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전쟁 3년, 슬라브주의 vs 서구주의 향방은 (1)
양국 모두 100만여 명 사상자
결코 양보 못할 가치 충돌해
러시아 중심의 슬라브주의와
유럽 중심 발전 서구주의 충돌

1. 들어가며
오늘도 새벽 4시쯤 귓전을 울리는 폭음 소리에 놀란 아내와 함께 잠을 깼다. 며칠 전 극초음 미사일 킨잘까지 동원한 폭격에서도 미완에 그친 키이우 근교 수력 발전소를 목표로 러시아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이 다시 있는 듯싶었다. 이제 웬만한 폭음 소리에는 무뎌졌지만, 킨잘이나 이스칸데르 등 초강력 미사일이 명중하여 폭음을 낸다거나 공중에서 격추되는 소리는 가히 키이우 전 도시를 흔드는 듯하여 놀라 피하지 않을 수 없다.
나름 험한 군대생활도 경험했고 1990년 러시아 모스크바, 그리고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맨땅에 헤딩하는 듯한’ 선교의 삶을 통해 많이 연단됐다 생각하는 필자에게도, 하늘을 가르는 듯한 폭발음이나 드론 등이 마치 컴퓨터 전쟁 게임처럼 눈앞의 하늘에서 펼쳐질 때 ‘이러다 우리도 화를 당할 수 있겠구나’ 하는 순간적인 생각에 가슴 철렁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이럴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부모님 품을 파고들 교회의 어린이들이나 수많은 이 땅의 어린이들 모습이 스쳐 지나가며, 아픈 마음으로 또한 기도하게 된다. 어제는 주일예배를 드리며 두 가지 간증이 마음을 아프게도 하고, 한편으로는 따뜻하게 하기도 하였다. 전쟁 후 잿더미로 변한 도네츠크 지역에서 평생 살며 화목한 가족을 일궈 온 50대 후반 여성의 사연은 전쟁의 비참함에 눈물을 흘리게 했다.
도네츠크 폭격으로 좋은 남편, 사랑스러운 자녀들을 그녀는 모두 잃었다. 이제 홀로 살아남아 키이우 근교 마을에 겨우 집을 얻어 어찌할 수 없이 연명하는 삶을 살고 있다. 교회에서 희망과 의지처를 찾고 싶어 3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어렵사리 찾아와 예배를 드리는데,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리고 마음의 큰 위로가 된다 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전쟁 발발 후 역시 어린 세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중부의 시골 마을에 피신 겸 거주하고 있는 우리 교회 평신도 목회자 가정이 오랜만에 전 가족을 데리고 교회에 왔다. ‘싸샤’라는 이름의 이 가정은 키이우에 남아 교회를 섬기고 있는 형제자매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시골에서 지내고 있는 미안한 마음을 진솔하게 나눴다. 그리고 자기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새로운 변화의 역사를 간증했다.
그 동네는 동방정교회 전통이 너무 강한 곳이라 개신교는 발붙일 수 없는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마을의 변화를 위해 기도해온 한 독실한 기독교인 가정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세 자녀의 가장이었다. 징집법에 따라 자녀가 3명 이상일 시 징집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이 독실한 그리스도인은 자원해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이 개신교 형제 및 가족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싸샤, 올레나 목회자 가정의 헌신적인 섬김과 사랑의 전도로 개신교를 이단시했던 마을에서 시각이 바뀌고,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며 마을 전체 기반 시설들을 자발적으로 개선시키고 있었다. 자녀들을 너나없이 마을의 개신교 교회에 보내려 하는 등 새로운 교회 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전쟁이라는 한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건의 한복판에 서 있는 한 사람의 기독 신앙인 그리고 선교사로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무기력과 딜레마 앞에 때로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기도제목도 어느새 ‘전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니…’에서 “생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니…’로 바뀌어 있음을 보게 된다.
모든 사건을 보는 해석 속에는 각자의 처한 위치나 가치관 또는 세계관이 투영돼 있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동유럽 선교사 수양회에 한국에서 강사로 오신 한 목회자의 고백은 이런 의미에서 흥미롭다.

