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처럼 ‘하나님의 시선’에서 담아낸 인간의 죄와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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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히에로니무스 보쉬, 인간의 욕망과 구원

괴물과 키메라의 발명가 보쉬
인간 죄와 부도덕 많이 그려내
상상력 풍부한 이미지 담아내
브뢰헬·피카소, 초현실주의로

<칠죄종>, 욕망 이끌림 대한
경고와 주님 말씀 대한 순종
‘창조주의 눈’ 연상시킨 구성
<죽음과 구두쇠>, 생명-사망
숨가쁜 순간 드라마틱한 묘사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 질문

적나라·그로테스크, 보는 사람
불편할 수 있지만, 인간 삶-죽음,
타락-구원 등 근본 문제들 다뤄
감상 넘어 경건 생활에도 영향

▲히에로니무스 보쉬, 일곱 가지 중대한 죄와 네 가지 최후의 사건, 1500년경.

▲히에로니무스 보쉬, 일곱 가지 중대한 죄와 네 가지 최후의 사건, 1500년경.

흔히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 1450?-1516)를 가리켜 ‘괴물과 키메라의 발명가’로 부른다. 그의 작품이 그로테스크하거나 불편한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술사가 카렐 반 만데르(Karel van Mander) 역시 “불가사의하고 기이한 판타지이며 … 유쾌하기보다는 섬뜩하다”고 기술했다.

인간의 죄와 부도덕성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보쉬만의 풍부한 상상을 보태면서, 차츰 그의 개성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는 평생 그렇게 다작을 하지는 않았으나 유존하는 작품 중에는 우리가 알 만한 명화가 제법 많은 편이다. 여기서는 그의 면모를 잘 엿볼 수 있는 두 점을 선별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일곱 가지 중대한 죄와 네 가지 최후의 사건>(The Seven Deadly Sins and the Four Last Things,1500년경, 이하 칠죄종)은 중앙의 동심원 주위에 네 가지 다른 도상을 곁들인 구도로 돼 있다.

중앙 동심원에는 인간의 중대한 죄, 즉 분노(Ira), 질투(Invidia), 탐욕(Avaricia), 탐식(Gula), 나태(Accidia), 정욕(Luxuria), 자만심(Superbia) 등이 위치해 있고, 주위 네 원에는 ‘죄인의 죽음, 심판, 지옥, 영광’이 각각 그려져 있다.

동심원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이미지다. 부활한 영광의 그리스도 주위에는 광채가 빛나고 있지만, 이것을 조금 떨어져서 보면 원형 안의 작은 원이 마치 사람의 눈처럼 보인다.

보쉬는 예수상 밑에 ‘Cave Cave Deus Videt’이라는 라틴어를 적어 놓았는데, 그것은 ‘조심하라, 조심하라, 하나님께서 지켜보신다’는 뜻이다. 또 화면 상하에 있는 띠에는 하나님을 저버린 인간들이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적혀 있다.

위쪽 띠에는 “그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도다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며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신 32:28-29)”는 구절, 아래쪽 띠에는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20절)”는 구절이 쓰여 있다. 인용한 두 구절로 미뤄 이 그림은 인류 종말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하나님 말씀의 불순종을 경고하고 있다.

이 같은 보쉬의 생각은 원판 안의 일곱 이미지를 살펴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그림 하단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첫째 장면 분노(Ira)는 무기를 든 두 농부가 여관 앞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동안 한 여성이 오른쪽에 있는 남자를 막으려 하고, 왼쪽의 남성은 이미 의자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두 번째 질투(Invidia)는 집안 왼쪽에 있는 여성은 이미 결혼한 상태지만, 옆에 있는 남성은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장미를 선물하려 한다.

세 번째 탐욕(Avaricia)은 공정해야 할 판사가 뇌물을 받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한편 벤치에 앉아 있는 두 판사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 토론을 하며 의견을 나눈다.

네 번째 탐식(Gluttony)에서 한 남자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고 있고, 다른 한 남자는 폭음을 하고 있다.

