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일정 이틀 연속 예배당 찾은 트럼프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제47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는 두 곳의 ‘예배당’이 등장해 관심을 모았다.
20일 오전 예배드렸던 ‘세인트존스 성공회 교회(St. John’s Episcopal Church, Lafayette Square)’와 21일 오전 기도회를 한 ‘워싱턴 국립 대성당(Washington National Cathedral)’이다. 이 예배와 기도회는 모두 1933년 첫 취임식을 거행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때부터 전통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성경에 손을 올리는 취임 선서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바쁜 미국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는 취임식 일정 중 두 차례나 예배를 드리는 전통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바탕에 흐르고 있는 ‘기독교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챗GPT 등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들이 취임식 일정 전후 교회에서 예배드리게 된 계기를 소개한다.
세인트존스 성공회 교회 찾아
예배로 취임식 오전 일정 시작
1933년 루스벨트 이후 전통 돼
트럼프 대통령 부부는 1월 20일(이하 현지시간) 취임식 당일 오전 일정을 백악관 북쪽에 위치한 ‘세인트존스 성공회 교회’에서의 예배 참석으로 시작했다.
대통령 부부는 손을 잡고 교회 정문 앞에서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입장한 후, 맨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렸다. 트럼프 대통령 옆에는 멜라니아 여사와 막내아들 배런, 밴스 부통령 당선인 부부 등이 자리했다. 예배에는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팀 쿡 애플 CEO 등 빅테크 주요 인사들도 예배에 참석했다.
미국 대통령들은 지난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처음 이 교회에서 취임 전 예배드린 것을 계기로, 이 전통을 이어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2017년 1기 취임식 전 이 교회를 찾아 예배드렸다.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취임식 전 이 교회에서 예배드렸으나, 가톨릭 신자인 조 바이든 직전 대통령은 2021년 취임 당일 세인트 매튜 대성당(Cathedral of Saint Matthew the Apostle)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했다.
이 ‘세인트 존스 성공회 교회’는 4대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방문해 ‘대통령의 교회’로도 불린다.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기간 이 교회에서 열리는 저녁 기도회에 뒤쪽 좌석에 앉아 참석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상징적 장소에 위치해 역사적 순간마다 예배를 드린 공간이기도 하다. 링컨과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이후 추모예배를 드렸고, 9.11 테러 이후 위로예배도 이곳에서 진행됐다.
세인트존스 성공회 교회는 영국과의 전쟁 중이던 1812년 건축됐으며,美 의회의사당을 지었던 벤저민 러트로브(Benjamin Latrobe, 1764-1820)가 전쟁 후 미합중국 신앙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봉헌식은 ‘성 요한의 날’인 1816년 12월 27일 진행됐으며, 건축 당시 집권했던 4대 매디슨 대통령은 교회 내에 ‘대통령 좌석(president’s pew)’을 만들기도 했다.
취임식 전 예배는 대통령의 직무 수행 전 신앙을 통해 국가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상징적 예전으로 자리잡았다. 예배에서 대통령은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기도해 왔다. 이처럼 백악관 인근의 ‘세인트존스 성공회 교회’는 역사적으로 미국 정치와 종교 간 ‘만남의 장소’로 자리잡았다.
취임식 다음 날 국립 대성당 찾아
국가 위한 기도의 집 1907년 착공
100여 년간 건축 후 1990년 완공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다음 날인 21일 오전 워싱턴D.C.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열린 ‘국가 기도회(A Service of Prayer for the Nation)’에 참석했다. 기도회에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가족, J. D. 밴스 부통령 부부, 마이크 존슨 美 연방 하원의장 등이 함께했다.
해당 기도회는 미국인들의 다양한 종교색을 감안, 종교와 교파를 초월해 열리고 있다. 대성당 측은 “종교와 교파를 초월한 인사들이 모여 민주주의에 대한 감사 기도를 드리고, 다가올 임기 동안 신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 국가 기도회 역시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시부터 시작된 전통 행사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도회 참석으로 공식 취임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대성당(Cathedral)’이지만 성공회는 개신교 전통 안에 있어, ‘워싱턴 국립 주교좌 교회’나 ‘워싱턴 국립 예배당’ 등으로 불리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종교시설의 공식 명칭에 나라를 대표한다는 의미의 ‘국립(National)’이 들어간 것도 특이한 점이다. 물론 해당 시설을 소유·운영하는 곳은 미국 정부가 아닌 성공회 교회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후 기도회를 비롯해 대통령 장례예식이나 국가적 재난 때 추모식 등이 열리는 장소로서 종교적·국가적 상징성을 갖게 되면서 ‘국립’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국립’이라는 이름은 특정 종파를 넘어선 ‘초교파적(interdenominational)’ 공간이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목적도 있다. 이에 성공회나 기독교뿐 아니라 유대교·이슬람교·불교 등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의 기도 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The Protestant Episcopal Cathedral Foundation’이라는 비영리 단체가 대성당을 소유·관리하고 있으며, 평신도와 일반 시민들도 기부 및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 정리하면 ‘미국 국민들 손으로 만들어진 예배당’임을 상징하는 명칭이다.
