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MBC에서 방영한 <버림받는 인간 탈북자>는 우리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북한을 탈출한 그들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으로 오고자 한다. 그 중에는 중국경찰에 잡혀 북한으로 압송되거나 아니면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국으로 오는 방법도 과거 제3국을 통해서 조용히 숨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특히 작년 장길수군 가족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베이징사무실 진입사건 이후 많은 탈북자들은 외국공관, 한국공관, 선박입국, 심지어 중국 외교부 등 가리지 않고 남한행을 시도하고 있어 중국정부 당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그러면 왜 북한주민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남한으로 오려고 하는가? 이들이 남한으로 오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경제난과 홍수 등 자연재해 때문에 국가의 식량 배급체제가 무너졌다. 이제 북한주민 스스로 살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한국으로 오는 것이다. 그 밖에 동구 공산권의 붕괴와 중국을 통한 외부정보의 유입, 입국경로의 다변화, 국내외 가족의 도움 등도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자녀의 교육과 정부의 보상금도 탈북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90년대 초만 해도 탈북자수는 연간 10명 내외의 비교적 적은 인원이었으나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50명을 웃도는 수준으로 증가하다가 작년에는 583명이 입국하였으며, 최근 추세라면 금년에만 1,200명이 입국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현재 북한을 탈출하여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의 숫자는 평가주체에 따라 엇갈리지만 일반적으로 적어도 5-30만명 선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화지 않는 한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북자들의 남한 행렬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약속의 땅이라고 생각하고 왔던 한국이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는 데 있다.
현재까지 약 2,700명 이상의 탈북자가 입국하여 사망·이민의 경우를 제외한 약 2,500명 정도가 남한사회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90년대 이전에 들어온 사람들은 수적으로도 적을 뿐 아니라 정부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어서 사회적으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입국한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보상금을 받았고, 또 그 숫자 또한 급격하게 늘어나 그들의 남한사회 부적응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탈북자들이 우리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와 이들을 위해 교회와 기독인들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탈북자들은 왜 잘 적응하지 못하나
탈북자들이 제3국을 통해 입국하게 되면, 먼저 대성공사라는 정부기관에서 합동심문을 받고, 곧 탈북자 정착지원시설인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하나원>으로 옮겨, 약2개월간 우리사회 정착에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교육을 받고 출소하게 된다. 이때 정착지원금과 임대아파트를 배당받음으로써 남한생활이 시작된다. 그들이 겪은 어려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식구조 차이로 인한 부적응
남북한은 분단이후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다원주의 교육을, 그리고 북한은 맑스-레닌주의 및 김일성 주체사상에 입각한 전체주의 교육을 실시하여 왔다. 그렇기 때문에 탈북자들이 자기들이 학습한 내용과 전혀 다른 남한에 와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이미 예상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의식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지적해 볼 수 있다.
첫째, 의식구조의 양면성 즉, 이중성(兩價性)이다. 탈북자들을 어떤 때에는 아주 순진한 사람처럼 보이나 때로는 전혀 그렇지 못한 2중적 태도를 취한다. 남한사람들에게 자기의 과거를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이들은 북한에서의 자기 신분을 속임으로써 자기의 가치를 높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대단한 사람임을 과시하고자 한다. 탈북자들이 이렇게 하는 이면에는 남한사람들이 자기들의 과거를 확인할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남한주민들이 처음에는 북한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람들과 달리 순수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가 나중에 거짓말로 밝혀질 경우, 허탈감에 빠지게 되고, 이러한 경험하고 나면 탈북자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한다. 이 같은 이중적 의식구조에 오래 동안 익숙해진 탈북자들이 남한이주 후 짧은 기간의 교육을 통해 그들의 의식구조가 바뀌어 질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 탈북자들의 또 다른 성격적 특성은 공격적이고 비판적이며, 신경질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욕구불만이 강해지면 공격적인 행동(aggressive behavior)을 하게 된다. 북한사회는 철저한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출신신분이 안 좋은 사람들은 항상 요구의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또 생활고에 시달리다보니 욕구불만이 많아 남과 다투는 일도 많다. 이러한 성격들이 북한에서는 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으나 남한주민들에게는 그러한 행동은 좋게 보일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남한주민들이 탈북자들을 몇 번 접촉해보고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탈북자들은 전통적 유교적 사고를 많이 갖고 있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존대하다거나, 식사를 할 때도 먼저 권하는 예절이 바르지만 여성을 홀대하는 남존여비 의식 또한 지니고 있다.
