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실하던 교회학교 학생들이, 왜 대학만 가면 교회를 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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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나영 칼럼] 크리스천을 만들어 가는 것들

개혁주의 기독교예술학 전문가인 서나영 박사님의 ‘예술로 진리 보기’ 시리즈입니다. -편집자 주

▲한 도서관 모습.    ⓒpexels.com
▲한 도서관 모습. ⓒpexels.com

기독교 세계관 도서만 읽어야?
대학 진학 시 학과 전공 도서들
하나님 제외 이론과 법칙 가득
다른 영역 지식 기독교로 통합
능력 길러야 하나님 세계 회복
다른 생각에 귀 기울일 연습을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날들을 살고 있다. 진실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고 진리의 샘을 찾아 모험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인간의 진정성이라는 소망을 품게 하는 난세(亂世) 또한 감사하고 아름다운 날들이 아닌가!

최근 읽은 몇 권의 책이 유독 많은 통찰을 제공한 것은 시대가 주는 선물이었다. 경쟁은 자유시장 경제에서 가장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 피터 틸(Peter Thiel)의 경영서 <제로 투 원>, 기독교와 교회와 나 자신의 핵심 헌신을 돌아보게 만든 홍성태 교수의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 인간 본성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공동체론을 펼친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의 <다시 집으로 가는 길>, 래리 크랩(Larry Crabb)의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 등이 유독 그랬다.

며칠 전 기독교 교육학 박사과정 세계관 수업 시간, 한 학우님이 던진 질문이 마음에 사라지지 않는다. “기독교 교육학자가 왜 다른 세계관을 말하는 일반 책들을 읽어야 하는가? 그토록 대중의 사랑을 받은 책이라면, 크리스천 학생들에게 금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이신론을 공부하면서 최고의 이신론자가 쓴 책을 읽지 않는다고? 이 현대를 살면서 현대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니체의 글을 읽어보지 않는다고?’라는 즉각적인 반응은 숨기고, 많은 포장을 해서 그녀의 뾰족한 마음을 달래 줄 언어들을 택하느라 진땀이 났었다.

기독교 외의 다른 사상과는 대화 테이블 자체에도 앉지 말라고 가르쳤던 신학교 출신인 필자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교회에서도 멀리 나무 뒤에 숨어서 그 테이블에 돌을 던지는 태도만 배웠을 뿐, 혹시 잘못된 물이 들까 과잉 보호 아래 지켜진 크리스천의 구별됨과 정체성 형성의 노력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절대로, 그것이 다는 아니다. 따라서 이 글은 수업에 못다한 사적인 말들이자, 크리스천을 만들어가는 것들에 대한 짧은 변증이다.

책을 통한 공감과 확장, 그리고 분별

이 시대의 가장 큰 불행은 ‘조각난 마음’이다. 지나치게 세분화된 저마다의 전문 영역 외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마케팅 전문가 홍성태 교수는 한 기업의 임원들에게 기업 핵심가치를 물으면 다 다르게 대답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고, 다른 곳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 한국사회의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기 영역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겨울 큰 파장을 일으킨 넷플리스 의학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데, 평생 의사로 헌신해도 자신의 분과 영역 외에는 눈을 돌리지 않아 전체를 봐야 하는 중증외상센터 의사가 그토록 희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회 리더들은 늘 궁금해한다. 왜 학생들이 대학을 가면 그렇게들 많이 교회를 떠나가는지. 그래서 열심히 분석하고 나름 전략들을 세우기 바쁘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보이는 가장 일차적인 이유는 그들이 읽는 책들이다.

각 전공 책들은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하나님을 제외한 이론들과 법칙들이 가득한 사회구조와 지식들을 습득해 나간다. 그리고 그들은 교양철학서에서, 경영 경제서에서, 법학과 의학서에서, 예술과 각종 기술서에서, 기독교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배워본 적이 별로 없다. 더군다나 자기 영역 외의 지식을 통합하는 것에 취약하다. 다른 영역의 책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더더욱 해본 적이 없다.

크리스천이 왜 기독교 사상 외의 책을 읽어야 하냐고? 성경과 신앙서적 읽기에도 부족한 것이 크리스천의 지혜로운 세월이라고? 성경과 신앙/신학 서적으로 반평생을 채운 필자처럼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포스트모던 세상을 이길 하나님의 군대는 특별한 전략이 필요하다. 뜨거운 교육열과 IT로 유명한 한국은 더더욱 지성의 세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모든 책에서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세계로 돌릴 전략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말씀 앞세워 훈계·윽박지르기?
하나님 크신 사역 축소 우려돼
복음에 빚진 자의 태도 필요해
인간에 대한 소망과 열정 생겨
하나님 변화의 여러 통로 믿길
성령님 역사 숨겨진 비밀의 길

