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나라는 자신을 혹사시키고, 야심 많고, 업무 지향적인 그런 사람을 만들기 전에 생명의식이 충일하고 사랑과 조화의 정신을 가진 인격자를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한 공동체를 가꾸는 과정에서 어떤 때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어떤 때는 실력도 필요합니다. 어떤 때는 습관과 방법도 필요합니다. 재능도 필요합니다. 또 능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도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과 조화를 이루어 보려는 사명자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이제는 모든 국민이 자신의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나눔의식"을 실천해야 합니다. 참된 행복은 사람에게 주는 것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을 말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소유의 복"을 연상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소유의 포로가 된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나눌 때 찾아옵니다.
물론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또한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도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그마한 기쁨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눌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기하고도 가슴 벅찬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체험적으로 아는 일일 것입니다. "소유의 소외"는 있을지라도 "소유의 복"은 없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오직 바치는 것에서 가능합니다.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는 언제나 인간의 양심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그리고 도덕성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결국 그것은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자신"마저 잃어버리게 합니다.
오늘날 현대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가 무엇입니까? "가난"의 문제가 아니라 "탐심"의 문제입니다. 다같이 가난하다면 오히려 문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탐심을 가진 사람들이 나누는 것을 실천하지 않음으로 생기는 빈부격차의 문제가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모두 잘 사는데 혼자 다리 밑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얼마나 비참한 심정이겠습니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모든 사람이 다같이 다리 밑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살게 된다면 비참한 심정까지는 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야릇한 삶의 재미와 낭만까지 곁들여질 수 있습니다.
배가 고플 때는 "먹는 것 때문"에 고민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사람 때문"에 고민합니다. 모두 다 보리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만 쌀밥을 먹는 다른 사람을 보면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이 본성이 그렇습니다. 절대적 빈곤에서 오는 고민은 육신의 고통이지만 상대적 빈곤에서 오는 고민은 마음의 고통입니다. 절대적 빈곤에서는 육체가 굶주리고 헐벗지만, 상대적 빈곤에서는 마음이 굶주리고 헐벗습니다.
왜 이런 상대적 빈곤의 문제가 생겼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와 자기 주변만 생각하는 어리석은 삶의 철학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삶의 철학을 수정하고 "나눔의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상대적 빈곤의 문제는 점차 축소될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고뇌에 진다는 것은 그리 수치스런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쾌락이 지는 것이 더욱 수치스런 일입니다. 좋은 것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 취하려는 것은 쾌락에 지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것을 자기만 취하려고 잘못된 동료 의식을 가지는 것은 인생의 보람을 철저히 앗아갑니다.
그러므로 "돈과 권력을 어떻게 쓰느냐"고 하는 것은 보통 질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가장 깊은 철학적 질문 중의 하나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성실하고도 의미 있는 답변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돈을 벌어서도 안되고 권력을 추구해서도 안됩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준비하지 않은 채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만을 외치는 것은 개인의 균형 잡힌 삶을 좀먹고 사회의 균형을 깨뜨리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이고,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인 사회를 만들게 되어, 그 사회는 뼈아픈 진통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잘 사는 사람이 되었음을 자랑하기 전에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사람임을 자랑해야 합니다. 같이 잘 살지 않으면 진정 잘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한규 목사(분당사랑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