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과 보수신학 한국교회에 알려준 마두원 선교사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초기 내한 선교사 7차 세미나

근대 음악 교육 한국에서 펼쳐
평양 숭실에서 음악 등 가르쳐
수준 높은 음악 교육 수요 충족
신사참배 반대하다 강제 추방
방지일·박윤선·김홍전 등 제자
박태준·한동일·백건우 음악계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유나이티드문화재단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유나이티드문화재단

한국개혁주의연구소 초기 내한 선교사 7차 세미나가 3월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유나이티드문화재단 더글라스홀에서 유나이티드문화재단 후원으로 개최됐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말스베리 선교사와 한국교회’를 주제로 한국 최초 음악선교사이자 ‘한국 음악의 아버지’로까지 불리는 드와이트 말스베리(Dwight R. Malsbary, 1899-1977) 선교사의 사역을 조명했다.

‘말스베리의 음악 선교사역(1929-1955)’을 발표한 이은선 박사(안양대 명예교수)는 “말스베리 선교사는 음악 선교사로서 한국 근대음악인 1세대를 양육한 공로자요, 신사참배에 반대하고 방지일·박윤선·강태국(한국성서대 설립자)·김홍전 등과 교제하며 신앙의 유산을 물려줬다”며 “추방됐다 해방 후 돌아와 음악 방송을 하며 제자를 길러냈다. 이러한 말스베리 선교사의 헌신적 음악선교 사역을 잘 이어받아, 고귀한 음악 선교 전통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전했다.

우리에겐 ‘마두원(馬斗元)’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말스베리 선교사는 1924년 시카고 셔우드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1929년까지 모교 피아노·음악 이론 강사로 일하다, 30세가 되던 1929년 미국 북장로회 음악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됐다. 평양 숭실전문학교 곽안련 선교사가 셔우드 음악원 총장에게 말스베리 부부를 음악 선교사로 파송해 달라는 요청에 응답한 것.

이은선 박사는 “말스베리는 평양 숭실전문학교 음악과장, 평양외국인학교 서양학교 음악(밴드)·관현악·피아노 강사로 가르치며 한국에 서양음악을 소개했다. 그가 조직한 숭실밴드는 한국은 물론 만주에서도 순회공연으로 사람들을 위로했다”며 “그에게서 김동진(작곡가), 박태준(전 연세대 음악대학장), 김홍전(대전대학 학감, 음악가), 채리숙(오페라), 한동일(피아니스트), 백건우(피아니스트), 안익태 등 굵직한 음악가들이 배출됐다”고 말했다.

1936년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마두원은 숭실전문학교를 사임하고 학생들과 자신의 집에서 기도회를 열었고, 이곳에서 기도한 학생들이 강태국·방지일·박윤선 목사 등이었다. 1940년 태평양 전쟁 발발 후 미국으로 강제 귀국당해 1941-1942년 키케로(Cicero) 성경 교회에서 목회하고, 1942-1947년 캐나다 프레어리(Prairie) 성서학원에서 악리론·피아노·합창·관현악 등을 가르쳤으며, 1947년 페이스 신학교에서 보수신학을 공부했다.

1948년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 중앙방송국(현 KBS) ‘Piano playing at the religious’를 진행하면서 매 주일 아침 15분씩 피아노곡들을 들려줬는데, 이때 제자가 피아니스트 한동일과 백건우였다. 이때 방송했던 24곡이 제자 김애자에 의해 음반으로 제작됐다. 이후에도 침례신학교·성결신학교 등 여러 신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지휘와 연주를 겸했다.

▲마두원 선교사. ⓒ크투 DB

▲마두원 선교사. ⓒ크투 DB

이 박사는 “그가 한국에 왔을 때는 서양 음악에 대한 요구가 많았다. 특히 평양은 1907년 대부흥 운동 이후 1천 명이 넘는 교회들이 생겨나고 여러 학교에서 근대 교육이 실시됐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과목이 음악이었다”며 “교회들도 음악에 대한 요청이 많았다. 이에 따라 1913년 길선주 목사 요청으로 모우리 선교사가 성가대를 조직하고, 숭실전문학교에서는 음악대가 조직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와 교회에서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던 상황이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말스베리는 평양에 들어와 음악 교육을 통해 복음을 전파했다. 1차로 수준 높은 음악 교육을 원하던 평양 지역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중심으로 다양한 음악 이론을 가르쳤다”며 “장로교 계통뿐 아니라 감리교 계통 학생들까지 가르치는 폭넓은 교육을 통해 여러 제자들이 배출됐고, 평양 숭실전문학교 합창대와 밴드를 교육해 평양과 전국을 순회하며 수준 높은 교회 음악을 들려주면서 복음 전파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또 “숭실전문학교 음악대는 1917년부터 활동했는데, 말스베리 입국 이후인 1930년대 더욱 활성화됐다. 1932년 평양 연주회는 참석자가 4천 명을 넘을 정도였다. 그는 1934년 기고한 글에서 ‘한국인들이 음악적 재능이 있지만 이점을 누리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평양 중심의 음악 교육 진전을 소개했다”며 “당시 숭실전문학교 밴드가 21명, 숭실중학교까지 합치면 40명에 달했다. 여성 선교사들과 말스베리 부부를 통해 서양 음악과 만나며 근대문명을 접한 학생들은 근대적 주체성 획득 열망을 노래하고 연주하며 예배 공간을 만들어냈다”고 정리했다.

