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반(反)종교개혁의 3가지 교훈”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종교개혁에 대한 가톨릭의 반응

반종교개혁 3가지
1. 영성 회복
2. 트렌트 공의회
3. 예수회

▲최더함 박사가 강의하고 있다. ⓒ마스터스

▲최더함 박사가 강의하고 있다. ⓒ마스터스

2천 년 교회사를 차례로 학습 중인 마스터스 세미너리 제17차 오픈강좌가 3월 29일 오전 서울 은평구 진광동 이로운프라자 601호(오아시스 영어)에서 개최됐다.

이날 강좌에서는 ‘가톨릭의 반(反)종교개혁(Counter Reformation)’이라는 주제로 개신교의 종교개혁에 반대 또는 대항하는 가톨릭의 움직임을 지피지기(知彼知己) 차원에서 마스터스세미너리 책임연구원 최더함 박사(역사/변증신학)가 강의했다.

최더함 박사는 “종교개혁 열풍은 교황권 추락을 가져 왔다. 각국에 대한 교황청의 통제력은 이미 상실한 지 오래 됐다. 시급한 과제는 유럽 전체로 확산된 종교개혁 열풍이었다”며 “신자들은 더 이상 사제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종교개혁가들을 의지하며 새로운 신앙에 눈을 떴다”고 전했다.

최 박사는 “1천 년간 위세를 과시했던 로마가톨릭교회가 지배자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데는 불과 수년이 걸리지 않았다”며 “이에 내부에서 종교개혁 열풍을 잠재우고, 추락한 가톨릭교회를 개혁하려는 운동이 3가지 방향으로 전개됐다”고 소개했다.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de Avila, 1515-1582) 수녀. Eduardo Balaca(1840–1914)의 그림이다. ⓒ위키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de Avila, 1515-1582) 수녀. Eduardo Balaca(1840–1914)의 그림이다. ⓒ위키

그 첫째는 깊은 영성을 가진 지도자들이나 은둔자들에 의한 ‘영성 회복 운동’이었다. 대표적 인물이 16세기 스페인 출신 가르멜수도회 수녀이자 수도사인 ‘아빌라의 테레사(Teresa de Avila, 1515-1582)’. 그녀는 1560년대부터 수녀원의 대대적 개혁을 주창하고, 고향인 아빌라를 시작으로 스페인 전역에 남녀 수도원 19곳을 창립했다. 그녀는 가톨릭에서 중세 힐데가르트 폰 빙엔, 시에나의 카테리나와 함께 여성 수도자의 대모로 존경받으며,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성인에 추대됐다.

또 ‘십자가의 성 요한(Saint John of the Cross, 1542-1591)’이 있다. 1563년 가르멜수도회에 입회하고 4년 뒤 사제가 된 그는 ‘아빌라의 테레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남성 가르멜수도회 개혁에 앞장섰다. 이후 두루엘로 지역에 새 수도원을 건립하고, ‘맨발 가르멜회’를 창립했다. 반대파에 의해 1577년 유폐됐지만 이듬해 탈출했고, 1581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1726년 교황 베네딕토 13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됐다.

둘째는 ‘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ent, 1545-1563)’를 통해서다. 이탈리아 북부 트렌트와 볼로냐에서 교황 바오로 3세가 소집한 로마가톨릭 공의회는 18년 동안 계속되면서 약 255명의 신학자들이 참여했고, 17편의 교리와 개혁 교령을 발표했다. 새로운 개혁교회 등장으로 위기감을 느낀 가톨릭교회가 ‘반종교개혁’ 기치 아래 미비한 교리들을 재정비하고, 종교개혁의 열풍을 차단하기 위한 내부 결속을 위해 진행됐다.

최더함 박사는 “한스 큉 같은 가톨릭 신학자는 ‘트렌트 공의회는 개신교의 종교개혁에 수많은 파문과 정죄로 응답한 공회’라고 비판했다. 이 회의를 통해 가톨릭교회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전 유럽을 대상으로 이단 척결을 위한 종교재판소 등을 설치·운영하며 개신교인들에게 엄청난 폭력을 가하고 죽였다”며 “한편 많은 교리를 확정했다. 선행과 믿음이 함께 필수적이라는 구원론을 선언하고, 전통을 성서보다 우위에 둔 주장을 철회해 전통과 성서가 함께 최종적 권위라고 공포했다”고 소개했다.

▲트렌트 공의회를 묘사한 그림. ⓒ위키

▲트렌트 공의회를 묘사한 그림. ⓒ위키

이 외에도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라틴어 성경 불가타 역을 공인했고, 트렌트 신앙고백(1565), 로마 교리서(1566), 미사의 성문화(1570), 원죄와 의화, 구원, 성사, 성인 공경 등의 주요 과제를 다뤘다. 가장 많은 비판과 공격의 대상이던 화체설과 독신제, 그리고 교황청 개혁은 인정하지 않은 채 이전대로 유지했다.

최 박사는 “개신교회와 달리 과학과 새로운 사조에 대한 보수적 입장에도 변화가 없었다. 수도사 지오다노 브루노(Gi0rdano Bruno, 1600)가 우주의 계속되는 팽창, 하늘의 별들이 태양과 같은 종류임 등을 주창하자, 이단으로 몰아 화형시켰다”며 “그러나 일부 개혁 조치들도 있었다. 면죄부를 폐지했고, 성직매매도 금지했다. 성직자 자질을 높이기 위해 신학교를 설립했고, 주교들이 호사스러운 삶을 뉘우치는 반성문을 작성했다”고 했다.

