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존재들의 공감에 뿌리내리는 ‘기독교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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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마음과 마음을 잇다: 루오, 고흐, 슈말츠

하나님 나라 추구 그리스도인
세상 더 잘 알고자 함 필요해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씀,
샬롬 비전 구현 구체적 행위
피조계 돌보라는 명령 완수
깨어짐 속 빛나는 존재 발견

▲서성록 교수. ⓒ크투 DB

▲서성록 교수. ⓒ크투 DB

기독교 미학의 특징 중 하나는 ‘이상화된 미’를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크리스천 예술은 고전 미술에 나타나는 선남선녀를 기준으로 삼는 대신, 아름다움과 추를 함께 본다.

멜 깁슨(Mel Gibson)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는 극사실적 묘사의 잔혹성 때문에 논란을 빚었지만, 추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빛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것의 명백한 예는 그리스도의 구속이 가장 모욕적·충격적인 죽음으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빌립보서 2:6-7).”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인간 삶의 추함을 외면하지 않으셨다고 믿으며, 그런 믿음은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이해를 재구성한다(Theodore L. Prescott, The Bodies before Us, in Broken Beauty, William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5, 23쪽).

인간의 깨어짐은 추를 탄생시킨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처럼 곤경에 빠진 인간을 귀히 여기셨다. 그 분은 눈먼 자들, 중풍병자들, 귀머거리들이 사방에서 오는 것을 보시고 애통해 하셨고, 또 그들의 고통을 나누셨다(마태복음 14:14).

그리스도는 외모가 지닌 추함과 상관없이 그들을 아름다운 존재로 보셨다. 크리스천 작가들이 특정한 양식이나 운동을 표방한 적은 거의 없지만, 그들에게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 있다. 인간 생활 속에 아름다움과 깨어짐이 혼합되어 있다는 공감적 증거에 대한 주목이 그러하다. 이런 공감적 시선이 타자를 낯선 이가 아니라 이웃으로 보게 만든다.

▲조르주 루오, 매춘부들, 캔버스에 유채, 1909.

▲조르주 루오, 매춘부들, 캔버스에 유채, 1909.

조르주 루오의 낮은 자리

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가 어느 날 베르사유 콜레르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우연히 홍등가의 반쯤 열린 문 사이로 몸 파는 여인을 보게 되었다. 화실에 돌아온 루오는 이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이른바 ‘매춘부 연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화가는 매춘부들을 추하거나 음탕하게 그리지 않았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젊은 여성들이 자주 등장했고, 축 늘어진 동작에서 그들이 견뎌야 했던 가혹한 현실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심기가 불편했다. 루오가 불경하고 추악한 것에 도취됐으며, 양심을 잃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미인상’이나 ‘천사’ 그림만을 미술의 전형으로 인식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루오는 죄로 뒤덮인 현실에 주목했다. 인간의 탐욕에 의해 여성들이 희생된 것으로 여겼으며, 그에 대한 분노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루오는 인간이란 죄의 굴레를 진 존재이며, 그런 현실의 직시와 구원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그의 작품에는 매춘부들의 비참함에 자신도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윤리의식이 흐르고 있으며, 그는 “모든 사람이 만사의 공범자며 그 중 내가 주모자다”라는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의 사상에 크게 공감하였다.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81.5 x114.5cm, 캔버스에 유채, 1885.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81.5 x114.5cm, 캔버스에 유채, 1885.

반 고흐, 타자와의 연대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소외되고 고독한 사람들을 그림 주인공으로 삼았다. 구빈원 사람들, 뜨개질을 하는 아낙네와 직물을 짜는 직공, 쟁기를 든 농부들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농촌화가 밀레의 작품에 대한 감동, 런던의 주간지 『그래픽』 삽화의 영향으로 빈민과 약자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었다.

특히 루크 필즈(Luke Fildes)와 헤르코머(Herkomer) 등 『그래픽』의 화가들은 빅토리아 시대 하층민들이 겪고 있던 곤경을 적나라하게 표현해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실재를 어떻게 하면 진실되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제작한 것이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동료 화가 A. 라파르트(Anton Rappard)가 <감자 먹는 사람들>을 힐난했을 때, 고흐는 다음과 같이 논박했다. “농민화를 관례적으로 곱게 다듬어 그린다면 잘못일 거야. 시골을 그린 그림에서 베이컨과 연기, 감자 삶는 김 등의 냄새가 나야 좋지. 외양간에서 거름 냄새가 진동한다 해서 이상할 것도 없어. 밭에서는 밀이 익어가거나 감자나 퇴비, 거름 냄새가 나는데, 이건 도시민들에게도 유익할 뿐더러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지. 그렇지만 농촌 생활을 그린 그림이 향수 냄새를 풍기면 되겠어(1884. 4. 30)?”

고흐는 비례와 묘사 등의 문제에 집착하기보다 그 예술이 인간에게 어떤 관계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주목했다. “사랑은 신비 안의 신비이다. 그것은 결코 문자적 의미 안에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바다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썰물과 밀물처럼 변하는 것이다(1883. 2. 8).” 그는 생생한 현실의 인간을 포착하고, 그들과 깊은 연대 속에서 살았다.

▲티모시 슈말츠, 부지 중의 천사, 브론즈, 2019, 성베드로 광장.
▲티모시 슈말츠, 부지 중의 천사, 브론즈, 2019, 성베드로 광장.

티모시 슈말츠의 ‘부지 중의 환대’

티모시 슈말츠(Timothy Schmalz)는 세계 난민의 날을 기념하여 <부지 중의 천사>(Angels Unaware)를 성 베드로 광장에 설치했다. 난민 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 속에 성가족, 그러니까 요셉과 마리아, 아기 예수를 난민 대열에 포함시켰다.

그의 작품은 성경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브리서 13:2)”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군상의 중심에는 천사가 위치해 있고, 주변에는 이동중인 난민들이 무리를 지어 있다. 작가는 아브라함이 부지 중에 찾아온 천사들을 대접하였듯이, 피부색이나 문화, 국적과 상관없이 여러 사람들을 섞어놓았다. 무슬림 옆에는 유대인, 그 옆에 아일랜드인, 또 그 옆에 아프리카인이 있다.

아브라함 헤셀(Abraham J. Heschel)은 “만일 내가 인간의 고통, 인간의 고뇌, 인간의 불행을 덜어준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돕는 셈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도 태어나시자마자 헤롯 왕의 핍박을 피해 이집트로 피해야 했다. 일찍이 난민 생활을 겪으셨던 셈이다. 이 작품은 특별히 희망이 내려앉고 빛이 사라지는 위태위태한 인생에 집중하게 만든다.

마음을 잇다

세 작가의 작품에서 성공한 인간상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주변부에서 홀대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타자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느끼는 자세(Max Scheler)”가 없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더 잘 알고자 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우리의 세상은 천국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처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청지기직을 맡기신 이유는 세상과의 관계에서 샬롬의 비전을 구현하는 구체적 행위요 이웃을 포함하여 피조계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완수이기 때문이다.

이들 미술가들이 보인 정서는 감상주의와는 다른 심오한 세계, 즉 깨어진 존재들에 대한 공감에 뿌리 내린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겉멋의 추구보다는 인간이 깨어짐 속에서도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지 발견하는 것이 우선적인 문제였다.

서성록 명예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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