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그 불씨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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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마감하며, 미국의 종교전문기자들은 지난 천 년 동안 일어난 최대의 종교적 사건으로 종교개혁과 구텐베르크 성경 인쇄를 꼽았다. 이는 거대한 하나님의 구속사에 있어서 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면죄부(免罪符)에 관한 95개조 논제>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대학의 성(城) 교회 정문에 게시한 루터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종교개혁은 구텐베르크의 성경 인쇄 등을 통해 일반 성도들의 손에까지 성경이 전수되며, 대중들의 뜨거운 호응 아래 거대한 사회개혁운동으로 번져갔다.

당시 기독교는 유럽 전역 모든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었던 것이었기에, 종교개혁운동은 교회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많은 이들이 종교개혁 이후 일어난 계몽주의 사조와 합리주의를 근대사회의 특징으로 평가하지만, 근대인을 낳은 것은 합리주의와 자연과학이 아니라 제도화된 종교 권력에 대항해 일어난 종교개혁의 정신이었다.

종교개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견될만큼 거대한 종교권력과 이에 반하는 진리를 외치려는 한 사제와의 외로운 싸움에서 시작되었으나, 현재의 개신교를 낳는 역사적인 분기점이 됐다. 또한 이는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혁명의 모태가 되었고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퓨리탄)을 낳게 했으며, 근대사회와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거대한 시대 변화를 일으켰다.

당시 유럽 전역의 지배적 종교로 자리매김했던 기독교는 아비뇽 교황의 대립으로 생긴 분열 결과, 14세기경부터 그 안팎에서 쇠퇴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으며, 연옥이라는 비성서적인 교리를 만들어 구원의 본질을 심각하게 외곡시키고 있었다. 당시 로마 카톨릭은 세례를 받은 사람은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가르쳐 어릴적 유아세례를 받았던 대부분의 성도들은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었으나, 이후 죄를 범한 영혼이 천국에 간다는 것 또한 성서적 본질에서 어긋나게 되자, 교부들은 천국과 지옥 외에 또 다른 연옥이 있다고 주장하며 연옥교리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성도들은 지옥에 가는 것보다 연옥에 가는 것을 더 두려워 하게 되었다.

카톨릭교회는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만 받을 수 있는 구원(칭의와 성화를 포함한)을 연옥을 면하기 위해서는 미사와 고해성사, 면죄부 구입, 성지순례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으며, 성경을 사제만이 독점하게 하는 등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를 종교권력자들만의 특권으로 고착시켰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십자군 전쟁, 면죄부 판매 등이 잇따르게 됐다. 이러한 시대적 정황은 비자각적 유아세례(幼兒洗禮)를 비성서적이라 보고, 자각있는 사람에게 본인의 분명한 신앙고백의 기초 아래 다시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는 재침(세)례파(再浸禮派)가 나오는 근거가 되었다. 결국 종교개혁은 구원론의 문제에서 시작됐다 할 수 있으며, 오늘날 구원파가 큰 문제가 되며 득세하는 것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보건대 기이한 일이 되지 못한다 하겠다.

루터는 로마서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 속에서 신앙의 본질을 발견했다. 이는 인간의 구원이 수도 행위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강조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를 행위의 차원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성도들의 내면의 변화를 강조하는 대신, 눈으로 명확히 드러나는 주일성수와 헌금 등을 통해 성도의 신앙을 평가하고 있다. 또한 성도들에게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하고 그들 안에 있는 죄를 지적하기는 커녕, 천국에 갈 때가지 지상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보험회사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한국에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순복음계통의 교회들은 3박자의 복음을 외치며, 십자가가 배제된 기복적 신앙을 심어주고 있다. 이러한 신앙은 의인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이해할 수 없게 하며, 십자가와 제자로서의 훈련의 삶을 간과하게 만든다.

또한 예언자적인 음성으로 죄를 찌르고 강조하고, 엄격한 훈련을 강조하는 교회를 성도들은 떠나고 있다. 쉽게 좋게 편의대로 살아가는 신앙, 죄를 고발하고 도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이 타협해가는 교회는 세상과 다를바가 없다. 지금 교회 마당을 밟는 것만으로도 구원을 받는 것이며, 모태신앙이기에 천국에 간다는 면죄부가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쥐어져 있다.

한국의 교회는 지금 기독교적 신앙과 교리, 구원의 본질을 철저하게 꿰뚫지 못해 마땅히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본분을 잊게 하고 있으며, 면죄부를 팔아 죄책을 면하게 했던 카톨릭과 같이 헌금 등 외형적인 수단을 통해 죄책을 면하게 하고 있다. 또한 천국 티켓을 미리 예약해 놓았으니 여생을 편히 즐기다 생을 마감하면 되는 것처럼 가르쳐 신앙에 있어 성화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하고 있다.

지금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에 새로운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당위성을 외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요시아 왕으로부터 일어났던 유대의 개혁 운동은 뭍혀져 있던 율법책을 다시 발견한 데서 시작됐다.(왕하22장) 루터를 보라. 그는 오랜 고민과 기도 끝에, 말씀 속에서 종교개혁의 불씨를 찾았다. 그것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했던 말씀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지금의 시대 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종교개혁자들의 음성은 항상 살아있어야 한다. 인본주의의 낡은 옷을 벗고, '오직 은혜로만' 존재하는 인간의 실존을 다시 발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는 모든 노력들을 불식시켜야 한다. 루터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복음의 진수, 참된 신앙의 세계는 '은혜'의 세계였다. 오늘의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개혁의 출발이며, 불씨이다.

노승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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