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버포스> 출간 윤영휘 교수 (2)
“그리스도인 정치인이 정치적이되, 정파적이지 않아야 한다.”
‘Statesman’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는 노예 무역 폐지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당시 사회 시스템의 질적 성숙을 목표로 ‘도덕(악습) 개혁’에 나섰던 야망 가득한 정치가였다.
오늘날 거대 담론이나 비전 제시 대신 지엽적 논쟁과 꼬투리 잡기로 일관하며 나라 발전은커녕 나라를 좀먹고 있는 정치권이 다시 바라봐야 할 ‘큰 바위 얼굴’ 같은 인물이 바로 윌버포스인 셈.
특히 사회변혁과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그리스도인이라면, 200년 전 영국에서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비전을 위해 평생을 바쳐 헌신한 그의 일대기를 펼쳐볼 이유가 충분하다. 다음은 전편에 이은 <윌버포스> 저자 윤영휘 교수의 이야기.
윌버포스 실제 하고 싶었던 일
국가 도덕 한 차원 끌어올리기
노예 폐지도 관습 개혁의 일환
상인 집안 출신 특유 실용주의
-노예 무역과 함께 윌버포스가 추구했던 ‘관습·도덕 개혁’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시나요.
“윌버포스가 실제 하고 싶었던 일은 국가의 도덕성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옳은 가치를 추구한 것이기도 하지만, 시대적 배경이 있습니다. 영국은 1689년 ‘권리장전’을 통과시켜 왕정에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로 민주주의를 처음 이뤄낸 나라잖아요. 그런데 당시는 일종의 정체기였어요.
책 서두에서 강조했지만 여러 부패가 일어나고 산업혁명으로 빈부 격차는 더 커졌으며 세속주의는 더 심해졌어요. 많이 발전한 것 같지만 다음 단계로 못 나간 채 허덕이고 있을 때, 윌버포스라는 정치가는 국가의 도덕적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관습 개혁을 했죠. 노예 무역 폐지 운동도 그 일환이었죠. 일종의 대표적인 도덕 개혁 운동이었죠.
관습 개혁이 성공했냐 실패했냐는 평가하기 어려워요. 도덕성이 달라진 것은 평가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눈에 안 보이기 때문에 쉽지 않지만, 그 한 예로 노예 무역이 폐지됐다고 볼 수 있겠죠. 노예 무역으로 상당한 이익을 보던 나라에서 제도를 폐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들의 도덕관·세계관이 달라졌다는 방증이죠. 그러면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봐야겠죠.”
-이렇듯 젊은 시절부터 이상만 추구하거나 빠른 변화로 인기를 얻기보다, 실현 가능성을 따지면서 일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윌버포스는 헐(Hull)이라는 항구 도시에서 태어났고, 상인 집안이었어요. 영국 엘리트는 보통 토지 귀족과 대상인 집안의 결합이었죠. 상인들도 무엇을 파는지가 중요한데, 해상 무역 집안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실용적이었죠. 태생부터 이상주의로 흐르기는 어려운 스타일이었습니다.”
영국에서 기독교, 가치나 문화
우리에겐 감동, 그들에겐 사실
국교로 형식화된 것이 더 문제
정치 비판보다 좋은 예 보이려
-지금 영국에 윌버포스는 같은 정치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는 기독교인들이 있나요.
“영국에서 윌버포스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유명한 사람이에요. 우리나라로 예를 들면 개혁가 정도전 정도? 정도전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특별하게 발굴해낸 사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잘 아는 ‘위인’입니다.
BBC가 10년 전 100만 명을 대상으로 ‘위대한 영국인들’ 설문조사를 했는데, 28위를 차지했어요. 1등은 처칠이었고요. 그만큼 잘 알려진 사람이고, 연구도 많이 돼 있죠. 오히려 우리나라에선 덜 알려져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10년 전쯤 한때 총리 후보로도 언급됐던 영국 윌리엄 헤이그(William Hague, 1961-) 전 외무장관이 윌버포스 전기를 쓸 정도로 꾸준히 관심을 받는 사람이죠.
