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운데 이루어지는 존재의 깨달음과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삶이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 선교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점차 높아져 가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이주노동자선교에 따른 교회의 역할과 과제는 무엇입니까 ?' 라는 질문에는 각양 각색의 대답이 주어진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10여년 동안 만나 온 '나 자신은 외국인 이주노동자 선교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특히 21세기는 다문화 사회라 하였다. 다문화와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에서의 외국인 이주노동자 선교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남의 이야기들을 해 보기로 한다.
처음 만남 이야기 : 어디가 선교현장인가 ?
선교의 현장은 저 멀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곁에 있다. 외국인노동자선교의 출발은 외국인노동자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눈을 들어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를 향해 부르는 손짓들에 주의를 기울여 보면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도다'는 수도사들의 찬미가처럼 선교의 현장은 열린 상태로 지금 우리를 부르고 있다.
외국인노동자를 처음 만난 것은 92년 봄 어느 날이었다. 안산의 원곡본동 동사무소 옆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하던 한 외국인 노동자가 도움을 청하며 부르고 있었다. " Hellow, Please Help me ! "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도움을 청하는 외국인노동자에게 다가갔다. "Where am I ?" 갑자기 영어로 질문을 하기에 무척 당황하였지만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전화 수화기를 불쑥 내게로 내미는 것을 보면 아마도 전화 통화를 해 보라는 뜻인 것 같았다. 수화기를 들고 한국말로 "여보세요" 하자 전화를 받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었다. 통화중인 한국인이 설명하기를 지금 이 외국인 노동자와 자신이 만나려고 하는데 외국인노동자가 지금, '자신이 있는 곳과 자신이 찾아가려는 곳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몰라 도움을 청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영어를 못하지만 손짓 발짓으로 그 외국인노동자에게 '지금 자신이 있는 곳과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설명해 주었다.
이것이 외국인노동자와의 첫 만남이었다. 다른 외국인노동자를 길거리에서 이미 만났으나 그 당시에는 지나가는 외국인 중에 한사람으로 스쳤을 뿐이다. 그러나 이 외국인노동자와의 첫 만남 뒤에도 "Please Help me, Where am I ?" 이라는 말이 마음속에 강하게 남게 되었다. 일반의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 메시지를 남긴 듯한 강한 느낌의 말로 계속해서 자리잡게 되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와의 첫 만남 뒤 그가 남긴 말이 목회와 선교의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외국인노동자선교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첫 만남 후 지역의 여러 사회단체와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을 찾아가 외국인노동자문제를 이야기하며 이들과 함께 해야 함을 권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국인노동자의 문제에 대하여 공감'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외국인 이주노동자문제를 해결해야할 사람들이 '나는 아니다'라며 부드러운 외면을 하였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나 자신도 '나는 할 일이 따로 있다.'라고 애써 외국인 이주노동자문제에 나서기를 회피하고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그 당시에 나는 안산에서 노동자와 빈민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외국인노동자에 대하여는 사실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주저하는 통에 '그럼 나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나?' 하는 또다른 마음이 발동하여 외국인 이주노동자선교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외국인 이주노동자선교를 목회의 중심에 두고 지금까지 일해오고 있다.
그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남긴 한마디의 말이 지금의 목회와 선교현장에 머물도록 한 것이다. 지금 눈을 돌려 주변을 보면 우리를 향한 몸짓과 소리가 있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은 무관심으로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싶고 듣고 싶은 것과 관심 하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우리는 우리 주변에 눈을 떠야 한다.
두 번째 만남 이야기 : 선교의 주체는 누구인가 ?
