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인물로 보는 신앙세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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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神政) 이념 수립자, 모세

모세는 아브라함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이스라엘의 대표적 조상이요 지도자이다. 아브라함이 "민족의 아버지"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모세는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세"는 애굽 땅에서 노예 살이를 하고 있던 민족단위의 이스라엘 무리를 그 애굽 땅에서부터 이끌어 낸 "민족해방자"였고 동시에 이 유랑의 무리가 감히 선택 받은 신민(神民)이 되는데 필요한 기반(基盤)인 "토라"(법)를 제공한 "토라" 제정자(制定者)였으며 그리고 이 민족의 조상들에게서는 단지 "조상의 하나님"(엘)으로만 알려졌던 그 하나님의 실체가 사실은 "야훼"라는 것을 알려 준 야훼주의 신앙의 창시자이기도 하였다.

모세는, 비록 애굽 왕실에서 자라나기는 하였어도 기원전 13세기를 전후로 하여 고대 중동 세계를 유랑하며 국외자로서 살았던 천민(賤民)인 "히브리인" 무리들과 자신을 일치시킨 자였다(출 2:6; 3:18; 5:3 etc.). 이것은 하나의 놀라움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이신 야훼>의 부르심을 받고 이 히브리인 무리들을 그 노예된 자리로부터 이끌어내어 그들로 <자유를 누리는 선택된 백성 [選民]>이 되게 하는데 지도적 역할을 한 자였다. 그러나, 그가 이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경험한 특수한 하나님 체험과 그리고 그가 갖고 있었던 특별한 엘리트 정신이었다고 할 수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산(山)인 호렙산에서 "타지 않는 불꽃 떨기" 속에 나타나신 [현현하신 (theophany)] 하나님을 만나는 매우 특수한 종교적 경험(출 3장)을 가졌다. 이 경험이 모세에게는 대단한 "놀라움"이었고 "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다. 즉 모세는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그 가던 길을 "돌이켰던"(출 3:3)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모세로 하여금 그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게 한 것일까? 그것을 성서는 <타지 않는 불꽃 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타지 않는 불꽃 떨기>! 이 놀라운 신비는 모세로 하여금 민족해방의 사명을 안고 감히 애굽으로 가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인센티브>(incentive)를 준 사건이었다. 사막 열기 아래의 떨기, 거기에 불이 붙었는데도 떨기는 타지 않는다! 이것은 "놀라움"이며 모세에게 있어서는 신의 계시(啓示) 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을 계시(啓示)하는 사건인가? 불은 붙었으나 그러나 타서 소멸되지는 않는 떨기! 그리고 저 떨기 "한 가운데" 현존하시는 야훼 하나님! 이야말로 참으로 놀라운 신비한 계시적 사건이었다. 불의 위협을 받고 있는 연약한 마른 떨기 속에 현존해 계시는 그 하나님이야말로 소멸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운명의 "떨기"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생명파괴력을 지닌 "불"로부터 "떨기"를 지키시는 야훼 하나님! 이 하나님이야말로 애굽의 태양신인 "바로"의 학정(虐政) 아래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에게는 실현 가능한 "구원"에 관한 유일한 희망이었다고 하겠다. 야훼 하나님은 약한 떨기를 강한 불로서 지키듯이 약자를 또한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사랑의 신(神)이셨던 것이다(!!). 즉 구원(해방)의 신이셨던 것이다.

뿐만은 아니었다. 불꽃의 위협을 받고 있는 떨기의 "한가운데" 현존하고 계시는 신(神)은 다름 아닌 떨기의 고난(苦難)에 동참하시는 신(神)이셨던 것이다. 고난에 동참하므로 고난받는 자를 건지시고 지키시며 보호하시는 신(神)이 야훼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이 하나님을 모세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는 신(神)"으로서 체험하였던 것이다(출 33:19). 그러므로, 이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출 34:6)이셨던 것이다. 이 하나님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훼"라는 이름의 신(神)이라고 소개하였던 것이다.