영국에서 기독교는 하나의 가치이고 문화죠. 우리와는 조금 의미가 달라요. 그런 점에서 윌버포스의 가치나 추구했던 바를 따라하려는 정치인들은 있죠. 그러나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윌버포스를 따라 하고 싶다는 정치인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윌버포스가 회심하고 기독교 정치를 추구한 것이 감동으로 다가오잖아요. 하지만 이들에게는 하나의 사실일 뿐이에요. 지금도 정치인들 중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영국은 국교가 기독교이고, 국가 공식 행사에서 예배를 드리는 나라죠. 오히려 종교를 너무 형식적으로 다루는 게 문제죠. 얼마 전 힌두교인이 영국 총리로 취임해 국가 행사에서 성경을 읽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 정치인이 기독교 의식을 따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가치관과 정신을 얼마나 추구하느냐가 더 중요하겠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역사 교과서에서도 그렇고, 유독 기독교를 공적 영역에서 배제하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말씀드렸지만 기독교인들 중에 정치 과잉에 빠진 분들도 계시잖아요.그들이 동기의 옳고 그름을 떠나 좀 안 좋게 보이는 부분이 있고, 반대로 극단적 정치 회피도 있어요. 양자를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쓴 중요한 동기 중 하나가 ‘좋은 예를 보여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사람은 비판으로 바뀌지 않잖아요. 정치 과잉과 회피 두 가지 태도를 모두 비판할 수 있지만, 비판을 넘어서서 잘한 케이스를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책 속 가장 와 닿는 문장이 ‘그리스도인 정치인이 정치적이되, 정파적이지 않아야 한다’였습니다.
“지금 다들 반대로 해서 문제 아닌가요(웃음)? ‘정치적’이라는 말은 이렇습니다. 정치로 풀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지금 부동산도 교육도 문제이지만, 여기에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를 보고 기회가 박탈되는 문제들이 있어요. 이런 일에는 정치가 필요하죠. 사회적 약자 배려 문제는 법만으로 해결되지 않죠.
정치적 회피가 옳지 않은 이유는 옆에서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사회적 약자가 고통받고 있는데 가만히 있는 것은 정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적이어야 해요. 정파적인 건 다른 문제죠.한 정파가 오롯이 하나님 뜻을 어떻게 다 반영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정파적이어선 안 되겠죠. 문제는 그 반대라는 거죠.”
정치적이되 정파적 아니어야
하는데, 반대로 하는 게 문제
200년 전 비해 세분화된 시대
각자 영역에서 ‘개혁’ 나서야
-이 시대의 윌버포스가 되고자 하는 기독교 정치인이 개선해야 할 ‘노예 무역’ 같은 제도가 있을까요.
“윌버포스의 시대와 오늘 이 시대는 다르다는 걸 먼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200년 전 영국도 큰 나라였고 강대국이었지만, 사회적 복잡도를 따져볼 때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죠. 오늘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다면적·다층적이고 복잡한 사회입니까? 그러니 윌버포스 시대처럼 전 국민이 달려들어야 할 하나의 국가적 어젠다(agenda)가 있긴 어려워요. 통일 정도?
저는 오히려 너무 세분화·전문화돼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노예 무역’ 같은 제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의사는 의료 영역에서, 교육자는 교육 영역에서, 회사원이나 경영자는 경제 영역에서 보이는 것들이 있겠죠. 지금은 ‘마이크로 클래팜파’가 필요한 시대이고, 그런 노력들이 크리스천들에게 요구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는 학자로서의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사회가 왜 이 모양일까 생각해 보면, 선생(스승)이 없기 때문이죠. 강사(lecturer)는 있지만, 선생(teacher)이 없어요.
제자들이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잖아요. 선생님이 필요한 시기 같아요. 저뿐 아니라 학자들의 역할도 있겠죠. 사회가 길을 잃고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를 때 길을 보여주는 사람. 공부도 그러려고 하는 거죠. 이 책을 쓴 이유도 조그마한 길잡이라도 되길 바랐기 때문이고, 저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Politician 많고 Statesman 적어
뭔가 되고 싶은 정치인 많은데
뭔가 하고 싶은 정치가는 적어
갈등 해소, 통합 외치는 정치를
-책에 마지막 결론이랄까 저자로서 정리하는 말씀이 없는데, 혹시 썼다면 뭐라고 하고 싶으셨을지요. 그리고 한국의 윌버포스를 꿈꾸는 기독 정치인들 또는 공공 영역에서 봉사하는 크리스천들이 염두에 뒀으면 하는 점은.