예수는 지금도 우리 삶의 현장에서 작은자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계신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작은자로 찾아오시는 예수에 대하여 제한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80년대 암울했던 시기를 거치면서 가난한 자들과 연대하는 목회를 생각하면서도 작은 자는 언제나 민중이면서도 한국인의 모습으로만 그려졌었다. 내게 이미지화 된 작은자의 모습에도 국경이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제한된 작은 자에 대한 이미지'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주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선교와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두 번째 만남의 이야기를 통해서 선교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외국인노동자를 이 땅에 찾아오신 예수로 깊이 인식하면서 외국인 이주노동자선교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95년 3월 어느 날 아침, 봄이라고는 하나 아침 공기는 제법 찬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오전 출근을 위해 오전 8시경 사무실 앞에 이르자 한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문 앞에 신문지를 덮은 체로 자고 있었다. 이 외국인노동자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온 케네디라는 사람으로 흑인이었으나 백반병으로 피부며 머리카락이 모두 흰색인 사람이었다. 얼마 전에 사무실에 도움을 청하러 왔다가 이태원에 친구를 만나러 간 뒤로 며칠 동안 소식이 끈긴 사람이었다. 그가 다시 도움을 청하러 왔다가 갈곳이 없자 사무실 문 앞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갈곳이 마땅치 않자 다시 외국인노동자센타를 찾아온 것이었다.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그 외국인 노동자를 흔들어 깨웠다. "여기 추워요, 안으로 들어가 자요." 했다. 이때 부스스 일어나는 외국인노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인사를 하며 눈웃음을 보였다. 그리고는 사무실 문을 열쇠로 열고 있는 그 순간, 이 외국인노동자의 모습이 '아 예수다' 하는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백반병의 하얀 흑인의 모습이 그러한 인상을 가져다 줄 수 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는 예사로운 인상이 아니었다. '외국인 노동자로 오신 예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만남의 지점이었다.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외국인이주노동자를 통하여 우리를 선교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며, 하나님, 외국인 이주노동자, 그리고 나 자신이 모두가 선교의 주체됨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누구도 대상이 아니라 주체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두 번째 만남이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을 이루게 한 사건이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이웃을 통하여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를 선교하고 계신다. 우리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 어느 일방만이 선교의 대상이 아니라 모두가 선교의 주체이다. 미국에서 흑인 문제가 심각할 때 제임스 콘이라는 한 신학자는 흑인 문제를 백인에게 맡길 수 없고 '문제의 담지자가 문제 해결의 주체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제임스 콘은 이러한 주장을 '블랙파워'라는 논리로 흑인신학을 주장하게 되었다. 비록 다른 종교인으로서의 외국인 이주노동자이지만 이들 역시 하나님의 선교의 한 주체자들인 것이다. 외국인 이주노동자선교 역시 외국인노동자를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작은 예수로 외국인 이주노동자 자신이 선교의 주체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우리 자신이 바로 선교의 주체인 것이다.
세 번째 만남 이야기: 무엇이 선교인가 ?
선교를 가르쳐 교회를 세우는 일, 기독교인 만드는 일,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 등이지만 안산외국인노동자센타에서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에 중심을 두고 활동을 해왔다. 타 종교인인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무리하게 개종시켜서 세례를 주는 일에 몰두하는 전도 방식은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는 평소의 생각도 있었다. 선교자들도 전도의 결과만을 강요하는 교회에 눈치를 보면서 가짜 세례 교인을 만드는 해프닝도 선교현장에 있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그러한 방식에 대하여도 부정적이었다.