요즘 필자가 속한 독서모임에서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파헤친 인간 본성에 관한 도덕감정론을 알기 쉽게 해설한 러셀 로버츠(Russell Roberts)의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을 읽고 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또는 학습적으로 끌리는 정치관이나 경제론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서 시작한다는 사실, 자유시장경제론은 철저한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에서 파생된 결과라는 것, 최초의 자유시장경제론은 경쟁과 이기심을 피해야 할 악으로 보았다는 사실, 세계관 전문용어로 ‘따뜻한 이신론자(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하나의 신이 존재하지만 인간과 세상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선과 도덕에 대한 기본 상식을 중시하는 사상가들)’에 대한 통찰과 분별,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질서가 양립할 수 있는 상호동감의 역량에 대해 질문하며 사유하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신학교와 교회에서 늘 요구하는 ‘의견 일치’가 아니다. 서로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 이해하고 인내하는 연습, 겸손하게 설득하는 연습, 각자 고독한 시간에 하나님을 묵상하고 결론을 내는 연습을 한다.

크신 하나님의 세계와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없어도, 마음을 다해 서로의 관점을 배우고 이해하며 분별하려 한다. 다름에 대해 인내와 소망의 태도로 질문하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설득의 방법을 배운다.

‘사랑에 빚진 자’의 태도로

구원에 대한 진리는 어린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며(딤전 2:4), 성령의 조명하심만이 계시를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요일 5:5-12; 딤후 3:7). 그러나 ‘진리는 원래 단순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수고로운 설명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하나님의 크신 사역을 축소하는 강력한 행위일 수 있다.

필자가 기독교 수업 현장에서 교수에게 들었던 최악의 대답은 (교회 내 여성의 위치에 대한 학생의 질문에 대해) ‘진리를 따르지 않으면 자기손해’라는 단답형 결론이었다. 슬프게도 많은 경우 말씀을 앞세워 훈계하고 윽박지르며, 더 많은 설명을 해주지 않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그 교수처럼 상대방의 낮은 인식수준과 지식의 양을 전제한다면 또는 상대방의 마음의 강퍅함에 대해 인지했다면, 설득에 대한 동기 자체를 잃기 쉽다. 오죽하면 키에르케고르가 고심 끝에 얻은 결론은, ‘결국 인간은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자신이 자기에게 질문을 던짐으로 인한 끝없는 성찰’만이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직 성령의 도우심만으로 변화가 가능하다’는 위대한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좋은 변명거리로 둔갑하기 십상이다. 성경 속 예언자들의 ‘회개하라’는 강력한 한마디 외에는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들이 믿는 진리의 핵심이니 말이다.

필자의 경우를 되돌아 볼 때, 사람이 변하는 것은 천지가 개벽할 만한 일이긴 하다. 염세적이고(사람의 변화에 대한 소망을 갖기 힘들고) 그저 나를 채워가는 것에 안심하고 안주하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쩌면 가장 구제불능의 사람일지도 모른다. 복음을 알고 이해하고 믿고 있지만, ‘복음에 빚진 자(롬 1:14-15)’의 마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상태가 그렇다.

사랑에 빚진 자의 태도는 배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저 긴 시간 변하지 않는 사랑을 받고 인식하고 누리며 반응하는 것이 전부였다. 가능성 없던 한 인간이 어느 날 문득, 나를 향해 얼마나 많이 크게 인내하며 용서와 사랑을 베풀었는가를 깨닫게 되는, 그런 기적의 순간을 맞는 것이 전부였다.

그 감탄의 순간부터 빚진 자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확실했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소망이 싹트고 그 열정이 가슴을 녹인다. 그래서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마음 깊은 곳에 꽁꽁 싸매 딱딱하게 지키고 있던 진리의 지식이 부드러워지고, 그 진리의 풍성함을 감당하지 못해 밖으로 통하는 작은 통로들을 끊임없이 개발하게 된다. 결국에는 그 진리가 삶이 되게 연습하고 함께 누릴 작은 옹달샘으로 흐르게 된다.

사랑에 빚진 자는 하나님께서 수없이 세밀하고도 풍성한 통로들을 통해 그의 사람을 빚어가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람을 진리 가운데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령님이라는 확신은 더 단단해지고, 눈에 보이고 주어져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는 생명력이 분출된다.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장착되며, 사상과 문화의 다름도 세대 차이의 수고로움을 견디며, 오직 한 성령의 선하신 일을 바라보며 소망을 노래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새 창조는 ‘빚진 자’의 진심과 열정으로 숨겨진 비밀의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닐까? 수고롭지만, 더 넓고 깊은 하나님의 세계를 탐험해보지 않겠는가? Soli Deo Gloria!

서나영 박사
미국 SBTS(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회음악(MM), 신학(M.Div.equi.), 기독교 예술학(Ph.D)를 공부하고, 성서대학교, 백석대학교, 총신대학교에서 강의하였으며, 현재 미국 MBTS(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Asian Study)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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