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록, 한 점의 그림] 진리 없는 자유의 말로
십자가 그리스도 주위 군상들
기독교 없는 고통과 갈등 초점
사적 감정 토로할 이미지일 뿐
현대 예술, 문화적 자살인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를 말할 때 떠오르는 것은 <절규>(1893)라는 작품이다.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는지 이 작품은 뭉크의 대표작이자, 그의 정신세계를 가장 잘 웅변해주는 그림이 되었다. 그로 인해 표현주의의 탄생에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절규>는 그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가늠케 해준다.
뭉크 그림의 쓸쓸한 분위기는 그의 모국인 노르웨이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가족사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는 다섯 살에 폐렴으로 어머니를 잃은 데다 10년도 채 되지 않아 누나마저 같은 병으로 잃었고, 이모 카렌도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이 어린 나이에 사망했을 정도로 그의 가족사는 슬픔과 상실로 점철돼 있다. 뭉크는 이러한 경험에 짓눌려 살았고, 그러는 동안 불안과 공포는 그의 예술에 우울한 그림자를 남겨 놓았다.
뭉크 집안은 성직자와 학자를 여럿 배출한 명문가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목회자였고, 부친 크리스티안 뭉크(Christian Munch)는 독실한 루터교 신자였다. 부친은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 외곽에 개인 병원을 열어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는 자녀에게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며 양육했고, 엄격한 도덕적 가르침을 강조하였다. 부친은 뭉크가 잘못을 저지를 때면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했는데, 이는 나중에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뭉크는 명시적으로 신앙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지만, 종종 기독교적 상징성을 취한 작품으로 자신의 고민을 드러냈다.
<골고다>(1900)에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주위로 많은 군상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을 보면서 혹자는 뭉크가 기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십자가 이미지는 그리스도의 희생보다는 기독교를 떠난 사회, 인간의 고통과 내적 갈등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골고다> 주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일에 빠져 있다. 십자가를 외면하고 있는가 하면, 비웃거나 비열한 표정의 인물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듯 죄의 용서와 구원, 하나님과의 화해 등 성경적 의미에서 십자가 사건을 다룬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무관하게 자기 삶에 열중하는 군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뭉크는 골고다 언덕 아래 자신이 만났던 몇몇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십자가 바로 아래 수염을 기른 남성은 청년 시절 뭉크에게 사상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준 크리스티안 크로그(Christian Krohg)이며, 그 뒤에 있는 붉은 얼굴의 남자는 자유 분방했던 문인 프시비셰프스키(Przybyszewski), 고개 숙인 청년은 젊은 날의 뭉크, 그리고 뭉크의 어깨를 잡고 있는 여인은 어릴 적 자신을 돌보아준 이모 카렌(Karen)으로 추정된다.
크로그는 뭉크가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들어간 왕립미술학교 학창 시절 만난 스승이었다. 크로그는 뭉크를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를 해주는 등, 뭉크의 잠재력을 알아본 사람이었다. 그림에 크로그를 등장시킨 것은 그에 대한 기억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크로그는 급진 사회예술그룹인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Christian Bohemen)’을 접하게 됐는데 이 단체는 노르웨이 사회에 일대 파문을 가져왔다. 그룹 수장 역할을 했던 한스 에게르(Hans Jaeger)는 일부다처제와 자유연애를 지지하고 기독교와 부르주아 계급의 인습에 대해 공격한 자유주의자였다(유성혜, 『뭉크,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arte, 2019, 28-35쪽).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뭉크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과 같은 전위예술가들을 만나면서 큰 변화와 혼란을 겪게 되었고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크로그 뒤 붉은 얼굴의 남자는 베를린에서 만난 문인 프시비셰프스키이다. 그는 ‘검은 새끼 돼지’로 불리던 전위예술단체 일원이었는데, 이 모임에서 미모와 실력을 갖춘 다그니 욜(Dagny Juel)을 만났다. 그녀는 단숨에 그룹 멤버들의 뮤즈가 되었고, 멤버들은 그녀의 호의를 사기 위해 다툴 정도였다.
뭉크도 다그니 욜을 흠모하게 되었고, <마돈나>의 모델로 삼을 만큼 가까이 지냈다. 둘의 관계가 좁혀지나 싶던 중, 그녀는 프시비셰프스키와 결혼을 전격 발표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행복하지 못했고, 다그니 욜은 나중에 젊은 남자에게 총을 맞고 살해당했다. 프시비셰프스키의 사나운 표정에서 우리는 그에 대한 원망 내지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뭉크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카렌 이모였다. 어머니 없이 자란 뭉크에게 그녀는 그나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림에서 이모는 어깨를 두드리며 뭉크를 위로해준다.
<골고다>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인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사적 감정을 토로하는 이미지로 이용되었을 뿐이다.
김현화는 이 그림에 대해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개개인이 겪는 고통을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이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거나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 군중은 십자가에 책형당한 예수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내 고통도 감당하기 힘든 마당에 타인의 고통에 무슨 관심을 가질 것이며, 누가 모함을 받든지 죽든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김현화, 『현대미술 골고다의 초대』, 숙명여자대학교 출판국, 2004, 222쪽)”라며, 푯대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현대 예술을 문화적 자살로 평하기도 한다. 미술사학자 존 월포드(John Walford)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예술 이해는 ‘초월적 또는 통합적 질서가 우주를 다스린다는 생각’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기성 예술의 형식적 질서보다 파편화, 우연, 혼란, 부조화가 인간의 경험에 더 어울린다’고 했다(낸시 피어시, 홍종락 역, 『세이빙 다빈치』, 복있는 사람, 2015, 349쪽).
뭉크의 경우 초월적 질서가 무너지는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 그룹과 ‘검은 새끼 돼지’ 작가들과 어울리면서 한껏 방임된 생활을 이어갔다. 이들 전위 예술가들은 기존 가치관과 구별되게 사회에 적대적이고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세계를 만들어냈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불안의 테마를 표현했다. 그들은 물론 신과 기독교에 대해서도 냉소적이었다.
경건한 가정 속에 성장한 그가 부모의 가르침과 무관하게 인생을 허무주의적으로 물들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의 그림은 개인적으로는 기독교에 대한 그의 거리감을 나타낸 것이지만,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현대인이 얼마나 기독교 진리와 분리돼 있는지 확인시켜 준다.
전에는 기독교인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삶에 무엇인가 빠져 있다는,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향수를 감지할 수 있었지만, 근래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완전한 진공 상태에 머물며, 자신의 완고한 의지 외에 다른 근거가 전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뭉크는 평생 자유를 희구했지만, 노경에 이르러서도 추구한 것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예술적 성공과 무관하게, 그는 허무와 불안의 진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삶의 양태를 보였다. 진리 없는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한낱 신기루임을 보여준 셈이다.
서성록 명예교수
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