사실 타 종교를 가진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개종을 하여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극히 작은 사례이다. 오히려 위장된 기독인이 되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실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만나 보면 이들이 당하는 현실적인 고통의 문제가 수도 없다. 산업연수생 신분, 강제적립금 등과 같은 제도적 문제,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과 같은 노동문제, 폭행, 강간 등과 같은 인권문제, 언어, 문화 등과 같은 생활문제, 국제결혼, 출산, 국적 등과 같은 가정문제 등이다. 신학 공부를 마치고 난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전문성이 대부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인 이주노동자선교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전문성이 부족하지만 실수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밤낮을 뛰어 다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이나 사회선교에 보다 많은 관심이 잇었기 때문에 안산에서는 주로 '문제 해결 중심의 선교'를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문제 해결 방식의 선교를 지속해 오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이주노동자선교는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질문을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지난 1997년부터 본국으로의 귀환 이주노동자문제에 관심이 한참 많았을 때였다. 이미 한국에서는 귀환 프로그램으로 '이주노동자 마을금고'를 1997년 10월에 개설하였다. 1996년 10월에 17일간 아시아 외국인 이주 노동자 관련 단체의 활동과 한국에서 일하다가 돌아간 사람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하여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방문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 각지에서 귀환한 이주 노동자들의 몇 사람의 삶을 보면서 일종의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귀환한 사람들의 몇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신매매 등과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선교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가 과연 한국에서 밤낮으로 뛰어다닌 것이 결국 이주노동자들이 귀환하여 이러한 일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나?' 하는 자문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선교는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목표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엄습해 왔다. 2-3개월씩 스쳐 가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할 수 있는 일이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을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의 IMF 경제 위기가 새로운 실험을 하는 기회 주어졌는데 바로 외국인 노동자 농장이었다. 1997년 말 캐나다 벤쿠버에서 APEC 민중 포럼에 참여하고 있을 무렵 한국사회가 경제 위기로 IMF 관리체제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한국인은 물론 일자리를 잃은 많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 1998년 봄부터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줄을 이었고, 돌아갈 형편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쉴새 없이 쉼터로 찾아오게 되었다. 일자리를 잃은 많은 사람들로 쉼터는 북적였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이들은 단지 '일자리'만 잃은 것이 아니라 '희망'도 잃어가고 있었다.
할 일없이 쉼터를 지키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하고 생각하다가 찾아낸 것이 '농장'이었다. 한국에서는 빈땅이 있으면 그곳에 식물을 심어 먹기 때문에 빈땅이라는 것이 없다. 결국 찾아낸 빈땅이 있었는데 '자갈밭'이었다. 한국 사람이 버린 땅, 아무도 그곳에 농사지을 생각을 하지 않은 그곳에 농장을 만들기로 하였다. 1998년 4월부터 열심히 자갈밭을 일구어 밭을 만들어 갔다. 밭을 만드는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하루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 왜 우리가 농장을 만들지요? " 하자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답변하였다. " 목사님이 농사지어 다 해 먹으려구요." 아마도 공장에서 일하면서 경험되어온 피해의식에서 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농장을 만드는 이유는 것은 이래요. 돌짝 밭은 한국의 IMF의 상황입니다. 아무도 농사짓지 않는 버려진 돌짝 밭에 지금 우리는 희망을 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주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내일 우리는 씨앗을 심으며 우리의 꿈을 키워 나 갈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모두는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이때부터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농장활동을 시작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서 식물이 자라나는 과정을 통하여 자연과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하였다. 말이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다르지만 자연과의 만남을 통하여 새로운 자아 발견을 시도하였다. 단지 농사일을 한다고 하여 '존재에 대한 깨달음과 지금 여기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발견'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과정을 통하여 끊임없는 존재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이루어져 나갔다. 이러한 시간은 단지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게만 해당 된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우리 모두에 대한 성찰로 함께 나누어 나갔다. 이렇게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농장을 일구어 나간 것은 선교는 '존재에 대한 깨달음과 지금 여기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발견'이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농장 활동은 이러한 깨달음과 성찰의 한 방편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교는 '존재에 대한 깨달음과 지금 여기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발견'의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인노동자농장 말로 비슷한 활동으로는 '밥 나눔의 노래를 통한 영성'활동이 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 먹습니다.'라는 김지하 시인이 시에 가락을 붙인 노래이다. 예수가 선교활동을 처음 시작하시면서 처음 받았던 시험이 바로 '떡(밥)'의 문제 였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단호히 거절하신 그분이 자신의 활동을 마치시면서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 "떡(밥) 나눔' 이었다. 그만큼 밥(떡)의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 역시 밥(돈)의 문제로 한국을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밥 시간이면 이 노래를 부른다. 돌떡이 몸떡(성찬)이 되는 것을 묵상하며 부른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이 깊은 의미를 잘 모른다 하여도 우리는 이러한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밥의 노래를 부른다. 이것이 떡의 영성이다. 배고픈 자가 자신을 위해 먹는 떡은 물질이지만 그것을 배고픈 자들과 나누는 그곳에는 영성이 있는 것이다. 이 밥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 ? 이러한 의미에서 선교는 곧 수행으로 이어진다. 우리 모두는 한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너와 나의 구별도 경계도 없는 지금 여기의 발견 자체가 곧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지금의 만남 이야기 : 쓰레기 십자가에는 무엇이 있을까 ?
