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거래 아닌 자발적 희생”
신학계, 입증 가능한 것만 인정
성경, 한계 있는 이성 합치해야?
학문적 이성주의-엄격 근본주의
양쪽 극단 모두 거부하는 정교회
지식 넘어 거룩한 삶, 기도 적용
복음서, 예수 그리스도 산 증언
십자가 영화·드라마, 성경 왜곡
예수의 십자가 처형
유지니아 콘스탄티누 | 김성웅 역 | 쿰란출판사 | 448쪽 | 23,000원
“잔혹하고 고통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어떠한 이유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겸손의 최고 본보기인 순수한 사랑에서 나왔던 자발적인 희생이었다. 십자가를 거래의 한 요소로 간주하는 것은 십자가의 능력을 빼앗는 것이다. 십자가는 빚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닮아야 하는 본보기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지난 2천 년 동안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재해석되는 가운데,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네 복음서가 직접 전하는 내용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부제처럼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을 조명하고 있다. 성경 외 우리를 만족시키는 그럴듯한 해석이나 신학적 주장을 하나씩 배제하는 방식을 채택하며, 뭉뚱그리거나 허투루 넘겨짚지 않는다. 이는 저자의 학문적·신앙적 배경에 기인한다.
저자는 성경 해석학과 실천신학, 초기 기독교와 교부학 등을 섭렵한 학문적 여정을 토대로 ‘1세기 로마 식민지 유다에서의 예수 십자가형 선고와 실제 집행’에 다가서고 있다. 예수의 죽음과 관련해선 의학적 분석도 곁들이며, 크리소스톰과 알렉산드리아의 시릴(키릴로스) 등 초대 교부들도 자주 등장한다. 특히 법학과 정교회라는 배경이 눈길을 끈다.
이에 대해 “현대 신학과 성경학은 이성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것들만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정교회는 신약성경이 한계가 있는 인간 이성에 합치돼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며 “신학에 이성주의를 강조하고 인간의 이성을 적용하는, 중세 서구에서 발전된 방법론은 초대교회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정교회는 이 고대 교회 사고방식을 보존해 왔고, 교부와 초기 교회 전승, 믿음과 영적 영감을 존중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정교회는 학문적 이성주의와 엄격한 근본주의 양쪽 극단을 모두 거부한다. 정교회 성경학자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정신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도록, 훼손되지 않았던 그 전승을 따르는 것”이라며 “교부들은 성경 원문을 깨닫기 위해 사고방식과 지식뿐 아니라, 거룩한 삶과 기도도 적용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였고,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살아 있는 증언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최근 미디어에 비친 십자가 처형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대해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멜 깁슨 감독은 일부 신비주의자들의 환상과 같은 가톨릭 전승에서 끌어온 생각들을 추가했다”, 미니시리즈 <더 바이블>에 대해선 “성경을 희극적으로 왜곡시켜 명백하게 변질시킨 것을 포함해 곳곳에서 수많은 역사적·성경적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예수 죽음, 실수·우연 아니었다
희생, 구원 위한 값없이 준 선물
죽음으로써 죽음 멸하려 선택해
십자가, 복음서 메시지의 핵심
그 불합리성, 논리와 상식 거부
세상에서 볼 때 터무니없는 생각
저자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기 위해, 오늘날 독자들을 2천 년 전 예루살렘으로 데려간다. 이를 위해 1부에서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교의 제사장직 등 사회 특권층, 상세한 사회적·지리적·문화적 배경 설명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예수를 처형한 기폭제가 된 사건으로 나사로의 부활, 예루살렘 입성, 성전 정화 등을 꼽고 있다.
예수는 계속해서 다른 랍비들과 많은 유대교 지도자들과 충돌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고, 그들은 계속해서 도전적 질문을 던지거나 예사롭지 않은 덫을 놓으면서 예수를 ‘혁명가’로 꾸며 무너뜨리고자 했지만, 예수는 어떠한 정치적 목적도 없었고 메시아라는 소문을 경계했으며, 군중들이 당신을 왕으로 선포하려 하자 피신하기까지 했다.
