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중심 ‘사법 카르텔’… 100년 전 미리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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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세상의 고통 참여한 예술가 조르주 루오의 ‘세 판사’

재판관 이념 따라 판결 반대?
승복할 사람 얼마나 되겠는가
미술사에서 판사 떠오른 시대
19세기 민주주의 정착의 과정
허위·부패 얼룩진 위선적 존재
여러 작품 그려낸 조르주 루오

▲조르주 루오, 법정, 70.4x107.3cm, 캔버스에 유채, 1910년경.

▲조르주 루오, 법정, 70.4x107.3cm, 캔버스에 유채, 1910년경.

법과 원칙에 따라 정의를 구현하는 재판관이 일반의 신뢰를 받아야 함에도, 편파성으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재판관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조석변개(朝夕變改) 판결이 달라진다면, 이에 승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욱이 의제가 국가의 존망을 다투는 중대한 사안을 ‘법의 공정성’ 대신 ‘사법 카르텔’에 의존할 경우 사태는 훨씬 심각해진다. 이는 민주주의의 보루인 사법부의 신뢰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갖게 한다.

미술사에서 재판관이 주제로 떠오른 것은 19세기, 민주주의를 정착시켜가는 과정에서다. 장 루이 포랭(Jean-Louise Forain), 오노레 도미에(Honore Doumier), 아돌프 티데맨(Adolf Tidemen) 등이 재판관을 그림의 모티브로 삼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이 묘사한 재판관은 신뢰받기보다는 허위와 부패로 얼룩진 위선적 존재였다.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의 경우도 비슷한 맥락에 위치한다. 유럽 부르주아 사회에서 판사는 선량한 시민들을 보호하기보다, 권력의 편에 서서 그네들만의 이익에 봉사하는 집단으로 비치기 일쑤였다.

조르주 루오가 법정의 판사를 다루게 된 것은 레옹 블루아(Léon Bloy)의 만남으로 소급된다. 청년 시절 루오는 블루아의 소설 『가난한 여인(La Femme Pauvre, 1897)』을 읽었다. 파리 빈민가에서 사는 가난한 여성을 다룬 이야기 중 특히 참으로 자비심이 없고 가혹하기 그지없는 폴로부부에 집중했다.

루오의 <폴로 부부>(1905)는 불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한 방향을 주시하고 있다. 얼굴에는 욕심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불편한 기색을 고조시키기 위해 루오는 어두운 색상에다 예각적 필선, 충동적인 붓놀림 등을 동원하고 있다. <폴로 부부> 이후 그는 사회적 위선에 저항하고 우는 사람들과 멸시받고 모욕당한 자들의 편에서 세상을 보게 된다.

몇 년 뒤 루오는 세 인물이 등장하는 <법정>(1910년경)을 발표한다. 그림 분위기는 역시 무겁고 우울하다. 법정 세 인물은 한결같이 무섭게 그려졌다. 인간의 탈을 쓴 이리떼 같다.

<폴로부부>보다 더 강렬한 느낌을 주는 이 그림은 피고인을 중심으로 좌우에 두 명의 재판관을 배치했다. 초기작 <법정>은 면목 없는 피고인을 빼고 모두 어둡고 비극적으로 묘사하였다. 고개를 숙인 피고인과 냉혹한 두 법관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폴로 부부>와 <법정>이 부르주아 부부와 엘리트들에 대한 비난을 담고 있다면, <세 재판관>(1924)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림의 무대는 역시 법정이고, 세 재판관이 등장한다. 좌우 재판관이 딴전을 피우는 반면, 중앙의 재판관은 무언가 골똘히 사색에 잠겨 있다.

앞의 <법정> 재판관들이 사나운 표정을 짓는 것과는 판이하다. 이전 작품에서 재판관이 인간의 죄값을 따지고 판단하는 위치에 섰다면, 이 작품에서는 그 자신도 죄의 멍에를 지고 있으며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한 명의 죄인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실려 있다.

‘죄인이 죄인을 정죄하는 모순적 상황’(우명자, 『기독교 세계관으로 조명한 조르주 루오의 회화 구조와 영성연구』, 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 박사논문, 2010, 123쪽)을 나타낸다.