잘못된 경제관으로 인한 원만한 대인관계의 부족
북한은 원래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반대하고 당과 인민을 위한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사회이다. 따라서 정치적(당원)으로 인정받아 공직에 나아가는 것, 즉 출세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여왔다. 하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북한경제가 극심하게 어려워지자 북한주민들의 이러한 지배적 가치관도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정치적으로 출세하는 것보다 돈버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식량난 등으로 생활이 어려워지자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의지할 곳에 아무도 없는 남한에 와서 더욱 더 심화되어, 돈 이외에는 아무도 자기들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다양한 돈버는 방법에 정신이 쏠려 있고, 서로 나눌 줄 모르고,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와 같이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몇번 탈북자들을 접해본 남한주민들은 그들과의 접촉을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이러한 행동을 그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북한체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한 탈북 실업자의 증가
탈북자들이 남한사회 적응가운데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는 생업의 근본이 되는 취업의 문제이다. 과거 탈북자들이 많지 않을 때는 정부에서 은행이나 공사 등에 취업시켜주어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게 하였다. 하지만 1994년 이후 탈북자들의 대거 입국과 IMF로 인해 이들 취업 문제가 쉽지 않아졌다.
탈북자들의 실업률이 높은 것은 첫째, 탈북자들이 취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대부분 탈북자들이 억압된 북한체제에 있다가 자유로운 남한체제에 와서 모두가 마음이 들떠있는 상태에서 <하나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짧은 적응교육으로 별다른 전문지식을 갖기 어렵다. 또한 북한에서 학습한 지식들이 남한사회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실업의 중요한 이유이다.
둘째, 탈북자들의 근로의식의 부족이다. 탈북자들의 근로의지가 부족한 것은 북한체제에서 획득된 행동양식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적극적인 인간형보다도 피동적이고 순응적인 인간형을 요구한다. 이 같은 사고에 익숙해진 탈북자들이 처음 남한에 와서 남한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놀란다. 새벽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사회주의에서는 모든 일을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부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되기 때문에 처음 입국한 탈북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서 불안하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셋째, 획득 가능한 대체소득이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 상당수가 생활보호대상자로서 지정되어 생활비 일부를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또 일정기간 기업에 입사하면 월 70만원까지 받을 수도 있다. 안보강연이나 간증으로 돈을 쉽게 벌 수 있고, 또 교회나 종교단체에 나가면 생계보조금을 제공받기도 한다. 따라서 탈북자들은 힘들게 일하기보다는 이러한 보조금으로 살아가고자 하기 때문에 실업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보조금은 단기적으로는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볼 때 탈북자들의 정착을 막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부나 교회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히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넷째, 탈북자들은 북한에서의 조직생활에 염증을 느껴 기업체에 가서 조직적인 생활을 하기를 꺼려한다. 기업체에 들어가 남한사람들과 경쟁에서 이기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북한에서의 조직생활의 경험 때문에 조직생활에 염증을 느낀다. 또 남한사람과의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도 쉽지 않고, 직장에서도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는 직장분위기와 직장동료들과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탈북자들의 사고와 생각을 모르는 남한사람들이 이들을 왕따 시켜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성실해서 일을 해서 돈을 벌기보다는 탈북자 중 성공한 가수 K씨와 같이 몇 안 되는 사람을 자기들의 이상적 모델로 삼아, 쉽게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하려는 경우가 많으나 이 경우에도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남한주민들의 무관심과 냉대
탈북자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고통 중 가장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다. 그 가족들이 자신들 때문에 강제 수용소로 옮겨가는 등의 큰 고통을 받을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매일 밤마다 악몽을 꾸는 사람도 있고,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탈북자들이 북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보다 실제 더 괴로운 것은 남한사람들이 자기들의 바라보는 좋지 않은 시선이다. 남한 주민들이 '70년대까지만 하여도 탈북자들을 "김일성 치하에서 못 먹고 억눌려 지내온 불쌍한 동포"로 생각하였으나, '80년대 이후에는 "부모 자식을 버리고 온 배반자, 죄를 짓고 도망 나온 자, 이방인, 2등 국민, 귀찮은 존재"라는 부정적 인식을 많이 하고 있다. 오래 동안 탈북자 사역을 해온 필자의 경험을 통해 보면 우리의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이다. 탈북자들은 최근 가족단위로 많이 입국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자기의 정착금을 보내서 가족들을 데리고 온다. 결국 남한 주한주민들은 잘못된 편견이 탈북자의 남한 정착들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관 박사(탈북이주민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