“결론으로 아까 말한 내용을 쓰고 싶었어요. 이 시대에도 각자가 생각하는 ‘노예 무역’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마이크로 클래팜파’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족(蛇足) 같아서 쓰지 않았어요.
책의 부제가 ‘Statesman, 정치가의 길’입니다. 최근 연구년으로 영국에 1년 있으면서 대부분을 썼는데, 윌버포스가 나온 케임브리지 대학 칼리지 도서관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는데, ‘스테이츠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폴리티션(politician)과 스테이츠맨이 모두 정치가로 번역되지만, 뉘앙스가 달라요. 폴리티션은 나쁘게도 볼 수 있는 ‘정치꾼’ 같은 뉘앙스이고, 스테이츠맨은 큰 인물이죠.
우리 사회에 폴리티션은 많은데, 스테이츠맨이 없는 것이 문제죠. 제 주변에 어느덧 정치하는 분들도 꽤 있고, 정치 지망생들도 있고 국회의원도 있어요. 안타까운 것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분은 있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분은 없어요.
윌버포스는 회심한 다음 정계를 떠나려 했어요. 그런데 1년 반 동안 정치를 왜 해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노예 무역 폐지와 관습 개혁’이라는 이유를 찾았죠. 그런데 그런 고민을 하는 정치인들이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죠.
우리는 갈등이 심한 사회잖아요. 지역으로 이념으로 젠더로 너무 갈라져 있는데, 갈등도 비용이 들어요. 이런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을 외치는 정치인을 아직 못 본 것 같아요. 일반적 의미로는 말하지만, 이를 평생 목표로 삼은 ‘스테이츠맨’은 보지 못했어요.
나아가 부동산이나 교육 분야의 부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을 이루자는 비전을 제시하는 스테이츠맨도 없잖아요?
타다 남은 잿더미 속에서 꽃이 피듯, 이러한 어려움을 양분 삼아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아니면 이미 정치를 하시는 분들 중에서 ‘나도 윌버포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단을 하시면 좋겠어요. 정치인들이 ‘대통령이 되겠다’ 같은 야심(Selfish Ambition)이 아닌,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겠다. 통일을 꼭 이뤄보겠다’ 등 큰 일을 꿈꾸는 야망(Ambition)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할까요.
“기독교 버전과 세속 버전으로 답할 수 있습니다(웃음). 세속 버전부터 하자면, 역사에서는 오늘날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어요. 물론 이것이 목적이 되면 동기를 집어삼킬 수 있기 때문에 약간 위험해요. 목적을 갖고 역사를 공부하는 건 위험하죠. 현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전례 없는 일이지만 비슷한 사건을 공부해서 답을 얻고 실마리를 찾는 일은 필요하죠. 일반인들에겐 역사 공부의 중요한 동기인 것 같아요.
기독교적으로는, 역사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역사를 구조와 인물로 봐야죠. 역사가들이 요즘에는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했다고 설명하지 않아요. 한글 창제도 세종대왕만으로 설명을 하지 않죠. 시대와 구조도 중요하니까요.
윌버포스라는 인물을 빼놓고 노예 무역 폐지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책 1장에서 설명했듯 시대적 분위기도 있거든요. 당시 세계 최고 제국으로서 위기감 속에서 노예 무역 폐지가 가능했기 때문에, 인물과 구조를 봐야죠. 크리스천들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신 것도 알 수 있기에, 역사를 공부해야 합니다.”
-끝으로, 교수님께 윌버포스란.
“오랜 친구 같습니다(웃음). 항상 연구할 때 염두에 뒀고, 남겨둔 숙제처럼 언젠가는 전기를 쓰고자 했죠. 연구를 하다 보니, 되게 친근해졌어요. 일기부터 편지, 연구서, 의회 의사록까지, 이 분 글을 정말 많이 읽었거든요. 그래서 되게 친해졌어요. 영국에서는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이 분이 직접 쓴 편지도 엄청나게 읽었는데, 여기 손이 갔을 때 정말 2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연결된 느낌도 받았습니다.”
-만나면 하고 싶은 말씀도 많으실 것 같아요.
“일단 고맙다고 하고 싶어요. 이 분 덕분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됐으니까요(웃음). 그리고 좋은 본을 보여주셔서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