1999년 어느 날 길가에 잘려 버려진 나뭇가지들을 보면서 외국인노동자들과 새롭게 만나게 됐다. 길게 늘어진 가로수 나무 가지들은 간판을 가리고 전깃줄에 방해가 된다. 시청 직원들은 가로수 정비를 위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나뭇가지들을 잘라 낸다. 그리고 쓸모 없게 된 그 가지들을 모아서 쓰레기장에 버리게 된다. 이러한 나뭇가지들을 보면서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떠 올렸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주류 사회에서 불필요 한 존재로 잘려져 나와 결국에는 쓸모 없는 존재로 쓰레기장과 같은 지구촌에 버려지는 것과 매우 같아 보였다.
한국 땅에서의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은 '잘려져 나간 존재'들로 '버려진 존재'들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가지들을 주워들고는 나무십자가를 만들기로 하였다. 열심히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나뭇가지들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쓰레기 십자가'이다. 여기에 외국인 이주노동자 신학이 있다. 쓰레기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어 방문객에게 선물로 나누어주면 모두가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이 세상에는 쓸모 없는 존재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금방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무실 벽에 또 다른 나무십자가가 있다. 이름을 '무소의 십자가'라 부른다. 가로 막대는 무화과 나뭇가지로 세로 막대는 소나무로 된 것이라 '무소'라 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생각하며 붙인 이름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에서 따온 '무소'인데 이는 흰두교 경전에 나와있는 말이다.
사실 이 예수상 역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것이다.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집에 예수상 하나쯤은 있다. 그러나 장식품으로 구입한 예수상이 오래 되다보니 색도 바래고 주변 장식도 망가져 결국 보기에 쓸모 없게 된 것이다. 이 무소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못 박힌 모습의 예수상이 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보면 예수의 양팔이 부러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팔이 부러진 예수상 주인은 쓸모 없다고 쓰레기통에 버린 것 같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이 예수상을 주워다 무소의 십자가에 달아 놓았다. 그리고 무소에 달린 예수는 '외국인 노동자 예수'라고 불러 보았다.
버려진 나무 가지를 주워 다가 '쓰레기 십자가를 깎아 만든다. 쓰레기 나무 십자가를 깎아 만드는 과정에서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한다. 십자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노동이 곧 기도(Ora et Labora)인 것이다. 정성스럽게 만든 나무십자가는 다른 사람주기에 아까운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정성스럽게 만든 십자가일수록 아낌없이 나누어준다.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경험하기도 한다. 가끔은 기독교인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십자가를 만들어 본다. 그리고 기도를 한다. '슬픈 눈물의 이야기가 기쁨의 축제가 되게 하소서.'
국경없는 마을에서의 만남 이야기 : 교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외국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생각을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의 정다운 이웃'으로 다가온다. 일하는 현장에 근로자의 신분을 인정받지 못하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는 지역 사회에서 주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오늘의 문화는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낸 바르지 못한 문화이다.
그렇다면 차별을 넘어 공존하는 대안 문화는 없을까? 법과 제도가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하여 차별적이지만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주민들이 이들을 정다운 이웃으로 맞아들인 다면 이미 대안은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였다. 특히 국제결혼 가정(Kosian-아시안과 코리안의 합성어)이 점차 늘어가면서 그 중요성은 점점 더해갔다. 교회가 사회에 대하여 비판의 예언자의기능만 아니라 좀더 근원적으로 대안을 이야기하는 예언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국경없는 마을'에 대한 생각은 국제결혼 가정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다. 1997년 6월에 호적법이 남성중심에서 양계혈통 주의로 개정되면서 국제결혼 가정에도 희망의 싹이 보였다. 그동안 국제결혼을 한 가정의 자녀들이 사생아 형식으로 취급 받아온 터였다. 이들 국제결혼 가정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95년 사무실 인근에서 국제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파키스탄 샤미씨 가정과 이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토마스 가정을 만나면서부터 였다. 호적법이 개정된 가을 국제결혼 가정 50여쌍이 모여 축하의 자리를 만들었다. 이때 이들을 위해 붙여진 이름이 코시안이다. 특히 국제결혼을 한 한국 사람들이나 자녀들에게는 부정적인 용어들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좀더 중립적인 개념이 필요해서 아시아인과 한국인의 만남이란 뜻에서 코시안(Kosian) 이란 이름을 사용 한 것이다.
