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온 세계의 축제이듯이, 선거는 우리 국민의 축제라는 요지의 선거캠페인을 동원하며, 투표를 독려해보았지만, 결과는 선거사상 최저의 투표율이었습니다. 풀뿌리민주주의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이번 선거로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대거 지자체 단체장에 선출되었다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땅의 젊은이로, 정치적 무관심계층이라 손가락질하는 바로 그 세대의 일원으로 간절히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원래 낙천적이고 성실하며 정직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35년간의 무력식민지배를 받고, 좌우익간의 극심한 이념대립, 그리고 20세기에 가장 비참했던 전쟁으로 기록되는 한국전쟁, 삼십 년이 넘는 군사독재정치를 통과해오면서 우리의 민족에겐 뿌리깊은 좌절과 패배의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군사독재가 물러난 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문민정부 역시 정치혼란, 친인척비리, 경제불안으로 결국은 국가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리고 97년대선. 21세기를 앞두고 새로운 대통령은 비전을 제시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며, 이전의 정권이 보여준 구태를 벗어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이전의 정권보다 개혁적이었기에,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정권교체였기에 국민적 감회는 더욱 컸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어떻습니까? 이번 선거가 정권에 대한 실망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처음으로 노벨상을 안겨다주고, 남북화해시대를 열었으며, 위기에 봉착한 국가경제를 건져냈지만, 가족들의 비리에는 어쩔 수 없었나봅니다.
왜 우리는 월드컵 1승에 목말라했습니까? 단 한번도 월드컵무대에서 이루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세기가 다 가도록, 한국대표팀의 초라한 성적표는 그대로 한이 되었습니다. 왜 한국대표팀의 선전에 열광합니까? 단순히 이겼기 때문입니까? 저는, 우리가 응원하고 열광하는 우리 대표팀에 우리민족의 미래와 가능성을 투영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십시오. 거리거리마다 몰려든 붉은 물결들. 그들의 입에서 어떤 구호가 튀어나오는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그들의 입에서 대한민국이란 우리 나라의 이름이 이토록 뜨겁게 느껴진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낙심가운데 있던 한국축구가 화려하게 비상하고 있고, 그 비상의 중심에 리더십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며, 열광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을 분석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를 귀화시켜 한국인으로 만들자는 말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도력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디 월드컵에 열광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읽어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우리를 무관심으로 내몰았습니다. 아무리 응원하여도, 결국 정치로 나아가서는 자신의 잇속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어버리는 속물 같은 정치인들을 보며, 변함없는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우리들을 나무란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 잔인한 요구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신다면, 부디 겸손하시길 바랍니다. 젊은이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한 이번 선거는 어쩌면 진정한 민의와 차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아주 작은 것부터 국민들을 위해 정책을 입안하여 추진하시기 바랍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성공하지 않으면 정치에의 어떤 소망도 없을 것입니다. 가장 국민들과 가까운 곳에서 호흡하며 부대끼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이 민족의 앞날이 달려있습니다.
선거일이 그냥 난데없이 덤으로 생긴 공휴일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사회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신명나는 축제가 될 수 있을지는 바로 여러분들에게서 달려 있습니다. 부디 그리스도를 아는 자가 어떻게 백성을 섬기는지 분명히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대훈, ESF간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