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못자국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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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호 박사의 ‘이중창’ 141] 못자국의 기도: 상흔에서 부활로

▲전시회 오프닝에서 함께한 작가 5인.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심정아 작가. ⓒ크투 DB

▲전시회 오프닝에서 함께한 작가 5인.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심정아 작가. ⓒ크투 DB

고난주간을 맞아, 우리는 다시금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의 희망 앞에 선다. 심정아(아트미션 회원) 작가는 그 고난의 의미를, 독특한 재료와 형식을 통해 깊이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인두로 태운 린넨 천, 불에 그을린 오브제, 깨어진 그릇들은 그의 손에서 고통의 흔적으로 남지 않고 회복의 서사로 변모한다.

심정아 작가의 작품세계는 단지 미학의 차원이 아니라, 심리학과 신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존재의 깊은 질문을 던지는 예술적 사유이다. 그의 대표작 ‘Stigmata’ 연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못자국을 상징하는 인두 드로잉이며, ‘Broken Beauty’와 ‘Broken Vessels’는 인간의 상처와 회복, 고난과 구속을 연결하는 이야기의 통로이다. 그의 작품은 단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고통의 현실을 통과한 자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로서 기능한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저는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 한 문장은, 그 어떤 장황한 예술론보다 심정아 작가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녀의 작업은 상처를 단지 묘사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그녀는 상처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절망을 고발하거나 분노를 쏟아내는 방향이 아니다. 오히려 그 상처를 조용히 응시한다. 그리고 그 깊은 응시 속에 치유와 회복, 나아가 신적 위로의 은밀한 침투를 기다리는 여백이 자리잡고 있다.

상처는 울부짖음을 동반하지만, 그 울음은 말로 쏟아내는 외침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터져 나오는 존재의 떨림이다. 심 작가의 예술은 바로 그 떨림을 조형화한다. 고통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기도하는 손’.

▲‘기도하는 손’.

고난을 응시하는 영혼의 손: ‘기도하는 손’과의 첫 만남

지난 1월 어느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친 후 나는 평창동 ‘갤러리 세줄’ 앞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전시장을 무심히 지나치려다, 입구 로비에 걸려 있는 한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린넨 천 위에 인두로 새겨진 ‘기도하는 손’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지 조형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 손에는 기도와 고백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무엇인가를 간절히 붙드는 손, 위로받지 못한 자들을 대신해 부르짖는 손, 상처 입은 존재들을 향해 내미는 손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상처의 존재론적 진실을 껴안는 ‘영혼의 손’이었다.

그 순간 나는 『기도할 때, 역전되리라』라는 40일 기도서 집필을 마치던 시점이었다. 그 작품은 마치 내 영적 여정에 대한 응답처럼 다가왔다. 단순한 미술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소명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가와의 인터뷰를 요청하게 됐고, 짧게는 1시간으로 예정됐던 대화는 어느 새 두 시간 넘도록 이어졌다.

그날 이후 수 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나는 그 작품 앞에서 종종 ‘멈춰 서는’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 그 멈춤은 단지 시선을 머무는 정지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존재를 다시 일으키는 정지, 나를 다시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멈춤의 은혜’이다.

▲‘달팽이 증언자를 위한 영혼의 안식처’.

▲‘달팽이 증언자를 위한 영혼의 안식처’.

상흔(Stigmata)은 기억의 고백이다

Stigmata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못 자국, 옆구리의 창 자국 등 십자가 고난의 흔적을 뜻하는 상징이다. 부활하신 예수는 자신의 상처를 지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마에게 보여주심으로 제자들의 불신을 치유하셨다. 이는 상처가 치유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학적 메시지이다.

심리학적으로도 상처의 기억은 억압됐을 때보다 통합됐을 때 오히려 치유가 시작된다. 상담학자들은 반복되는 불안과 회피, 자기파괴적 감정의 이면에는 말해지지 않은 상처의 기억이 있다고 본다. 상처는 지워야 할 수치가 아니라, 드러내고 직면할 때 비로소 회복의 가능성이 열리는 지점이다.

심 작가의 인두 드로잉은 상처의 흔적을 천 위에 태워 새기는 방식으로, 육체의 고통을 넘어 영혼의 상처를 상징화하는 작업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고난의 흔적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적 개입의 흔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상처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자리이다. 예수의 성흔이 우리를 위한 중보의 흔적이라면, 우리 인생의 상흔 또한 타인의 아픔과 연결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심 작가의 작품은 그 믿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심 작가는 개인의 상처를 넘어서 사회적 트라우마에도 깊은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그는 “큰 눈을 통해 세상의 고통과 아픔을 목격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목격하고 감탄하며, 사람들 속에 깃들어 있는 신의 형상에 대해 증언한다”고 말한다.

그가 출품한 작품 ‘달팽이 증언자를 위한 영혼의 안식처’는 바로 그러한 신학적 증언의 연장선이다. 흰색 텐트에 새겨진 눈은 울고 있는 눈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이 눈은 전쟁을 겪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달팽이처럼 등에 고통을 지고 살아가지만, 여전히 크고 깊은 시선으로 세상을 목격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텐트 바닥에는 시편 구절이 수로 새겨져 있어, 하나님의 말씀과 위로가 고통받는 이들의 쉼터가 됨을 상징한다. 그는 “예술은 교회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고통을 치유하는 신적 언어가 될 수 있다”고 고백한다. 그의 작업은 성육신의 영성과 사회적 연대의 예술이 만나는 자리를 보여준다.

