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그리고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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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9.11이전과 그 이후로 나뉘어진다'

누군가에 의해 과장되게 표현되기는 했지만, 911테러는 분명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2000년전 유대땅에서 태어난 한 청년이 인류에게 큰 충격과 흔적을 남기고 역사를 BC와 AD로 나뉘었던 것처럼, 새 천년을 맞아 희망에 부풀어 있던 인류에게 테러가 준 충격은 자못 큰 것이었다. 비행기를 납치해 건물을 들이받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인간성이 말살된-테러 행위에 대해 전 세계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인가? 이것이 진정 사실인가?' 많은 이들은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폭심지·爆心地) 주변은 가족 여행객 등 하루 수만명의 방문객이 오고가고 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은 이곳에서 피해자들은 추모하며 새로운 삶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기도 하며 인류가 낳은 비참한 역사의 한 장면을 반면의 교사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 좁아터진 지구상에서 분쟁은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런 분쟁의 종국이 어떠한 비극적 결말을 낳는지 보여주는 현장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 말이다.

그라운드 제로 주변에는 녹슨 철 십자가 하나가 턱하니 자리 잡고 있다. WTC 건물 잔해 속에서 소방대원들에게 우연히 발견돼 WTC 터 동쪽 끝자락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것이다. 911테러의 잔해 속에 남아있는 십자가. 저주와 미움이 낳은 처참한 비극의 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십자가는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저주와 미움, 눈물과 공포로 얼룩진 그 자리에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무고한 사람들의 피가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을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다'는 오기의 과시가 아니라 화해와 용서였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일생을 통해 보여주기를 원했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다.

911테러는 미움과 저주가 낳은, 결코 일어났지 않았어야 할 슬픈 역사다.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그릇된 신념과 용기가 낳은 비극의 역사. 그것은 다만 몇몇 사람들의 광기(狂氣)가 나은 비극적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손에 칼을 쥐어주고 서로를 향한 증오와 원한만을 심어주었던 인류가 초래할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의 단면이었다.

왜 테러리스트들은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며, 또한 수많은 생명을 빼앗으며 비행기로 빌딩을 들이받을 수 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진정 그들이 바라는 세계는 그러한 폭력적 방법 외 다른 것으로는 성취될 수 없었던 것인가? 그리고 무고히 죽은 많은 영혼들의 피는 어떻게 할 것인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H.D.Throueau)는 <숲속의 생활>이라는 저서에서 '단 한 번의 비가 와도 풀들은 푸르름이 몇배나 더해간다. 그와 마찬가지로 보다 좋은 사상을 받으면 우리의 앞날의 희망은 빛나며, 만일 우리가 항상 현재에 살면서 적은 양의 이슬을 받아도 그 영향을 남김없이 나타내는 풀잎같이, 우리가 당면하는 모든 일에 대처한다면 그리고 지나간 기회를 놓쳐버린 잘못을 보상받기 위해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는 축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상은 지금 율법적이고 그릇된 사상-눈에는 눈 이에는 이, 지적 도덕적 우월함과 폭력적인 힘으로만 다른 사람을 제압할 수 있다-으로 물든 인간들로 인해 멸망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911테러와 같이 역사가 남긴 참혹한 결과를 보고서도 여전히 폭력과 갈등 속에서 동일한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삶으로 보여준 한량없는 용서, 희생과 섬김의 삶만이 모든 이를 부요케 하고 살릴 수 있는 생명의 길임에도 말이다.

찰스 콜슨은 <그리스도인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약시대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은 절망에 잠겨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겔33:10) 똑같은 질문이 오늘날까지 계속 내려오고 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세상은 날마다 희망과 사랑을 노래하지만, 진정 희망과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는 지금 포로로 잡힌 유대인들보다 더욱 어둡고 절망적인 한 때를 걸어가고 있다. 이 절망의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탄식을 뱉게 만든다.

하지만, 나무는 잘려도 그 그루터기는 남듯이, 밤이 깊을 수록 새벽이 가까워진 것처럼, 911테러와 그로 인해 남은 처참한 세계무역센터 등의 모습은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하나의 징표에 다름아니다.

21세기, 새로운 천년의 시작은 911테러라는 비극의 역사로 시작되었다. 부(副)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세계무역센터과 힘(力)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펜타곤은 이슬람의 테러로 인해 참혹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이 땅의 모든 것을 풀의 꽃과 같다 했던 성경 말씀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예수는 결코 망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영원까지 남을 집의 기초를 놓으셨다. 그것은 희생과 사랑, 섬김과 나눔, 화해와 용서, 겸손과 온유로 일구어진 영원한 반석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갈등과 반목으로, 미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저주와 미움이 낳은 911테러의 역사 한 켠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굳건히 세워져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노승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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