"야훼"라는 이름의 의미는 "스스로 존재한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을] 있게 한다"(He causes to be= He creates)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출 3:14). 이것이 히브리어 "야-"의 사역적(使役的) 의미 이다. 즉 구원의 하나님은 구원을 "있게 하는"(창조하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이러한 창조에는 <壽言>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타지 않는 불꽃 떨기"는 이러한 구원 창조를 위하여 구로하면서 <壽言>하는 자리이다. 이와 같은 진통의 생명잉태와 진통의 생명출산을 맡은 그 자리는 "자궁"이다. 이 자궁 만이 생명을 잉태하고 창조하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이 창조는 <壽言暹 얏醴>을 통하여서만 생명을 창조하는 그런 창조이다. 모세는 이러한 <창조>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호렙산(=시내산)에서 경험한 모세의 특이한 종교적 경험이었다.

모세는 이 은총에 힘입고서야 비로소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땅에서부터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애굽왕 "바로"가 이스라엘을 떠나 보낸 것은 그가 원해서 한 것도 아니고 또 모세의 힘이 바로의 힘을 능가하여서 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야훼의 "은총"으로서만 이루어졌던 것이다. 모세는 단지 이 은총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는 "매개자" 역할 만을 하였을 뿐이었다.

홍해 사건이 그것을 말해 주며 열가지 재앙사건도 또한 이를 보충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홍해 사건에서 이스라엘에게 극적인 구원 승리를 안겨 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자(使者)의 지시를 따른 "구름 기둥," "동풍," "바닷물," "불기둥," "모세가 바다를 향해 손을 펴는 신호행위" 뿐이었고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전적으로 배제되어 있었다(!). 열가지의 재앙 사건에서도 전적으로 야훼 하나님의 이적(異蹟)과 기사(奇事)만(!)이 이스라엘 구원을 위한 역할을 담당하였을 뿐이었다. 이스라엘은 단지 가만히 서서 야훼의 구원을 볼 뿐이었다(출 14:13, 14).

여기서도 우리는 모세의 하나님 야훼가 "전쟁"을 전유(專有)하셔서 인간을 전쟁으로부터 분리하고 그렇게 함으로서 인간을 전쟁으로부터 지키고 보호하시며 그리하여 항상 약자를 위하여 일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으로 계시(啓示)되고 있는 것을 본다. 모세는, 실로, 전쟁의 신(神) 만군의 야훼가 곧 사랑의 신(神)이심을 증언한 <긍휼(矜恤)의 신 증언자>였던 것이다.

모세의 이러한 역할의 결정적인 사건은, 논의의 여지 없이,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선민(選民)이 되는데 필요한 선민 공동체의 기반으로서의 하나님의 법 즉 "토라" (torah)를 제정하고 제공한 그 일이었다.

변화산에서 변모하시는 예수님 좌우로 율법종교의 효시인 모세와 예언종교의 효시인 엘리야가 함께 나타났다는 증언(마태 17:3)이 또한 그것을 잘 말해 주고 있듯이, "모세"는 이 "토라"를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신정(神政) 이념으로 제공한 자였다. 일종, 인도주의 법전을 태양신으로부터 받아 고대 바벨론 제국(帝國)의 백성에게 전수한 함무라비 왕이 가졌던 그 기능과 같은 그런 기능을 담당한 자가 "모세"였다.

모세는, 그러므로, 이스라엘 선민 공동체의 신정(神政) 이념의 아버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명기의 신정(神政)이념이 오경, 신명기적 역사서(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 그리고 역대기적 역사서(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를 지배하고 있고 그리고 예언서 전부와 시가서, 지혜서에 편만해 있는 것은 모두 이 "모세"로부터 비롯된 모세의 영향력의 결과라고 하겠다.

김이곤 교수(한신대 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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