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론인 출신 정치인의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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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4월 30일, 당시 여당 대변인이 내놓은 논평 가운데 한 줄을 소개한다. "내 편은 죄가 있어도 감싸고, 내 편이 아닌 사람은 죽여놓겠다는 이회창 총재식의 탄핵정치는 상생의 정치가 아니라 살상의 정치이다" 결국 상대 당 대표를 깎아 내리는게 대변인의 본령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금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여당 대변인의 발언은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것이다. 다음 발언을 잘 묵고해보자. "이회창 총재는 스스로 공정하고 따뜻한 보수라 지칭했는데 재벌 등 특권 기득권층을 편드는 지극히 수구적이고 편파적인 입장에 서 있을 뿐, 서민과 힘없는 사람에게는 냉정하고 차가운 본질을 감추기는 어려울 것이다."(같은 해 5월 23일) "세계 유일의 포용정책 반대자가 되어 대북정책 실패를 외치는 이 총재는 고독한 선지자의 모습이 아니라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현정부의 실패만을 고대하는 심술난 놀부의 모습으로 전 세계에 비춰지고 있다."(6월 14일)

이 대변인은 또 힘이 있어 보이는 당에 붙었다 나왔다 하는 소위 '철새 정치인'에게도 아낌없는 일갈을 남겼다. "지난 97년 대선에서 우리 당과 힘을 합해 한나라당에 맞서 정권교체를 이루었던 김용환, 강창희 의원이 그 동안 주장해 온 명분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한나라당에 안긴 것은 정치생명 연장만을 위한 추악한 배신과 야합에 지나지 않는다."(2001년 10월 18일) ...

이 논평을 발표한 여당 대변인은 바로 전용학 의원이다. MBC에서 방송기자로 출발한 전 의원은 세계일보를 거쳐 SBS 8시 뉴스 앵커까지 언론계에서 다양한 경륜을 쌓았다. 이런 전 의원이 최근 민주당을 탈당해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노선이나 정책방향이 전혀 다른 당인데 말이다. 또 자신의 입으로 단정한 '정치 공작 전문정당'에 '명분과 정치도의를 저버린 배신과 야합행위'를 동기 삼아 입당한 꼴이다.

언론사에 재직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 중 정치계에 입문한 인사들은 대변인 단골 인선 대상이다. 현직만 보더라도 그렇다. 한나라당에서는 남경필(경인일보), 민주당 이낙연(동아일보) 대변인들이 이 경우에 속한다. 이밖에도 한나라당 맹형규, 이윤성, 민주당 정동영, 전용학, 자민련 변웅전 대변인 등도 과거 방송계에서 활동한 인물들이다. 그들의 친화적 이미지, 명료한 발언 등이 대중적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의원이 간과한 것은 「명분」이다. 단지 글 잘 쓰고, 잘 읽는다면 그것은 습작가요, 앵무새에 불과하다. 말에는 실천이 있어야 하고, 소신이 담겨야 한다. 자신의 입으로 저주를 내뱉은 당에 명분 없이 발길 찾아 들어간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순수하게 해석할 수 없다.

전 의원은 「모든 걸 유권자들의 심판에 맡기겠다」라고 했다. 행여 그 속에 「몇 주만 욕먹으면 될 일」이라는 심산이 있다면, 그로부터 그는 언론인으로서의 자기 이력을 부정하는 상황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다 탈당하더라도 나 혼자 남아서 한나라당을 지키겠다」던 이한동 전 국무총리. 그는 정권을 빼앗긴 직후 선두 그룹에 서서 한나라당을 탈당해 공동여당인 자민련으로 이적한 경력이 있다. 양지를 지향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소신과 명분에 따라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인들에게 그 것에 대한 자제력을 호소하는 것은 무리일까. 게다가 그런 정치인들을 감시하며 꼬집었던 언론계 출신 인사에게 양심적 자기 결단을 기대하는 것 또한 지나친 것일까.

한 언론계 정치인의 타락을 보면서, 이 나라 정치의 답답한 현실을 본다. 또 암담한 내일을 가늠한다.

글/김용민(기독교TV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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