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일면 이러한 선교단체들이 몰고 온 자유로운 예배와 성경공부 방식들을 교리적으로 견제하면서도 선교단체들의 방법론들을 조심스럽게 유입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유입 물 중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종교적 구원관으로부터 복음적 구원관으로 그 구원관을 변화시켰다는 데 있다.
솔직히 말해서, 7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교회는 구원의 조건을 "오직 믿음'이라고 가르치기보다는 믿음과 행위 그리고 심지어는 교회에의 충성까지를 포함시켰었다. 그 결과 많은 한국교인들은 오랜 신앙생활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확신을 말하기를 두려워했으며, 구원의 확신을 말하지 않은 것이 마치 겸양인양, 또는 그 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믿음영역 밖의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고백을 할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복음을 오해하고 있었다. 70년대 이전의 한국교인들은 구원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과 그의 은총에 근거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는 한국교회가 행위와 윤리중심의 불교와 유교의 전통적인 종교행습(religious behaviors)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연유에서인지 한국교회에서는 구원의 서정(order of salvation)중 칭의(righteousness) 보다는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이나 영화(glorification)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그 신실하신 약속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윤리적, 율법적 행위에 보다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구원의 확신이 분명치 않은 성도들이 성화의 과정과 영화의 과정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면, 성도들은 확신 있는 믿음생활 보다는 윤리적 기독교나 율법적 종교생활에 빠지게 됨으로써 오히려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에 빠지는 경향을 띠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성도들은 은혜로 이끌기보다는 율법과 윤리 그리고 위선으로 몰아넣고 만다. 그 조짐은 독선적 교리와 권위주의적 예배에로의 흐름에서 나타난다.
다행히 60년대에 접어들어 복음주의 학원 선교단체들이 선교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젊은이들에게 단순한 복음을 제시하였다. 선교단체들에 의한 단순한 복음계시는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게 하는 첩경이 되었다. 특히 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한국교회에서도 "구원의 확신"이라는 용어가 일반화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거의 모든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은 자유롭게 성경을 접하고 연구하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말씀의 중요성과 제자의 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 과정을 우리는 제자 훈련이라고 말한다. 제자훈련이라는 용어도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교회에서는 친숙한 용어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제자훈련을 모르는 성도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훈 목사(중앙대학교안성캠퍼스 교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