다섯 번째 나태(Accidia)에서는 자신의 일을 내팽개친 채 잠을 잔다. 수녀가 그를 깨우려 하나 남성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섯 번째 정욕(Luxuria)은 호화로운 텐트 안팎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몇 쌍의 커플 주위로 이들의 행태를 풍자하는 어릿광대가 목동에게 엉덩이를 두들겨 맞는 장면을 위트 있게 배치하였다.

일곱 번째 자만심(Superbia)은 화려한 보닛을 쓴 여인이 자신의 모습에 사로잡혀 있는 장면을 제시한다. 그런데 그 거울을 들고 있는 사탄은 사특한 웃음을 지으며 여인을 유혹한다. 그녀의 방은 금, 은, 도자기와 같은 호화스런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미술사학자 월터 S. 기브슨(Walter Gibson)에 의하면 보쉬의 원형 구성은 14세기 영국 프레스코 벽화에서도 볼 수 있으며, 내용적으로 세상에 만연한 죄를 언급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아마 보쉬는 당시 부패한 사회상을 질타함과 동시에, 매사에 자기를 돌아보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를 담는 데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원환형 구성, 곧 ‘창조주의 눈’을 연상시키는 구성이 적합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중세 말 문학에서 강조된 ‘하나님의 시선’은 일부 플랑드르 화가들에게 공감을 받았다. 특히 니콜라스 폰 쿠사(Nicholas of Cusa)의 『하나님의 비전(De Visione Dei, 1453)』에는 “하나님이시여, 오, 당신의 눈길은 얼마나 놀라운지요. … 당신을 사랑하는 만인에게 그 얼마나 공정하시고 고결하신지요. 구세주, 하나님이시여, 당신을 저버리는 만인은 그 얼마나 두려울지요”라는 표현이 나온다.

니콜라스 쿠사는 “만물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으며, 그 누구도 그 분의 눈길을 피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아마 보쉬는 이 문헌을 읽으며 ‘하나님의 시선’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쉬, 죽음과 구두쇠, 1500년경.

▲히에로니무스 보쉬, 죽음과 구두쇠, 1500년경.

보쉬는 인간의 삶을 동시대 기독교 관점에서 관찰하였다. <죽음과 구두쇠>(Death and the Miser, 1500년경)가 그런 작품 중 하나다. <죽음과 구두쇠>는 15세기 널리 보급된 핸드북 『죽음의 기술(Ars moriendi)』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이 책은 임종을 앞둔 사람이 죄의 허물을 벗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이다.

<죽음과 구두쇠>는 한 구두쇠가 침상에 누워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장면을 표현한다. 그림 전면 고급스러운 의상과 화려한 장신구들(투구와 창, 검), 그리고 보화가 가득한 궤짝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주인공은 평생에 걸쳐 많은 재물을 모은 것 같다. 침상 발꿈치 쪽에 한 노인이 궤짝에 동전을 넣으려는 순간 생쥐가 이를 가로채고 있어, 보화를 쟁여 둔다는 것의 무익함을 일깨워준다.

그 순간 ‘해골의 사신’이 찾아와 노인에게 화살을 쏘려 한다. 이때 천사가 노인을 부축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 작은 유리창 쪽에서 빛이 노인을 향한다. 그 빛은 자연광이 아니라 구세주의 참 빛이자 성령의 빛이다.

천사는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영생을 얻으라’로 일러 준다. 그러나 사탄은 그런 순간조차 놓치지 않으려 한다. 사탄은 커튼 밑에서 노인을 돈뭉치로 유혹하고 있다. 천장에서도 마귀가 그 돈을 받으라고 재촉한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사이를 오가는 숨가쁜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묘출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칠죄종>이 욕망의 이끌림에 대한 경고와 주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담고 있다면, <죽음과 구두쇠>는 고민하는 노인을 통해 우리에게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생과 지옥불의 갈림길에서 노인의 선택이 무엇이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보쉬는 상상력이 풍부한 이미지를 담은 작품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그의 스타일은 나중에 피테르 브뢰헬과 파블로 피카소, 초현실주의 작가 등에게 두루 영향을 미쳤다.

그의 화풍은 너무 적나라하고 그로테스크해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인간의 삶과 죽음, 타락과 구원과 같은 근본 문제를 다룸으로써 단순한 감상용을 넘어 그리스도인의 경건 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서성록 명예교수(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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