이곳에서 처음 취임 후 ‘국가 기도회’를 시작한 루스벨트 대통령도 장로교 교인이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등 국가적 위기 가운데 국민들의 단합을 강조하기 위해 상징적 공간인 이곳을 선택했다.
‘국립 예배당’은 워싱턴 D.C.에서 가장 큰 예배당 건물이며, 미국 전체로 봐도 규모가 큰 편이다. 높이 92m, 길이 160m의 장엄한 고딕 양식으로 3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어, 대규모 국가 행사에 적합하기도 하다. 한파로 인한 40년 만의 이번 ‘의사당 실내 취임식’만 해도, 600여 명밖에 입장하지 못했다.
1907년 초석이 놓인 ‘워싱턴 국립 예배당’은 건국 이후 130년 후에야 건립된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국가를 대표하는 예식 공간이 됐다. 벽면에는 다양한 주(州)와 도시 이름이 새겨져 있고, 스테인드글라스 창에는 아폴로 11호를 기념한 우주 탐사, 흑인 등 민권 운동, 전쟁 희생자 추모 등 역사적 장면들이 담겨 있으며, 1만 650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오르간도 설치돼 있다.
‘국가적 예배 공간’은 미국 건국 당시의 아이디어였다. 수도인 워싱턴 D.C. 설계에서부터 “모든 미국인들의 신앙을 반영하는 공간”을 뜻하는 ‘국가 기도의 집(A House of Prayer for All People)’ 필요성이 제기된 것. 이때 영국 국교회 전통을 계승한 미국의 성공회(Episcopal Church)는 개신교적 개방성과 가톨릭적 예식을 동시에 유지하는 교단으로, 타 교단과 협력하기 용이한 위치였다.
미국성공회 초대 주교 새뮤얼 시브리(Samuel Seabury) 및 지도자들은 1792년 미국을 위한 대규모 영적 중심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 등 미국 건국 초기 지도자들 다수도 성공회 교인이기도 했다.
그 100여 년 후인 1893년 워싱턴 성공회 주교 헨리 야테스 새터리(Henry Yates Satterlee)는 ‘미국 국민을 위한 예배당’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성공회에서 적극 나섰다. 그러나 재정적·정치적 여건으로 추진되지 못하다 1907년 비로소 실행에 옮겨졌다. 이후 미국 대통령과 의회 지도자, 일반 국민들의 기부를 받아 건립을 시작했고, 83년 만인 1990년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최종 첨탑 장식을 설치하며 완공됐다.
건립 이후 이 예배당에서는 많은 국가적 행사들이 개최됐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아버지 조지 부시, 최근 지미 카터까지 전직 대통령들의 장례식이 거행됐고, 9.11 테러 이후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곳에서 ‘국가 단합을 위한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등 중요 인물들의 추모 행사도 함께했다.
기도회 설교자, 성소수자 인권 주장
단 이번 국가 기도회에서는 ‘덕담’만 오가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전부터 여러 차례 “성별은 ‘남성과 여성’ 두 가지만 인정할 것”이라며 다양성·공정성·포용성(DEI) 정책 폐기를 약속했는데, 이를 재고해 달라는 메시지가 등장한 것.
마리앤 버드 성공회 워싱턴 교구 주교(The Rt. Rev. Mariann Edgar Budde)는 설교 말미 “대통령께 마지막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다. 수백만 국민이 당신을 신뢰하고 있고, 당신은 사랑의 하나님의 섭리적 손길을 느끼고 있다”며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두려움에 떠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운을 뗐다.
이어 “민주당, 공화당, 무소속 가정에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자녀가 있고, 일부는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며 “상품을 고르고 사무실을 청소하고 가금류 농장에서 일하고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병원에서 야간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미국 시민이 아니거나 적절한 서류를 갖고 있지 않을 수 있지만, 대다수 이민자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그들은 세금을 내며, 좋은 이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도회 후 이에 대해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며 “좋은 기도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