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국교계지도자 중에 대표적인 한 사람인 K 목사에 대한 고소장을 교단측이 2년 동안 계속 반려해오다가 최근에야 접수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교계가 긴장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는데 몇 일 후 다시 기각을 시켰다. 고소의 주요 내용인즉 일반 사회 법정에서 간음에 따른 위증죄 등으로 7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것은 교단법에 의해서도 징계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K 목사는 여전히 교계에서 거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문제점 중에 하나는 목회자의 윤리적 잘못에 대해 교회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지나치게 감싸고도는 것이다. 대부분 성도들은 목회자를 비판하다가 하나님의 벌을 받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조용히 따라간다. 간혹 용감히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을 해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사람으로 주목을 받아 교회를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기독교의 핵심 중에 하나는 죄를 용서해주는 은혜의 복음이다. 그러나 은혜와 용서의 복음이 진정한 효력을 발휘하려면 죄에 대한 통회자복이 있어야 한다(막 1:14; 행 20:21). 이를 잘 아는 목회자들은 사실 강단에서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원 없이 전하면서도 자신들의 문제는 하나님이 직접 다루시기 때문에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은 월권행위로서 하나님의 큰 책망을 받을 일이라고 윽박지르곤 한다.
그렇다. 성도들은 목회자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목회자를 해하려고 해서도 안된다. 이는 목회자가 범죄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여기까지만 말한다. 목회자의 잘못을 눈물로 지적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것은 성경이 요구하는 성도의 의무이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서로 사랑가운데 진리를 말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엡 4:15; 영어성경 NIV 참조). 그것은 목회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도 아니고 그를 해치는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를 살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왕과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는데 요즘말로 하면 평신도에 해당하는 목자요 농부인 아모스를 사용하셨다(암 7:10-17).
얼만 전에 어떤 성도가 "이제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보면 저 목사님은 깨끗할까 하는 질문이 지나가서 너무 힘듭니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 자신 목사로서 할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목회자의 영적 권위가 다시 살아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형식적 권위를 훌훌 벗어 던지고 통회자복하고 은혜로 윤리적 삶을 회복해나가는 길 밖에는 없다.
박득훈 목사(기윤실 건강교회운동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