▲텐트 바닥에 수로 새겨진 시편.

▲텐트 바닥에 수로 새겨진 시편.

부서진 아름다움(Broken Beauty)은 회복의 미학이다

심정아 작가는 “아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예술가”로 기억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가 추구하는 미학은 완전함이나 결함 없음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부서지고 금이 간 것, 태워지고 상한 것을 통해 더 깊은 미적 경험을 제안한다.

기독교의 복음은 완전한 자를 위한 소식이 아니라, 부서진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이야기이다.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죄와 상처를 짊어진 하나님의 몸이 가장 약해진 자리에서 쏟아낸 구속의 이야기이다.

‘Broken Beauty’는 트라우마 이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의 심리학적 개념과도 닮아 있다. 큰 상처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인생에 대한 통찰과 공감능력이 깊어진다는 연구들이 있다. 상처가 반드시 파괴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심 작가의 작업은 단지 상처의 표현이 아니라, 그 상처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아름다움에 대한 예술적 탐구이다. 그는 고백한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는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다.” 그 고백은 곧 위로이다.

▲부서진 아름다움(Broken Beauty).

▲부서진 아름다움(Broken Beauty).

깨진 그릇(Broken Vessels)은 은혜의 용기이다

사도 바울은 인간을 ‘질그릇’에 비유했다. 이는 연약함을 부끄러워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질그릇 속에 담긴 ‘보배’가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를 알게 하려는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심정아 작가의 ‘Broken Vessels’는 그릇의 기능성과 형태가 상실된 상태에서도 그것이 여전히 아름다움의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깨진 그릇은 다시는 원래대로 복원되지 않지만, 그 조각들을 잇고 이어 만든 또 다른 형상 속에서 새로운 스토리와 고유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의미 재구성’이라 부른다. 인간은 고통의 경험을 새로운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을 통합할 수 있다. 신학적으로도 이는 십자가의 상처를 지닌 부활의 몸이 보여주는 치유의 모델과 연결된다.

깨어졌다는 사실이 무가치함의 증거가 아니라, 새로운 은혜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 은혜의 이해가 깨어진 존재를 다시 살아나게 만든다.

번제(Burning Sacrifice)는 헌신의 불꽃이다

불은 파괴이자 정화이다. 심정아 작가의 ‘Burning Sacrifice’ 연작은 불에 그을린 이미지들을 통해, 고난과 소멸, 희생의 미학을 시각화한다.

구약의 번제는 온전히 불태우는 제사였다. 그 제사는 단지 의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존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헌신의 상징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완전한 번제였다.

심 작가는 그 불의 흔적을 통해 순교의 이미지, 소멸 이후 남는 고요한 아름다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어 회복의 불씨가 살아나는 장면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심리학적으로 ‘불’은 억제된 감정을 해방하고, 억압된 감각을 정화하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불은 통과하는 존재를 변화시킨다. 그 통과의 고통이 없이는 정금이 나올 수 없다.

신학적으로도 불은 하나님의 임재이자, 성령의 표상이며,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Burning Sacrifice’는 그렇게 인간의 고통, 하나님의 임재, 정화와 회복의 여정을 예술로 담아낸 하나의 예언적 메시지이다.

▲‘달팽이 증언자를 위한 영혼의 안식처’.

▲‘달팽이 증언자를 위한 영혼의 안식처’.

예술은 상처 입은 자를 위한 회복의 방언이다

심정아 작가의 작품은 단지 개인의 고백이 아니다. 이는 시대적 상처, 공동체의 아픔에 대한 공공적 예술의 응답이다. 세월호의 슬픔, 코로나 시대의 고립, 사회적 불안과 트라우마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은 시각적 위로이자, 존재론적 위안이 된다.

예술치료 주요 이론가들은 “예술은 마음의 언어를 잃어버린 자들이 회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 언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말보다 깊은 침묵 속에서 우리 안의 아픔을 통과시켜 회복으로 이끈다.

그의 작품 ‘기억의 방’은 고난을 단지 회피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기억의 방은 고통을 ‘기억하는 장소’이자, 그 기억을 통해 다시 삶을 회복하는 공간이다.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기억하지 않는 죄는 반복된다”고 했다. 고통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사랑으로 덮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르쳐주는 사랑의 방식이다.

고난주간을 지나는 이 시점, 우리는 그의 작품 앞에 서서 다시 묻는다. 나의 상처는 어디에 있는가. 그 상처는 은혜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인가. 그리고 나의 고통은 누군가를 위한 기도의 언어가 될 수 있는가.

심정아 작가의 예술은 우리 모두를 십자가 아래로 초대한다. 그리고 거기서 묻는다. “이 못자국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최원호 목사 캐리커처.

▲최원호 목사 캐리커처.

최원호 박사

심리학 박사로 서울 한영신대와 고려대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했습니다. <열등감을 도구로 쓰신 예수>, <열등감, 예수를 만나다>, <나는 열등한 나를 사랑한다> 등 베스트셀러 저자로 서울 중랑구 은혜제일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최원호 박사의 이중창’ 칼럼은 신앙과 심리학의 결합된 통찰력을 통해 사회, 심리, 그리고 신앙의 복잡한 문제의 해결을 추구합니다. 새로운 통찰력과 지혜로 독자 여러분들의 삶과 신앙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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