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예배 갱신의 일환으로 열린예배가 많이 드려지고 있다. 물론 지나치게 보수적인 교회들에서는 거부되고 있기도 하다. 전통성을 고집하는 교회에서는 대체로 열린예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그들은 열린예배에 대해 상당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성도는 열린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이단이라고까지 한다. 그리고 열린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에서도 열린예배의 가치와 추구점을 정확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나는 열린예배가 적어도 두가지 추구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예배의 기획에 있어서 불신자나 초신자가 들어왔을 때 쉽게 적응되도록 기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윌로우크릭교회(빌하이벨스)나 쌔들백교회(릭웨렌)등에서 드리는 구조자 예배도 그런 점들이 많이 적용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드리는 전통적인 예배는 믿지 않는 자들이 볼 때 너무 부담스러운 예배이다. 그러니 첫 예배에서부터 경직된 예배를 드리게 되고 자연스레 예배를 멀리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예배 장소로 활용하는 예배당 구조와 장식부터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예배당에 들어올 때 받는 주보에 기록된 헌금 명단도 부정적으로 느낀다. 예배 방식에 있어서도 낯설게 느낀다. 중세 음악에서나 들을 수 있는 곡의 찬송가, 목회자의 거룩한 까운, 성경 봉독을 위한 성경 찾기,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의 기도, 따라할 수도 없는 성가대의 찬양, 원고를 읽듯이 지속되는 설교, 갑자기 코 앞에 들이미는 헌금대, 특정인을 거명하며 축복해 주는 헌금기도, 모두가 낯설게 느껴진다. 진행 속도도 디지탈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그들에게는 지루할 뿐이다. 젊은층이나 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교회 재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예배당 인테리어를 현대 감각에 맞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앰프 시스템이나 악기 시스템이나 멀티미디어 시스템도 적어도 현대 가정에서 사용하는 정도의 수준으로는 높여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보고 듣고 들을 때 거슬릴 정도는 되지 않아야 한다. 물론 개척교회 수준에 있는 교회는 그런 것들을 다 갖추기는 어렵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예배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예배 기획에서도 성경에 어긋나지 한도 내에서 과감히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순서와 진행을 단순화해야 하고 일관성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어색해 할만한 요소들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미국의 크렌소우 크리스챤센타(프리스)는 예배당 구조가 마치 원형 극장이나 현대의 씨름 경기장 처럼 되어 있다. 단상은 예배당 정 한 가운데 있다. 강단에는 강대상도 없다. 보면대 하나 놓고 찬양도 하고 설교도 한다. 예배중 찬양과 성경과 설교 내용은 빔 프로젝터에 의한 화면에 크게 나타난다. 쌔들백교회(릭웨렌)는 건물은 천막을 친 것처럼 되어 있으나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분위기다. 강단이 연극장처럼 되어 있다.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뒷 회중 의자는 뒤에서부터 자동으로 나오기도 하고 필요에 의해 뒤로 접히기도 한다. 그 외의 교회도 성장하는 교회는 대부분 강단에 아무 것도 없다. 예배 인도자들을 위해 마련된 특별한 좌석도 없고, 십자가 네온도 없다. 단지 강단과 그 위에 TV스튜디오를 연상케 할만한 조명 시설과 비디오 시설만 있을 뿐이다. 강대상은 단순하고 작거나 없다. 교인들이 앉는 의자는 개인 의자로 되어 있고 모두 강대상 쪽을 향하게 되어 있다. 예배에 사용되는 찬양도 모두 현대 음률로 만든 경배 찬양이다. 악기도 현대인에게 친숙한 신디싸이저와 기타와 드럼 등을 사용한다. 찬양대석은 따로 없다. 찬양단이나 설교자들은 까운을 입지 않고 평상복을 입는다. 헌금 시간은 따로 없다.
나는 예배당을 그들 교회들처럼 꾸미자는 것이거나 예배 형태를 그대로 고치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 교회 목회자들이 무엇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열린예배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역동성 있는 예배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열린예배를 드리려는 주된 목적이 여기에 있다.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강화되고 성령의 임재가 추구되어야 한다. 우리가 드리는 전통적인 예배는 지니친 표현이기는 하지만 아무 감동도 변화도 없다. 죄를 회개함도 거듭남을 경험함도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느낌도 없다. 그러니 예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열린예배 이 점을 더 중요시 해야 한다. 설교자나 기도자나 찬양인도자나 성령에 감동되고자 해야 한다.
미국의 하비스트락교회(최헌), 빈야드교회(죤윔버 *한국의 빈야드 교회와 다름. 교회 이름이 빈야드임. 존윔버 목사님은 훌러신학교 피터와그너 교수 친구임) 같은 교회의 예배를 보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다. 물론 브라운즈빌교회(죤길패트릭)나 올랜도 크리스챤센타(베니힌)나 윌로우크릭교회(빌하이벨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찬양단이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느끼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빈야드교회의 찬양리더인 신디의 말을 들어보면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찬양도 일반 찬송가가 아닌 하나님을 직접 높이는 경배 찬양(Worship Song)을 주로 한다. 그들은 철저히 준비한 찬양을 인도하지만 성령에 의해 불려지기를 노력한다. 그래서 한 곡만 부를 때도 있고 순서가 바뀔 때도 있고 심지어는 방언찬양이나 예언찬양(동시찬양)으로 인도될 때도 있다. 설교자는 윤리적 설교를 하기 보다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드러 내려고 노력한다. 설교자 스스로 청중을 감동시키려 하기 보다는 성령께서 일하시기를 추구하는 노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기에 예배 시간에 많은 회개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
이들 교회의 모습을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 예배의식을 적용하는 데는 우리 문화와 정서를 볼 때 아직 이르다. 단지 그들이 예배에 있어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예배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본받자는 것이다. 만일 열린예배를 드리기 위해 외부적으로 전통적 방법을 깨뜨렸다고 해도 이러한 예배 가치를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전통예배보다 우스운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예배 갱신에 있어서 구경하거나 보여주는 예배에서 탈피해야 한다. 함께 드리고 느끼는 생동감있는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려고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과 성령으로 드려지는 예배에 방해된다고 생각되는 의식과 전통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선포해야 한다. 그러면 그 결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모든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예배의 감동이 더욱 많아지고 그 때 받은 감격이 삶을 지배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예배 인도자 뿐 아니라 교인들도 그런 인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현재(顯在)를 사모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예배에 승리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차용철 목사(열린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