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회, 세계사에서 가장 성공한 제도 중 하나”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호소력과 지속성의 측면에서

외부로부터의 박해 극복하고
내부에서는 균열과 결점 극복
기독교 아이디어, 효과 있었다

아아디어와 상상력 발전 탐구
인류 생각의 변천사 추적 제시
역사학자의 대담·독보적 시도

생각의 역사
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 | 홍정인 역 | 교유서가 | 808쪽 | 50,000원

“신이 존재한다는 아이디어는 완벽하게 합리적이다. 우주가 신의 창조물이라는 아이디어를 지성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매일 무의식적으로 떠올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 이 ‘생각’은 어떻게 처음 시작됐고,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이어지고 있을까.

<생각의 역사>는 이 ‘생각’이 이어져 내려온 과정을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그 기원을 추적하면서 시작하는 책이다. 특히 인간 외에 뇌를 가진 어떤 생물체도 가지지 못한 듯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에 주목해, 지금까지 밝혀진 인류 역사의 유구한 발전 과정 속 ‘생각’의 흔적과 역할을 골라낸다.

저자의 실로 대담하고 독보적인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인류 역사의 얼개가 조금씩 그려진다. 책을 읽다 보면, 지구상에서 수천년 이상 수많은 인물들이 활약했지만,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인류의 ‘생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인류사(史)는 ‘생각의 변천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칫 흘러가 버릴 수 있는 ‘생각’들을 끊지 않고 붙잡아 표현하고 실현해낸 공로도 무시할 순 없다. 머릿속 생각이란, 꺼내놓지 않으면 존재 자체조차 증명할 수 없는 법, 원제 ‘Out of Our Minds’는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저자는 진화론을 기본 전제로 삼고 생각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여러 유물들을 근거로 갖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 말고는 달리 고결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그러한 ‘생각들’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젊은 지구론은 틀렸다’는 말만 반복할 뿐 각종 무신진화론적 주장에 대한 변증엔 별 관심 없어 보이는 기독교 내 일부 유신진화론자들보다는 성의 있는 듯하다.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한 교부들.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한 교부들.

흥미로운 부분은 ‘생각’이라는 키워드로 철학부터 윤리, 상징, 농업 등 인류 역사의 각 분야를 재구성하면서, ‘신’과 ‘종교’에 대해서도 상당 분량을 할애한 점이다. 오늘날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과거로 갈수록 ‘종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기에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제3장 ‘정착된 정신’부터 제4장 ‘위대한 현자들’에 이어, 제5장 ‘신앙을 생각하다’에서 본격적으로 신학과 교리를 비롯해 신과 종교에 대한 각종 ‘아이디어들’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고찰하고 있다.

저자는 이슬람교와 함께 기독교를 ‘위대한 종교’로 꼽는다. 그 종교가 기원한 문화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거의 ‘유이(唯二)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종교는 특정 문화에 속할 뿐 외부인에게는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여기서는 종교사회학자의 눈으로 초기 기독교 급성장 요인을 탐색한 로드니 스타크의 <기독교의 발흥>이 겹쳐진다.

저자가 꼽은 두 종교의 비결은 ‘적응력’.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둘 모두 ‘유대교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저자는 두 종교 모두 유대교의 윤리를 변형했다고 말한다. 기독교에서 구원의 수단은 율법에서 은혜로 대체됐고, 이슬람교는 유대교의 율법을 자신들의 율법으로 대체했다. 두 종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상의 심장부와 그 주변까지 장악했고, 이교도 엘리트층은 기독교 앞에 꿇어 엎드렸다.

저자는 기독교에 대해 “이슬람교보다 장기적으로 더 유연한 문화적 적응력을 보여줬다”며 “기독교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민족에게 잘 맞도록 스스로를 재정의하는 대단한 유연성을 보여줬다. 기독교는 이슬람교보다 신자들에게 요구하는 규율이 더 적다. 기독교의 수칙은 더 융통성이 있어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환경에서 거의 모든 종류의 사회에 침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자는 “기독교 전통은 이러한 적응 과정을 거치며 변화하고 여러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용하거나 발생시켰다”며 “신학자들은 거의 모든 쟁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합리적이며 정합적인 교리를 만들기 위해 긴 시간 공을 들였다. 장기적으로 볼 때, 기독교 신학은 오랜 역사를 통해 스며든 유대교의 지혜를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아이디어들과 혼합해 합리적인 종교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분석했다.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 때, 기독교를 &lsquo;공인한&rsquo;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봤다는 &lsquo;십자가 환상&rsquo;을 나타낸 그림. ⓒ크투 DB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 때,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봤다는 ‘십자가 환상’을 나타낸 그림. ⓒ크투 DB

그는 신약에 대해 “구약의-쌀쌀맞고 비판적이고 ‘질투심이 강하고’ 요구가 많은-신은 유연한 철학적 사색을 통해 엄격함과 냉정함이 한층 누그러졌다”고 설명했다. ‘성육신’ 교리에 대해선 “몸 자체가 신성화되고 인간적 본성과 신적 본성이 한 사람 안에서 구분 없이 융합되는 교리는 기독교만의 독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호소력과 지속성의 측면에서, 기독교 교회는 세계사에서 가장 성공한 제도 중 하나로 손꼽힌다”며 “기독교 교회는 외부에서는 박해를 극복하고, 내부에서는 균열과 결점을 극복했다. 그렇게 기독교 아이디어는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라면 ‘하나님의 섭리’라며 은혜를 받거나 ‘기독교 역사’라는 이름으로 암기하고 넘어갈 부분을 ‘생각’의 관점에서 바라봤더니, 새로운 ‘생각’이 도출됐다. 이후에도 인류 역사 속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아이디어들’에 대해, 특유의 분석력을 동원해 ‘우리의 생각,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생각하게 된 경로(부제)’를 찾아내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여러 모로 지난해 화제작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가 떠오른다. 위대한 인류 문명의 동력은 서로 다른 지역과 종족의 문화들 사이 ‘교류와 혼합’이었음을 역설하는 이 <컬처>의 내용처럼, <생각의 역사> 저자도 “여러 문화가 소통하면 아이디어들은 증식해 서로를 풍부하게 하고 새로운 생각을 발생시킨다”, “문명 간 접촉은 문화 교류를 가능하게 했다”, “아이디어들은 사람들이 관점과 경험을 주고받을 때 배가된다”고 썼다.

▲저자 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 ⓒ옥스퍼드대

▲저자 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 ⓒ옥스퍼드대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하나의 생각만 고집해서는 ‘위대한 도약’을 낳기 힘들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듣고 여기에 찬성 또는 반대하며 생각이 생각을 낳고 낳으며 겹쳐지고 엇나가며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인류 문명은 오늘날까지 흘러 왔다.

<생각의 역사> 저자는 “탁월하게 선택된 장면들 사이를 대담하게 뛰어다니며 문화적 변화란 무엇인지에 대해 보여준다”며 “저자에 따르면 문화적 변화는 우연적이고 연약하며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사람과 사물과 사유를 교환하려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컬처> 추천사에 썼다.

상상력을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을 보는 힘’, 기억력을 ‘더이상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을 보는 힘’이라 정의하고, “생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선된다거나 생각의 방향이 늘 미래를 향한다는 가정은 틀렸다. 유행은 돌고 돈다. 혁명이나 르네상스는 과거를 돌아본다. 전통은 새로 태어난다. 한때 망각되었던 것은 진정한 혁신이 띠고 있는 새로움보다 더 놀라운 새로움과 더불어 복원된다”고 정리한 부분도 시원하다. 묵직한 주제를 <컬처>처럼 많이 어렵지 않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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