
갈수록 세상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 그의 백성을 짓밟고 혼돈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불의가 정의를 이기고, 탐욕이 사랑을 뒤엎고, 어둠이 지배하는 사탄의 왕국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한국 사회에 드리워진 어둠은 쉽게 가시질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아벨의 이름 뜻처럼 ‘덧없고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허무의 텃밭에서 밤새 신음하며 피어난 꽃이다. 무엇보다 믿음의 인생은 허공에 뜬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의 노래이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를 의지하며 하나님을 노래하며 살아가자. 하나님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시다. 오직 우리가 바라고 의지할 분은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뿐이시다.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핍박하고 멸시한다 해도 오늘도 내일도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그때’를 기다린다면, 마침내 주의 결말을 보게 될 것이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엡 5:9).
주여, 이 나라와 이 백성을 지켜 주옵소서 아멘.
17. 서창원 박사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이사장, 전 총신대 교수
고린도후서 11장 28절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날마다 눌리는 일, 짓눌리는 일, 맷돌로 짓이겨 기름 짜듯 가슴에 사무치는 고통을 날마다 지닌 바울이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그가 복음을 전하다 받은 고난의 흔적이 그의 육신과 정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본문에서 그가 지닌 심한 짓눌림은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였다.
한 교회를 목양하는 목사의 심정은 주변을 눈여겨볼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분주하고 버겁게 느껴진다. 그런데 바울은 한 교회만이 아니라 주님의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가, 그의 마음에 매일 매순간 짓누르는 고통을 가지게 하였다. 주님의 공교회 개념이 그에게 가득한 것이었다.
입으로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정말 고통스럽게 여기며 진리의 말씀에서 이탈해 가는 성도들과 교회를 보며 눈에서 눈물이 시냇물같이 흘러내리는 아픔이 있는가 생각하면, 몸둘 바를 모르겠다. 지나치게 개교회주의화되었고, 사랑과 돌봄과 관심과 배려와 이끔과 밀어줌이 상실되어버린 현대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목사의 왕국이 아니라 주님의 공교회 세움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 애타는 심정을 소유하며 실천하는 한 해가 되도록 도와주실 주님을 앙망한다.
18. 정성욱 박사
미국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국제 커피선교회 C-Connection 이사장
에베소서 4장 13-16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지난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한국교회는 큰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수량적 차원에서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교인 수가 급감했고, 헌금 액수도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의 선교 역량도 상당히 위축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24년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은 수량적 회복과 도약을 타겟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한 해를 돌아볼 때, 기대보다 수량적 회복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대다수 교회들은 수량적 회복에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3-16절은 우리 교회들이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타깃이 수량적 회복이나 성장이 아니라, 유기적 성장이라고 말씀합니다. 질적으로 더욱 온전해지고, 영적으로 더욱 성숙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다가오는 2025년 새해에는 우리 한국교회 전체가 생명의 성숙을 추구하게 되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더 풍성한 생명을 우리 모든 교회들이 더욱 깊이 누리는 새해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긍휼히 여기시고 친히 역사하소서!
19. 김구원 박사
전주대학교 신학과 교수, 한국고대근동학회 이사, 전 단국대 사학과 고대문명연구소 연구원
느헤미야 9장 32-33절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당한 모든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
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
바빌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은 성전과 성벽을 완성한 후 에스라를 중심으로 말씀 공부 운동을 벌였다.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성벽이 완성된 바로 다음 달 1일에, 예루살렘 수문 광장에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모여 새벽부터 정오까지 말씀을 공부한 사실은 매우 유명한 일화다(느 8:1-8). 그리고 말씀 운동과 함께 회개 운동도 일어났는데, “낮 사분의 일은 여호와의 율법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고 여호와께 경배했다(느 9:3)”고 기록되어 있다.
본문은 레위인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린 장문의 회개 기도의 결론 부분이다(느 9:7-37). 여기에 반복적으로 중범죄를 짓는 세대가 하나님께 매서운 회초리를 맞고 있을 때, 긍휼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 숨어 있다.
첫째, “우리는 회초리를 맞아도 마땅한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의 죄가 더욱 중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면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느 9:34-36).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지적하는 선지자들을 죽였다(느 9:26). 선지자 죽이기를 다른 말로 바꾸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캔슬’하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이것을 신성모독에 준하는 죄라고 지적한다(느 9:26).
둘째, “우리를 때리시는 그분이 공의롭고 진실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이득 되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기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를 때리는 존재가 옳을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사람들만이 징계의 하나님을 공의롭고 진실한 신으로 인정할 수 있다.
셋째, “주의 백성이 당한 모든 환란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 너무 크다고 울부짖음으로써,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촉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노 가운데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기에, 이런 기도가 가능하다.
2024년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은 참담하다. 모두 우리의 죄 때문이다. 우리를 징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정의롭게 진실하다. 그분께서 진노 가운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를 기도하자.
20. 박욱주 박사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좁은문은혜교회
레위기 19장 15절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2024년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실망이 크게 고조된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중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 현직 권세자들에 대한 심판 기준의 불분명함 등이 우리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을 키운 주된 원인이 되었다. 그러니 대중문화계에서는 사적 제재를 중심 소재로 삼는 작품들이 연이어 인기를 얻었고 세간에는 인공지능 판사 도입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일어나기도 했다.
2024년뿐만 아니라 2025년까지 우리 사법기관들은 여러 정치 지도자들에 대하여 중대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책무를 짊어지고 있다. 새해에는 모쪼록 성경적 공의 개념에 부합하는 판결이 내려지기를 바라며, 이 땅의 법적 질서가 바로 서서 하나님의 공의의 그림자가 널리 드리우는 역사가 우리 사회 곳곳에 이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