2부 ‘재판정에 선 왕’에서는 유다의 배신부터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뇌, 결박과 붙잡힘에 이어 유대인과 로마인 앞에서의 재판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특히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셨다’는 묘사에 대해, ‘헤마토히드로시스(Hematohidrosis)라는 희귀하지만 의학적으로 입증된 증상인 문자 그대로 ‘피땀’을 흘리셨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이 ‘극도의 육체적 혹은 감정적 고통’ 상태에서 땀샘으로 공급되는 모세혈관이 터져 피가 스며나올 때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
예수가 십자가를 두려워한 것은 당신의 인성을 잘 드러내는데, 당대에 하나님 혹은 어떤 신이 인간이 된다는 것(성육신)을 인정할 수 없었고, 더구나 십자가 위에서 죽는다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2천 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 예수의 신성을 의심하는 것과 정반대였다는 것.
“예수의 죽음은 실수도 아니었고 우연도 아니었다. 그것은 희생이었으나, 예수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희생이었으나, 요구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희생이었지만, 구원의 계획 가운데 있는 최고의 역설인 값없이 준 선물이었다. … 그리스도는 죽을 필요가 없었고, 값을 치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음으로써 죽음을 멸하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이라이트인 3부에서는 당시 공개적 구경거리와 사회적 유기로서 십자가형의 함의를 상세히 진술하고, 십자가형 집행 과정과 사망 원인을 실험 결과와 법의학까지 동원해 짚어본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과 그 이후 일어난 어둠과 지진, 성소의 휘장 찢어짐, 백부장의 고백 등에 대해서도 학문적으로 검토한다. 2장의 ‘피땀’처럼 옆구리에서 흘러나왔던 ‘피와 물’도 분석한다. 무덤과 매장 등까지 고려한 뒤, 저자는 ‘맺는 말’에서 고백한다.
“십자가는 복음서에 있는 메시지의 핵심이다. 그 엄청난 불합리성은 논리와 상식 그리고 합리성을 거부한다. 제자들은 세상을 복음화하면서 반복해서 이런 현실에 부딪쳤다. … 우리를 사랑해서 우리를 위해 자발적으로 십자가에 하나님이 죽었다는 바로 그 생각은 세상에서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한없고 비합리적이며
분에 넘치고 설명 불가능 사랑
완벽하고 심오하고 말없이 전달
기독교는 종교 아냐, 깊은 개인적
신성한 관계 경험할 교회 설립해
십자가라는 난제, 피할 수 없어
죄값 치르려? 정교회에선 이단적
하나님 문제인가? 우리에게 필요
세상 학문의 논리와 상식, 합리성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변증하던 저자는 결국, 십자가가 하나님의 한없고 비합리적이며 분에 넘치는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을 완벽하고 심오하게 그리고 말없이 전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기독교의 믿음은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 창시자가 없으며 또 인간의 논리에 부합하는 개념을 섞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종교를 설립한 것이 아니라, 결코 충분히 설명되거나 이해될 수 없는 그리스도와의 깊은 개인적인 신성한 관계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교회를 설립했다. 사랑과 같이 그것은 오직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고난주간 예수의 행적을 사건을 추적하듯 꼼꼼히 따라가고 싶은 이들,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싶은 이들, 특히 기존의 틀에 박힌 이분법적·인과론적 시각에서 벗어나 좀 더 성경적·통합적으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성경 속 단어 하나도 허투루 쓰이지 않았음이 좀 더 깊게 다가올 것이다. ‘정교회 전통 또는 신학’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십자가의 난제를 피할 수는 없다. 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선호하는 설명은 예수가 우리의 죄에 대하여 값을 치르기 위해 죽어야 했기 때문에 혹은 하나님의 노를 달래야 했기 때문에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필연적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교회에서 이단적인 것이다(대속으로 알려진).
이 개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문제에서 그 원인이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어떤 것을 필요로 하거나 요구하지도 않는다. 생각의 변화가 필요했던 것은 그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 변화가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