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 1]
이탈리아 오른쪽, 그리스 위에
주변 열강 사이 고군분투하며
작지만 2천 년 역사 이어온 곳
2001년 관광객 90만여 명에서
2024년 1천만 명까지 증가해
이제 알아야만 하는 나라 변모
체스 게임판에서 만난 알바니아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열 명은 더 되어 보이는 알바니아 할아버지들이 둥그렇게 모여 계십니다. 뭘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 목을 빼고 들여다 봅니다. 동양인 여자가 할아버지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게 신기하셨나 봐요. 넥타이를 메고 베레모까지 쓰신 신사 한 분이 제게 미소 띤 얼굴로 소곤소곤 말씀해 주십니다.
“Sha, Sha(샤, 샤, 체스야*).”
3년 넘게 월세가 나가지 않아 유리문 안이 폐허처럼 변해가는 가게 앞에서, 할아버지들은 박스를 깔고 앉아 서양 장기인 체스를 두십니다. 체스에 대해 알지 못하는 저는 그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들 얼굴과 체스판을 번갈아 보며 한참을 구경했습니다.
체스판 위에 놓인 흑말과 백말이 상대 왕을 잡기 위해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두 명의 기수 주위를 성벽처럼 둘러싼 할아버지들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훈수를 두느라 바쁘십니다. 꼭 우리네 바둑 두시는 노인분들 같아 친근감이 듭니다.
문득 체스판 위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백말과 흑말들이 제가 서 있는 이 땅, 알바니아를 잡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주변국들처럼 느껴집니다.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발칸반도를 차지하고 있는 구(舊) 유고슬라비아연방과 열강인 터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그리스는 발칸반도라는 장기판을 흔드는 무서운 기수였습니다.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수가 있는데, 바로 ‘알바니아’입니다.
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견디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를 통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던 알바니아. 한 칸 한 칸 전진했다, 후퇴했다, 멈춰서서 고립됐다, 다시 열방을 향해 전진하는 알바니아.
체스판의 졸병인 폰(pawn)처럼 언제 먹힐까 위태롭지만, 꿋꿋이 버티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모습에 마음 깊은 곳에서 응원이 나옵니다.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
유럽은 유럽이지만, 유럽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듯한 애매한 나라가 있습니다.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서유럽과 완전히 다른 이국적인 느낌이 들면서도 “미국 같기도 하고, 튀르키예 같기도 하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은 나라, 바로 발칸반도의 알바니아입니다.
먼저 ‘발칸반도’는 유럽의 남동부에 있는 반도를 뜻합니다. ‘발칸’이라는 말은 튀르키예어로 ‘산’이라는 의미인데, 오스만 제국 지배 이후 산맥 이름으로 사용되다 19세기 이후 확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발칸반도는 아드리아해, 이오니아해, 에게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보통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튀르키예의 유럽 부분과 유고슬라비아 일부였던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가 발칸반도에 포함됩니다.
발칸반도는 고대부터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세력이 뒤섞이며 민족, 언어, 종교, 문화, 정치 등이 다양성을 띠게 됩니다.
주변국 사이에서 살아남은 알바니아
우체국에 가서 “알바니아로 택배를 보내려고요”라고 하면, 돌아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인가요?”
아마 ‘알제리’와 비슷한 이름 때문인지, 쉽게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알바니아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설명할 기회가 있다면 꼭 이름을 파는 두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이탈리아’와 ‘그리스’인데요. 알바니아는 그리스 위에 있으면서 장화 형태로 생긴 이탈리아의 장화굽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알려드리면 많은 분들이 알바니아 위치를 쉽게 이해하십니다. 알바니아는 북쪽과 동쪽에 걸쳐 몬테네그로, 코소보, 북마케도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남동쪽으로는 그리스와 맞닿아 있습니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친 크기만 한 면적 2만 8,748㎢의 작은 나라, 인천광역시의 인구보다도 적은 280만 명이 사는 나라 알바니아가 발칸반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며 2천 년 넘는 역사를 유지하고 있으니, 대단하다고 여겨지지 않으시나요?
고린도후서 4장 8절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알바니아는 지난 세월 동안 주변 열강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우겨쌈을 당했을까요. 제가 알바니아 사람이라면, 이 사실에 자부심을 느낄 것 같습니다.
알아야만 하는 나라, 알바니아
‘알바니아’에 대해 소개해야 할 때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알 바 아니야, 알 바 없는 나라, 알바니아입니다.”
사람들의 기억에 쉽게 남기기 위해 하는 말이지만, 이름 풀이마저 약하고 힘없는 나라인 것 같아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 알바니아로 들어오는 관광객 수가 약 90만 명이었는데, 2024년 약 1천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알바니아는 이제 ‘알 바 아닌 나라’에서 ‘알아야만 하는 나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체스판 위 병사처럼, 이 작은 나라가 앞으로 어떤 한 수를 둘지 지켜볼 만하겠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 알바니아를 조금 더 알아가셨길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는 알바니아가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 온 구체적인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Sha(샤): 알바니아어로 ‘체스’를 가리킨다. 체스의 중심인물인 왕은 통치자 또는 군주를 상징하는데, 페르시아어로 왕을 뜻하는 ‘샤(shah)’에서 유래했다.
박혜정 선교사
GMP 개척선교회 개발연구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2009년부터 선교사로 헌신했다. 현재 남편, 세 자녀와 함께 알바니아에서 7년째 사역하고 있다. 알바니아인들에게 한국어 교습과 집시 여성 문해력 사역, 글쓰기 사역, 현지 교회 협력 사역을 하고 있다.
공저로 『목회트렌드 2025』, 『목회트렌드 2024』, 『목회트렌드 2023』, 『살리는 설교』, 『다음세대 셧다운』, 『오늘도 삶의 노래를 쓴다』, 『누구나 갈 수 있는 아무나 갈 수 없는 중국유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