셋째는 ‘예수회(Jesuits)’이다. 1534년 8월 15일, 이그나티오스 로욜라(Ignatius of Loyola, 1491-1556) 주도로 젊은이 7명이 파리 몽마르트 성당에서 ‘예루살렘 순례, 이교도 선교, 청빈과 순결’을 기치로 결성했지만, 실제 창립 목적은 전 유럽으로 확산 중인 종교개혁에 맞불을 놓고 안으로는 가톨릭교회를 개혁하기 위함이었다.

1540년 교황 바오로 3세는 로욜라와 동료들을 사제로 서품하고, 예수회를 공식 승인했다. 이후 이들은 유럽 전역에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등 왕성한 대외 활동을 펼쳐, 한 세기 만에 1만 2천여 명의 거대한 수도회로 발전했다.

▲엔도 슈사쿠 원작의 <침묵>을 영화화한 <사일런스>. 리암 니슨이 예수회 사제로 분했다.

▲엔도 슈사쿠 원작의 <침묵>을 영화화한 <사일런스>. 리암 니슨이 예수회 사제로 분했다.

예수회 활동 3가지
1. 전 유럽 학교 설립
2. 선교사 집중 양성
3. 개신교 확산 저지

예수회는 3가지 활동에 중점을 뒀다. 첫째로 유럽 전역에 학교를 설립해 지적 성장에 주력했다. 과학과 공학은 물론, 라틴어·헬라어, 고전 문학과 시·음악·수사학·논리학·철학·법학 등을 수학했다. 특히 현대에선 시각·공연 예술도 학습했다. 1640년대 학교가 500여 곳에 달했다.

둘째, 선교사들을 집중 양성했다. 1541년 인도에 도착했고, 마테오 리치 등이 중국으로 향했다. 1580년 일본, 1597년에는 시암(태국), 1661년 티벳, 이후 브라질과 파라과이 등 라틴아메리카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도 향했다. 셋째, 개신교 확산 저지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 결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독일 남부 등지에서 개신교 확산을 저지했다.

최더함 박사는 “예수회는 광야의 고립된 수도 생활을 거부하고 사회 속 사역을 택했다. 이들은 교황에게 충성을 맹세하지만, 지적 독립성과 지침으로 바티칸에게 위협이 되기도 하고 정치적 분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며 “근대에는 사회 정의와 인권 문제에 깊이 개입해 대중의 관심을 모아 세력을 확대한 결과 2013년 첫 예수회 출신 교황이 탄생했다. 그가 바로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오늘날 예수회는 독립적 총장을 중심으로 6대주 112개국에서 1만 9,216명의 성직자가 활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박사는 “현재 예수회의 구성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도적 사역을 위해 결성된 정규 사역자들의 기구, 또 하나는 자선 혹은 기부에 의탁하는 ‘탁발수도회’”라며 “현재 ‘제수이트(Jesuit·예수회)’라는 명칭은 주로 탁발수도회를 가리키는 별칭이 됐다. 창립자 로욜라는 사용하지 않은 명칭이지만, 세가 확대되자 자연스럽게 이들을 ‘예수회’라 부르게 됐다. 이들은 교회 개혁이 개인 회심과 함께 시작돼야 한다고 보고, 회심을 위해 ‘영성 수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고 했다.

그는 “예수회는 대사회적 측면에서 공헌이 크지만, 가톨릭 수호를 기치로 만든 종교재판소를 통해 수십-수백만 명에 달하는 개신교인들을 학살했다. 새로운 사조에 관대함과 개방적 태도를 가진 단체가 유독 개신교에 대해서만 가혹하게 대한 것은 이율배반적 태도”라며 “수도회라는 그럴듯한 표징으로 자유로운 활동을 추구했지만 그들의 손에는 피가 묻었고, 심중에는 참된 믿음을 소유한 종교개혁 후손들에 대한 미움과 증오와 살의에 젖어 있는 것은 그들의 실제 정체가 무엇인가를 가늠케 한다”고 평가했다.

▲가톨릭(천주교) 절두산 순교성지. ⓒ페이스북

▲가톨릭(천주교) 절두산 순교성지. ⓒ페이스북

반종교개혁 교훈 3가지
1. 행위 신앙 경계
2. 겉과 속 같아야
3. 영혼 구원 먼저

여담도 전했다. 예수회 수사들 중 포르투갈 출신 세스페데스(Cespedes)는 1590년 일본에 선교사로 도착했는데, 그는 2년 후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라는 세례명까지 받은 가톨릭 신도 고니시 유키나가 장군 군대의 종군 신부로서 조선 땅을 밟기도 했다. 고니시는 이순신과의 최후 결전이던 노량해전에서 완패하고 돌아가면서 조선인 포로들을 데려갔는데, 이들이 일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해 최초의 조선인 가톨릭 신도가 됐다.

이들 중 ‘줄리아’라는 세례명을 받은 조선 여성이 고니시의 수양딸이 됐다고 한다. 훗날 고니시는 토요데미 히데요시 사후 권력 암투에서 패배했고, 할복을 요구하는 적군에게 자신이 ‘기리시단(그리스도인)’이라며 목을 치라고 항변했다 교토 거리로 끌러가 모욕을 당하고 가족들과 처형당했다고 한다. 수양딸 줄리아는 고니시에게 승리한 도쿠가와의 수청 요구를 거부해 교토로 유배됐다가 사망했다. 그녀의 기념비가 현재 마포 절두산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최 박사는 “가톨릭 반종교개혁의 교훈은 3가지이다. 먼저 ‘행위 신앙’을 경계해야 한다.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한다(이신칭의)”며 “둘째로 속과 겉이 같아야 한다. 믿음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신행일치). 셋째로 영혼 구원이 가장 먼저다. 사회복음을 먼저 추구하는 행위는 모두 반복음적”이라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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