▲조르주 루오, 세 재판관, 76x105.5cm, 캔버스에 유채,1924.

▲조르주 루오, 세 재판관, 76x105.5cm, 캔버스에 유채,1924.

조형적으로도 <세 재판관>은 <법정>에 비해 큰 차이를 지닌다. 인물 형체 면에서 전자가 흉측하게 묘사돼 있다면 후자는 비교적 온전한 모습을 취하며, 전자가 불규칙한 윤곽선 안에 파열적 터치를 보인다면 후자는 정연한 윤곽선 안에 안정된 색감으로 채색돼 있다. 전자에서 재판관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다면 후자에서는 어떤 포용성마저 느끼게 한다. 이는 루오에게 심경의 변화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내가 재판관을 이처럼 험악한 모습으로 그리게 된 것은 남을 심판해야 하는 인간을 보고 고뇌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재판관의 얼굴과 피고의 얼굴을 혼돈하게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은 나의 착각 때문이다. 온 세상의 보물을 준다고 해도 나는 절대로 재판관은 되지 않을 것이다.”(『조르주 루오』, 세계미술전집 20, 한국일보사, 1973. 96쪽)

확실히 조르주 루오는 타락한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모순적 상황, 그 근본적 딜레마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만일 이런 모순적 상황을 보고도 외면한다면 그다운 태도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사회에 만연한 탄식의 상실을 방관하거나 만사가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도록 내몰린다면, 진정한 애통과 비판이 들어설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 예언자의 임무는 사람들이 고통의 경험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이다.(Walter Bruggemann, Prophetic Imagination, 김기철 역, 『예언자적 상상력』, 복 있는 사람들, 2009, 117쪽)

파멜라 로시 킨(Pamela Rossi-Keen)은 조르주 루오의 예술을 브루그만이 말한 ‘예언자적 상상력’을 지닌 화가로 파악하였다(Pamela Rossi-Keen, ‘Art in Community’, in A Prophet in the Darkness, ed., Wesly Vander Lugt, IVP, 2024, 67-80쪽).

파멜라 로시 킨은 루오가 환상세계에 갇혀 있어 무감각하고 어떤 상황인지 분별조차 할 줄 모르는 백성을 깨우치려고 했던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감상자를 세상의 탄식에 참여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를 ‘예언가’로 간주하는 것은 신중을 요하지만 ‘예언가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루오는 낙관적 처방에 만족하는 살롱 화가들의 관행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애통이 현실의 무감각을 꿰뚫을 수 있기를 바랐다.

판사를 주제로 한 루오의 예술은 초기에는 사회적 약자를 경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시작했으나, 차츰 판사든 피고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일 뿐이라는 인식으로 발전하였다. 그림에 스며든 그의 감정도 분노 대신 애통의 언어로 바뀌었다.

“나는 밭고랑 속에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의 침묵의 벗입니다. 나는 반역하는 인간이 그의 악과 선을 그 뒤에 숨겨두는 나병환자의 석벽(石壁)에 기어오르는 끝없는 고난의 담쟁이 덩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인 나는 이처럼 위험한 시대에는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밖에 믿지 않습니다.”(『루오, 보나르, 마티스』, 세계미술전집 6, 금성출판사, 1973, 78쪽)

대체로 사회를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풍자화가들 중에는 염세주의자들이 많다. 그들은 무엇을 도모하지 않으며 누구를 사랑할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루오를 그런 유형의 풍자화가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법조인들을 웃음거리로 삼지 않았으며, 조롱이나 경멸의 뜻도 없다. 그들 역시 매춘부나 피에로와 마찬가지로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할 인간으로 바라보았다.

루오는 자신의 신앙고백에서 미술을 ‘숨죽인 흐느낌’(발터 니그, 『조르주 루오』, 윤선아 역, 분도출판사, 2012, 98쪽)으로 이해한다고 했는데, 이는 그의 예술관을 집약한 표현이다.

조르주 루오는 죄 많은 세상 가운데서 고통에 짓눌린 인간에 대해 슬퍼하고 그러면서도 그리스도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약속을 상기시킨 화가였다.

서성록 명예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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