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다시 단순해지고 지금보다 더 유연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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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선교사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21) 마침내 그 날이 왔다

마침내 그 날이 왔다.
꽃을 피우는 위험보다
봉오리 속에
단단히 숨어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날이
(엘리자베스 아펠)

▲이윤재 목사가 재직하는 아프리카 우간다 쿠미대학교의 모습. ⓒ이윤재 목사

▲이윤재 목사가 재직하는 아프리카 우간다 쿠미대학교의 모습. ⓒ이윤재 목사

지난 4월 4일 대통령 탄핵을 선포한 날, 나는 캄팔라 마케레레 대학 학생들과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이 대학에 가서 졸업생과 재학생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한 지도 수년, 그 사이 함께 공부한 학생 중에 신학을 하겠다는 자원자가 생겨나 세 명이 한국 횃불트리니티로 떠나고, 그 빈 자리는 다른 학생들로 채워졌다.

토요일 아침 막 성경을 펴고 읽기 시작했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닥터, 어제 한국에 중요한 발표가 있지 않았나요?“ 나는 검은 눈을 반짝이며 말문을 연 학생을 보고, 한국 소식을 나눌 필요를 느꼈다. 한국 유튜브를 틀고 어제 발표된 탄핵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탄핵 인용을 선포하는 순간, 한국어도 잘 모르는 학생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눈물을 글썽이는 학생도 있었다. 놀란 것은 오히려 나였다. 그들에게 지구촌 반대편에 있는 다른 나라 정치가 왜 중요할까? 사람은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주신 본능적 정의감이 있는가? 그들 속에 오래 숨겨진 이디 아민의 상처가 남의 아픔에 대해 연민으로 나타난 것인가?

그렇다. 마침내 그 날이 온 것이다. 꽃을 피우는 위험보다 봉오리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날이. 역사는 항상 그렇게 흘러왔다. 사람들은 피어나는 봉오리를 덮어두면 진실도 역사도 덮이려니 생각하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봉오리는 터지고 고통스럽던 겨울은 마침내 아름다운 봄으로 피어난다. 이것이 역사다. 그리고 그 역사는 오늘도 반복된다.

문제는 한국교회다. 한국교회는 오늘 역사의 꽃을 피우는 일에 기여하는가? 이 질문을 하면서 떠오르는 책이 있다. 아돌프 폰 하르나크 (1851-1930)이 쓴 『초기 3세기의 선교와 기독교의 확장』이다. 이 책은 1902년 독일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그 뒤에도 여러 번 개정판이 나왔지만, 저자의 핵심적 질문은 변하지 않았다. “기독교 복음은 어떻게 그 짧은 기간 동안 유럽에 퍼지고 마침내 로마 제국을 정복했는가?”

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복음의 단순성(simplicity)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의 유연성(versality)이다. 복음의 단순성은 기독교 복음이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복음은 유대교처럼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슬람교처럼 5대 계율을 준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대한 믿음에 집중한다. 복음의 단순성은 그들이 믿는 교리의 명증성과 함께 그들 삶의 아름다운 모범으로 나타났다. 로마의 철옹성 같은 이교 문화를 무너뜨린 것은 기독교인들의 도덕적 삶과 죽음도 불사하는 순교적 신앙이었다.

그러나 또 하나가 있다. 유연성이다. 초기 기독교의 단순성은 독선적인 것이거나 폐쇄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단순성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었다. 야만인에게는 야만인처럼, 연약한 자에게는 연약한 자처럼,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처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말한 바와 같았다(고전 9:21-22). 이 복음의 융통성(flexibility)이 교회를 승리하게 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어떤가? 단순한 복음과 보수적 기독교는 다르다. 자기 전통 안에 있는 무엇을 지키려는 보수성보다 복음의 단순성은 훨씬 크고 강하다. 단순성은 믿는 내용의 확실성과 함께 삶의 도덕성을 동반하기 때문에 보수성과 다르고, 역사를 바꾸는 예수의 위대한 실천적 영향력 때문에 보수성과 다르다.

한국교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가? 생각건대 한국교회의 보수성은 어느 날부터 독선적이 되고 폐쇄적이 되었다. 140년간 온갖 희생과 헌신으로 한국 사회의 자랑거리였던 교회가 꽉 막힌 폐쇄적 불통 사이비 기독교에 의해 대표되는 것 같아 부끄럽고 안타깝다.

그렇게 된 데는 양식 있는 교회들의 침묵도 한몫 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강단에서 말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것이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목회자는 나를 포함해서 하나님보다 신자들을 더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교회 때문에, 세상은 교회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든 나만 살겠다는 종교나 정치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다. 가장 나쁜 것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내 안에 있는 감옥 속에 조용히 숨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에서 고통을 덜어주려고 노력하지 않는 자기만의 정치나 종교가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 비신자들에게 교회가 정의의 반대편에 서 있고, 너무나도 분명한 상식 뒤에 숨어 자기 삶의 안위와 감정적 위로에만 몰두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여겨질까봐 걱정이다.

초대교회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교회는 다시 단순해져야 하고, 지금보다 더 유연해져야 한다. 지금이라도 한국교회는 아스팔트 집단에서 떠나 속히 기도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타다 남은 부지깽이같은 교회에 그나마 희망이 있는 것은 그 분의 끊임없는 인자와 긍휼 때문이다(렘 3:22).

나는 걷는다
나는 넘어진다
나는 다시 일어난다
그 사이
나는 춤춘다
(랍비 힐렐)

▲이윤재 선교사 부부.

▲이윤재 선교사 부부.

이윤재 선교사

우간다 쿠미대학 신학부 학장
Grace Mission International 디렉터
분당 한신교회 전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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