이들을 만나면서 주민으로서의 권리와 시민권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정기적으로 발행되었던 소식지 '나눔과 일터'가 '국경없는 마을'로 바뀐 것이 바로 이때부터이다. 아울러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가지고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으로서 '인터내셔날 카페'가 운영되었다. 아시아의 각 나라 사람들이 전통차와 전통 춤과 노래가 있는 문화의 마당으로서의 자리를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마을 주민으로서의 만남의 장이 좀더 구체화 된 것은 1999년 11월 안산외국인노동자센타가 현재의 건물로 이사하고 부터이다. 센타 건물을 좀더 주민과 가까운 지역으로 이주 계획을 하면서 '국경없는 마을 1차년도 5개년 계획'을 세운 것이다.
국경없는 마을은 교회밖 즉 성문밖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의 만남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실망한 제자 둘이 성문밖을 지나가다가 예수를 만난 사건을 우리는 기억한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관련법이 차별적이고 현대판 노예제도인 산업기술연수제도의 개정이 요원하기만 하였다. 모두가 힘겨운 싸움에 지쳐있을 때였다. 법을 넘어선 만남, 종교와 국적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의 만남, 교회 밖에서 하나님 나라로의 만남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고민이 '국경없는 마을'로 이어진 것이다. 고맙게도 국경없는 마을로 상정한 안산의 원곡본동에는 좋은 분들이 많았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주민간의 만남의 지점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마을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점에서 만나면 주민과의 만남이 차별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협동의 관계로 이어질 것이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주민과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원곡동에서 마찰을 일으키고 있던 문제는 바로 '쓰레기 문제'였다. 쓰레기 종량제의 경험이 없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함부로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심각한 고민을 하던 차에 원곡동 주민자치센타와 나눈 이야기가 마을 청소였다. 원곡동 주민과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마을 청소를 통해 서로 만남의 장이 가능케 한 것에는 원곡본동 동장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이후로 원곡본동에서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정다운 이웃으로 만나는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 체육대회, 마을 잔치, 주민과의 만남의 밤 등을 통하여 사귐이 더해가고 있다. 다양성이 공존하면서 존재함으로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것이 21세기의 문화의 단초이다.
안산의 원곡동에는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없다. 정다운 이웃만이 있을 뿐이다. 2002년 1월에 '국경없는 마을 원곡동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마을신문도 만들어지고 있다. 산업기술연수제도 등과 같이 차별적 법과 제도적 장치에 변한 것이 하나도 없으나 국경없는 마을 원곡동에서는 공존의 문화가 살아나기 시작하고 있다. 차별과 고난으로 인한 슬픔의 이야기가 기쁨의 축제의 이야기로 변하고 있다.
지난 6월부터는 매주 일요일이면 주민들과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아시아 거리문화 축제'로 모인다. 잘려져 나가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쁨의 축제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예배하는 사람들만의 축제가 아닌 교회 밖에서 국경없는 마을에서 축제가 이루어진다. 기쁜 소식이 곧 복음이다. 묶인 삶이 아닌 해방된 삶이 복음이다. 만나는 사람이 성경이고 거리의 기쁨의 축제가 곧 기도이고 예배이다. '국경없는 원곡동'에서는 삶으로 하나님을 만난다. 교회는 진실을 추구하는 바로 나 자신이고 주민들이고 우리 모두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삶이다. 우리의 관심은 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인간의 성숙에 있다. 소유를 넘어 공존으로 돈이 지배하는 사회를 넘어 사랑이 그득한 대안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무교회 주의는 아니다. 주일이면 함께 일정한 장소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존재에 대한 깨달음과 지금 여기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일상에서의 영성을 실천하며 수행하는 마음으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박천응 목사(안산외국인노동자센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