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변인은 또 힘이 있어 보이는 당에 붙었다 나왔다 하는 소위 '철새 정치인'에게도 아낌없는 일갈을 남겼다. "지난 97년 대선에서 우리 당과 힘을 합해 한나라당에 맞서 정권교체를 이루었던 김용환, 강창희 의원이 그 동안 주장해 온 명분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한나라당에 안긴 것은 정치생명 연장만을 위한 추악한 배신과 야합에 지나지 않는다."(2001년 10월 18일) ...
이 논평을 발표한 여당 대변인은 바로 전용학 의원이다. MBC에서 방송기자로 출발한 전 의원은 세계일보를 거쳐 SBS 8시 뉴스 앵커까지 언론계에서 다양한 경륜을 쌓았다. 이런 전 의원이 최근 민주당을 탈당해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노선이나 정책방향이 전혀 다른 당인데 말이다. 또 자신의 입으로 단정한 '정치 공작 전문정당'에 '명분과 정치도의를 저버린 배신과 야합행위'를 동기 삼아 입당한 꼴이다.
언론사에 재직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 중 정치계에 입문한 인사들은 대변인 단골 인선 대상이다. 현직만 보더라도 그렇다. 한나라당에서는 남경필(경인일보), 민주당 이낙연(동아일보) 대변인들이 이 경우에 속한다. 이밖에도 한나라당 맹형규, 이윤성, 민주당 정동영, 전용학, 자민련 변웅전 대변인 등도 과거 방송계에서 활동한 인물들이다. 그들의 친화적 이미지, 명료한 발언 등이 대중적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의원이 간과한 것은 「명분」이다. 단지 글 잘 쓰고, 잘 읽는다면 그것은 습작가요, 앵무새에 불과하다. 말에는 실천이 있어야 하고, 소신이 담겨야 한다. 자신의 입으로 저주를 내뱉은 당에 명분 없이 발길 찾아 들어간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순수하게 해석할 수 없다.
전 의원은 「모든 걸 유권자들의 심판에 맡기겠다」라고 했다. 행여 그 속에 「몇 주만 욕먹으면 될 일」이라는 심산이 있다면, 그로부터 그는 언론인으로서의 자기 이력을 부정하는 상황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다 탈당하더라도 나 혼자 남아서 한나라당을 지키겠다」던 이한동 전 국무총리. 그는 정권을 빼앗긴 직후 선두 그룹에 서서 한나라당을 탈당해 공동여당인 자민련으로 이적한 경력이 있다. 양지를 지향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소신과 명분에 따라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인들에게 그 것에 대한 자제력을 호소하는 것은 무리일까. 게다가 그런 정치인들을 감시하며 꼬집었던 언론계 출신 인사에게 양심적 자기 결단을 기대하는 것 또한 지나친 것일까.
한 언론계 정치인의 타락을 보면서, 이 나라 정치의 답답한 현실을 본다. 또 암담한 내일을 가늠한다.
글/김용민(기독교TV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