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로 보는 신앙세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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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이스라엘 역사의 바로 그 시점(始點)에는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 수 세기를 통하여 줄곧 "아버지"(창 32:9) 또는 "조상"(출 3:15)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온, 이스라엘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그는 단순하게 이삭과 야곱의 혈통 계보 상의 아버지만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아브라함에 관한 기록들을 통해서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 했는가 하는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 준 대표적 "모델"이라는 의미의 아버지, 즉 문자 그대로의 이스라엘의 "아버지" 그 자체였다.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대표적 모델로 그리고 문자 그대로의 "이스라엘의 아버지"로서 인식될 수 있었던 요소는 이런 것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1) 첫째로 그는 믿기 어려운 "신의 약속"을 그 희망없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믿고 기다렸던 <믿음의 아버지>였다. 그는 땅도 없고 후손도 없는 유랑하는 "소수민"이요(신 26:5a) 아내의 묘지 하나도 장만치 못한 채로 이방 땅에 우거(寓居)하기만 하였었던 "나그네"(창 23:4)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과 "후손"은 비록 믿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지만 그러나 반드시 받게 되리라는 것을 믿고 감히 목숨과도 같았던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버리고 떠나서 75세(창 12:4)의 나이로 감히 약속의 땅을 향하여 출향(出鄕)하였던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그 약속의 땅이 아브라함 자신을 위하여 주어진 땅이 아니라(!) 장차 후손에게 주어질 땅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확인하고서도(창 12:7a) 그는 여전히 그렇게 억울하게 섭리하신 하나님(엘)을 위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집"인 "벧엘" 제단을 쌓았던 사람이었다(창 12:7b). 이러한 신앙행위를 관찰하신 하나님은 그의 이러한 신앙행위를 "의(義)"로 간주하셨던 것이다(창 15:6).

(2) 둘째로 그는 분명 "그에게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시는 신" 즉 "인격신(人格神)"이신 하나님 만을 예배하였던 <믿음의 아버지>였다. 그래서, 성서기자는 이 하나님을 결코 달리 부르지 않고(!) 오직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만 불렀던 것이다. 학자들은 족장들의 이러한 하나님 신앙을 가리켜서 "암묵적 유일신 신앙"(implicit monotheism)이라고 부른다.

물론, 그는 땅이 없었기 때문에 정착생활은 하지 못하고 단지 떠돌아 다니기만 하였던 유랑민이었다. 그러므로, 그 유랑 역사의 각 현장에서 하나님의 임재(현현)하심을 체험하고 바로 그 임재 장소에서 그에게 나타나신 그 하나님만을 만났던 것이고 또 그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곳에 제단을 쌓았던 것이다. 이렇게 역사(役事)하시는 하나님을 학술적으로는 "역사의 신" "사회적 신" 또는 "인격신"이라고 부른다.

즉 먼 후일 야곱이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였던 것처럼(창 28:17), 바로 이 역사의 현장이 하나님을 만나는 바로 그 "하늘의 문"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제도적 종교의 신(神)이 아닌(!), 즉 인생 나그네 길, 그 형극의 요소 요소에서 친히 성육(成肉)하여 인간과 만나시고 인간과 동행하시며 그 인간역사의 희노애락에 응답하신 "역사(歷史)의 신"을 믿고 또 가르친 <믿음의 아버지>였다.

(3) 셋째로 그는 "스스로 자신을 감추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섬겼던 <믿음의 아버지>였다. 창세기 18장은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 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을 감추신 하나님"을 만나 그를 환대하였던 한 신비한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세 사람들"(쉴로샤.아나쉼) 중의 한 분이셨다.

물론, 창세기 18:1a의 신학화(神學化) 때문에, 성서 독자들은 이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야훼 하나님의 현현"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이 부분을 읽게 되지만, 그러나, 주목할만한 점은 어디까지나 이 세 사람은 그늘과 쉴 곳을 찾는 피곤한 "나그네"(strangers=travellers)이고 그 가운데 한 분은 "스스로 자신을 인간 속에 감추시고 성육하신(成肉: incarnated) 하나님"(Deus absconditus)자신 이시며(창 18:1a,10,13,14,17 etc.) 나머지 두 사람은 하나님의 사자(창 19:1)였다.

문제는 그늘과 쉴 곳을 찾아 헤매는 피곤에 젖은 사막 나그네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는 것은 놀라운 신앙(信仰)의 형안(炯眼)을 갖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적어도 구약성서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이러한 교통을 한자(창 18:16-33)는 아브라함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사실, 하나님 신앙의 가장 차원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감추시는(자신의 얼굴을 가리시는)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다(시 10:1, 13:1 etc.). 이스라엘 최대의 신학자로 알려진 예언자 이사야(이사야 40-55장을 쓴 자)는 바벨론 포로기를 끝내는 이스라엘 역사 아주 오랜 후대에 가서야 비로소, 그리고 70년 포로기라는 형언하기 어려운 고난의 역사를 먹고 산 이후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구원자 하나님이 실상은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다!"(사 45:15)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번영과 축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빛 보다는 어둠 속에서 그리고 평안 보다는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사 45:7) 매우 어려운 일에 속한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위대한 신앙의 선구자요 개척자였다. 신약 히브리서 기자도, 아주 후일, 신학적으로 반성하여 말하기를,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부지중(不知中)에(!!)' 천사들(하나님)을 대접한 이들[아브라함, 롯]이 있었느니라"(히 13:1-2)라고 증언하기도 하였다.

(4) 끝으로, 그는 성서의 하나님(야훼)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장 모범적으로 밝히고 증언한 이스라엘 신앙의 조상으로서 살았던 <믿음의 아버지>였다. 아브라함은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다신론적 종교환경 속에서 참 하나님의 실재를 찾으려고 목숨을 건 신앙적 투쟁을 한 자였다. 이 투쟁은 모리아 산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해답은 자식을 제물로 바치려고 칼을 든 아브라함의 손을 제지하시며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참 하나님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를 요구하는 반 윤리적인 모압의 <그모스>(Chemos) 신이나 암몬의 <밀곰>(Milcom) 신과는 다른 신(神)으로서 매우 윤리적인 신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야훼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참 하나님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종교"라는 굴레 안에 감금되어 그 종교규범으로서 그 본질이 규정되는 그런 분은 결코 아니신 것이다. 그는 진리 그 자체이실 뿐이시다. 아브라함은 이미 이 진리를 터득한 <신앙의 아버지>였다. 지극히 높으신 신(엘 엘룐)의 제사장인 이방인(異邦人) 사제(司祭; 가나안 사제)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아 들이고 십일조를 드린 아브라함의 신앙적 자세는 바로 이러한 문맥 안에서만 바르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김이곤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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