마두원의 해방 이후 사역 고찰

‘마두원의 해방 이후 사역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이종전 박사(전 대한신대 교수)는 “마두원은 정부가 수립된 1948년 미국 성경장로교회 목회자로 한국에 돌아와 약 30년간 이 땅 곳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다”며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강제 추방당할 정도로 보수 신앙을 가졌던 그는 돌아오자마자 출옥성도들이 새롭게 설립한 부산 고려신학교에서 강의하며 보수신앙을 가르쳤고, 근본주의 단체로 알려진 국제기독교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ICCC) 한국 지부장이 된다”고 소개했다.

이종전 박사는 “마두원은 고려신학교 이전에 경제적으로 기여하고, 부산 지역에서 여러 교회를 개척했다. 1959년 총신이 장신과 분리될 때 용산역 앞에 새 교사를 마련해 신학교 역사를 이어가게 했다”며 “대한신학교(현 안양대학교)도 마두원과 ICCC의 도움으로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김치선과 함께 대신 교단을 창립했다. 이 외에 성결교신학교(현 성결대학교)와 그리스도의교회신학교(현 강서대학교)와 이 학교들이 속한 교회들, 대한기독교침례회, 예수교감리교회. 호헌 측, 강태국의 성서신학 측(현 성서대학교), 순장 측, 대신 측, 성경장로회 측 등 여러 교단 교회들, 즉 ICCC 회원 교단과 교회들의 재정을 지원했다”고 했다.

이 박사는 “마두원은 ICCC 한국지부인 ‘한국예수교협의회(Korea 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이하 KCCC)를 조직해 WCC에 대항하던 ICCC의 입장을 대변하고, 한국교회 안에서 반(反) WCC 운동 중심 역할을 했다”며 “다만 그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순직하면서 사역을 마무리하지 못함으로써, KCCC의 역할과 존재감이 급속하게 상실된 것이 못내 아쉽다”고 정리했다.

▲1937년 5월 1일, 중국으로 떠나기 전 ‘기도 동지’들의 환송회. 뒷줄 왼쪽부터 김진호, 박기환, 김예진, 안광국, 도승주, 앞줄 왼쪽부터 박윤선, 방지일, 마두원. 따로 사진을 붙인 이는 이유택, 김인서(왼쪽부터). ⓒ홍성사

▲1937년 5월 1일, 중국으로 떠나기 전 ‘기도 동지’들의 환송회. 뒷줄 왼쪽부터 김진호, 박기환, 김예진, 안광국, 도승주, 앞줄 왼쪽부터 박윤선, 방지일, 마두원. 따로 사진을 붙인 이는 이유택, 김인서(왼쪽부터). ⓒ홍성사

그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에는 사역 중심지가 강원도로 옮겨간다. 내륙인 홍천과 춘천, 인제, 그리고 설악산 너머 동해안 일대에 교회들을 개척하고 살폈다. 처음엔 병원 중심 사역을 펼치다, 자연스럽게 선교를 시작했다”며 “그가 세운 교회는 강원도에만 26-27곳에 달하는데, 제이드병원·신앙성서학원(성경고등학교)·결운중고등학원 설립 및 활동과 연관된 곳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끝으로 “마두원은 교회 개척을 비롯해 신학교, 성경고등학교, 병원, 구제 사업과 구호금 지원, 잡지 발간, 그리고 신학과 계몽을 위한 기고문을 썼다. 다양한 사역을 하면서도 정통 신학 견지를 위해 노력한 부분에 감사하고, 이를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라며 “이러한 노력을 ‘후기 근본주의적’으로 단정해 그의 수고를 모두 부정하거나 소외시켜선 안 된다. 그가 지키려던 정통신학은 분명하고 정당하게 평가하되, 후기 근본주의적 성향이 미친 부정적 면에 대해서도 공정한 평가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마두원 선교사와 허암 김홍전 박사

이승구 박사(합동신대 석좌교수)는 ‘마두원 선교사와 허암(虛庵) 김홍전 박사’라는 제목으로 “마두원 선교사의 가장 큰 기여는 김홍전(1914-2003)에게 미친 영향”이라며 “김홍전은 평양에서 1935-1937년과 1939-1940년 마두원 선교사 부부에게서 작곡과 피아노를 사사받았다. 37세(1951년)에 시카고 센트럴 콘서바토리에서 작곡을 연구하고 명예 음악학 박사를 취득한 허암은 마두원에게서 ‘음악이 교회 공동체에서 의미 있게 사용돼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그런데 결과적으로 예배에 대한 이해나 바른 예배를 위한 노력, 특히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에 하나님 나라라는 호방한 사상을 가지고 온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성도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일에 있어, 허암은 마두원보다 훨씬 뛰어났다”며 “아마 마두원 선교사도 그렇게 말씀할 것이다. 마두원에게서 잘 가르침을 받아 훨씬 뛰어난 족적을 역사에 남긴 허암 김홍전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최소한 이분들의 좋은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이라도 제대로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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