한국에서 이런저런 선교사들을 만나곤 하는데, 전쟁을 바라보는 우크라이나 선교사들과 러시아 선교사들 입장이 어쩌면 저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여서, 양쪽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입장에선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한쪽은 우크라이나 네오 나치즘(Neo-Nazism)이 문제이고, 다른 한쪽은 철 지난 구소련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또 다른 네오 나치주의 또는 신민족 사회주의(Neo-Nationalsozialismus) 행태를 보이고 있는 푸틴의 세력이 문제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양측이 주장하는 바에 수긍되는 점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독 신앙인들이 단지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전쟁의 근원적 배경과 원인을 찾는다면 단견에 그칠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좀 더 근원적 이념과, 할 수 있는 한 영적(종교적)인 영역에서까지 원인을 들여다 보고 분석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한낱 먼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될 수 있는 러-우 전쟁이 우리 삶 속 밥상의 자연스런 화두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관심과 사고의 지평이 그만큼 글로벌화되고 있는 것에 위로를 얻으면서 말이다.

2. 슬라브 중심주의와 서구 중심주의의 갈등과 충돌
그렇다면 2022년 2월 발발한 러-우 전쟁이 3년째인 지금까지 그치기는커녕 더욱 확대일로로 치닫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공히 50-100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장의 공포에 몰아넣고 있을만큼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명분이나 가치가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물론 이에 대한 수많은 의견과 분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는 러-우 양측 세력이 결코 양보할 수 없다고 여기는 가치 충돌과 영적(종교) 전쟁의 성격이 전쟁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가치 충돌의 문제를 다루고,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적(종교) 전쟁의 측면에서 서술해 보고자 한다.
먼저 러시아의 슬라브주의자와 우크라이나의 서구주의자들 간의 가치 충돌 문제다. 대부분의 러시아 전문가들은 러시아 문명의 최대 황금기를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로 본다. 수많은 세계적 대문호 및 음악가, 미술가 등이 이 시대에 꽃을 피웠다. 그리고 서구의 계몽주의 사상이 유입돼 다양한 사상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러시아인의 성격을 규정짓는 정체성 문제와 함께 러시아의 진로를 놓고 슬라브 중심주의와 서구 중심주의가 본격 대립하기 시작한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오죽하면 톨스토이를 슬라브주의 신봉자로, 푸시킨을 서구주의 신봉자로 양대 사상 조류의 대척점에 내세웠을 정도이니, 러시아 역사 속에서 이러한 사상과 이념의 지속적 갈등은 가히 짐작할 만하다.

‘슬라브주의(Slavism)’란 (슬라브족이) 서구와 다른, 러시아인들의 정신과 전통 및 가치관을 가진 민족이므로, 러시아,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등은 서구를 추종하지 말고 슬라브주의로 하나 되어 유라시아 대륙 중심국가로 강력한 지역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이다.
반면 ‘서구(중심)주의(Eurocentrism)’는 러시아는 유럽과 지형적·정신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유럽의 정신과 가치관, 법규 및 제도 등을 적극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려 노력할 때 러시아의 후진성도 극복하고 진정한 발전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으로, 19세기 중엽 나타난 러시아 사상의 한 조류다.
이러한 기나긴 논쟁과 갈등이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흡수돼 72년간 묻혀 있다가 결국 표면화된 것이 1991년 12월 26일 구소련 붕괴였다. 그리고 보리스 옐친 정부의 혼란을 거울 삼아 슬라브주의 이념에 완전히 매몰된 듯한 푸틴 대통령 세력과 달리, 슬라브주의는 망국의 길이고 서구주의로의 편입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현 우크라이나 정치 세력 간의 국가 노선은 언젠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양 극단의 세력이 가장 불행한 방법으로 충돌한 것이 바로 러-우 전쟁이요, 이 전쟁의 뿌리에 자리잡고 있는 원인이기도 하다. 슬라브주의와 서구주의라는 양대 이데올로기가 구소련 붕괴 후 끊임없는 파열과 봉합의 과정을 거치다 결국 대폭발한 것이 전쟁의 숨겨진 원인이라는 것이다. <계속>

김평원(Peter Kim)
Ph.D, University Bible Fellowship
우크라이나 키이우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