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구호보다 작은 사랑 실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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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5 년 전의 일입니다. 나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몸도 요양하고 목회 견습도 할 겸해서 문준경 아주머니가 시무하시는 증동리 교회에 두 달 반 동안 식객(食客)이 된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 합동신학교 명예총장으로 있는 신복윤 목사도 같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무의무탁한 병든 여성들이 너댓 명씩 묵고 있었습니다. 새벽기도가 끝나면 큰 바랑을 들쳐 메고 나가곤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 동네 집집마다 사정을 백과사전처럼 알고 있었습니다. 심방 수첩에는 신·불신자(信不信者)의 차별이 없이 신상기록이 있고 5퍼센트 정도의 부잣집, 굶는 집, 병든 집 등 사정이 카드화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머니가 먼저 도는 집은 잘 사는 집들인데 누룽지를 당연히 수합합니다. 제사 음식, 잔치 음식도 걷습니다. 푸짐하게 거둔 누룽지와 제사집 음식들은 배고픈 집마다 나눠 줍니다. 어느 문화권에서도 거지는 천대를 받지만 이 마을 거지는 천사 같은 거룩한 대신거지였습니다.

그 아주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여기에 굶어 죽지는 못하게 하는, 사회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나눔과 사랑의 비결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동네마다 십시일반, 오병이어(한 소년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예수님께 드리자, 이것을 가지시고 예수님께서 굶주리림에 처한 5,000명을 먹이신 일) 운동을 벌여 잘 사는 집들에서 그 아주머니의 누룽지(성금)를 거둬, 배고픈 가정에 나눠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돌 같은 마음이라도 “우리 동네 아무개 좀 도와 주십시다.”라고 사정하면, 우리나라 정 많은 인심은 그래도 따뜻합니다. 상점이나 집마다 100원 짜리 돼지 저금통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또 하나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전국 교회 아는 분들에게 부탁해서 피부병 연고, 소화제, 소염제, 항생제, 영양제를 모아서 자루에 담아 가지고 신불신을 가리지 않고 병자들을 심방합니다. 심방하면 만져주고 쓸어주면서, 약도 먹이고 기도를 하면, 신통하게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나서 의사보다 아주머니를 청합니다. 엉터리 의사지만 거룩한 천사 의사입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위해서 그의 특유한 찬송을 반복해서 부르고 기도를 합니다. 도박하고, 계집질하고, 아내 구타하고, 불효하는 자식을 끌고 오는 어머니도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 앞에서는 벌벌 떨며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한 후 교회 나오는 청년도 보았습니다. 그녀는 그 동네의 드보라 같은 한국판 여상사이며, 의사이며, 만나를 나눠주는 모세이며, 뭇사람의 어머니이며, 주의 빛이고, 소금이고, 대사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야의 정쟁과 지역적 갈등, 실직자, 소년소녀가장, 무의탁 독거노인, 장애인 문제, 청소년문제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 동족 북한 동포들이 굶주림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집단이기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외 받고, 스스로의 자립 자활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처방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방법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냉수 한 잔, 작은 동정과 친절이 밥 한 그릇 얻어다 나눠주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여행 중에도 돌봐주고 떠난 사람을 지칭함)의 동정심입니다.

우리가 사회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민족의 하나됨과 약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우리 민족 5퍼센트의 부자들에게서(신불신 간에) 십시일반, 오병이어를 모아 최소한 결식아동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 얻어다 주는 사랑이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고, 그것이 필요 없을 만큼 사랑의 부자도 없습니다. 밥 한 그릇 모아다 주는 작은 친절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풍요하고 인정 있는 이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동네마다 학교가 있습니다. 자녀를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교회 어머니들이 앞장서서 믿지 않는 어머니들과 협력해서 학교에 매일 열 명씩 순번으로 완장 두르고 순찰하며, 설득하며, 리본 달아주며, 캠페인 하면 경찰관들이 순찰하는 것보다 호소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동장(洞長)들, 동 유지들, 파출소, 학교 선생들, 교회 목사들이 살기 좋은 우리 동네 운동을 벌이면 예수와 사랑의 혁명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힘은 모을수록 커지고 쓸수록 강해집니다. 이 원리는 모든 일에 보편 공통의 원리입니다. 물방울이 모아지면 댐이 되고 수력 발전소가 됩니다. 구슬도 꿰어야 보화가 됩니다. 작은 주머니 돈들을 모으면 주식회사도 되고 은행도 되어 경제와 산업의 에네르기가 됩니다. 고기 잡는 일도 낚시질보다는 협력해서 망으로 모아 잡으면 수만 배가 됩니다. 사회 개혁의 에네르기, 통일의 에네르기, 경제 부흥의 에네르기 등 에네르기화 시키는 장치만 마련되면 민족을 구하고 세계의 빛과 소금이 되는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리비아의 지하수처럼 그것을 파내지 않았을 때는 묻혀진 사막이었지만, 그걸 파내서 대운하를 만들어놓으니까, 사막이 옥토로 변하고 리비아도 발전했한 것과 같습니다. 인정 많고, 사랑 많은 우리 국민의 마음의 샘을 파내는 일을 한다면 우리 민족의 현실과 민족의 미래는 달라집니다.

자랑스런 나라 만들기 운동이 우리 사회의 집단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약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고, 나아가 굶주림에 처한 북한동포들을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돕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동포들의 아픔을 돌아보고, 제 3세계 가난과 문맹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그들을 우리 나라가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선한 동기를 부여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특히 굶주림에 처한 북한 동포를 돕는 일에 우리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해주었으면 합니다. 성경에 보면 굶어 죽지 않을 권리가 소유권보다 우선한다고 말씀합니다. 국토 통일의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의 통일입니다. 자랑스런 나라만들기 운동에 참여하는 분들이 한 동포에게 사랑을 베풀 수가 있습니다. 100만 명이 매월 천 원씩 모을 수가 있습니다. 어른들은 1,000원씩, 어린이들은 100원씩만 내면 한 달에 10억 이상을 모금할 수 있습니다.

밥을 나눠 먹으면 식구(食口)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토 통일이 되면 좋지만 사랑의 통일보다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통일의 에네르기를 결집시키고, 가진 것을 나눌 각오로 본격적인 통일 준비와 나눔운동에 들어가, 국토 통일 이전에 사랑의 통일을 이루는 기반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의 힘을 결집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사랑과 나눔과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기를 원하는 이들이 힘을 합치기만 하면, 잘못된 법도 고칠 수 있고, 사회 개혁의 주체 세력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자랑스런 나라 만들기 운동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의 고질병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범국민적 사랑의 힘을 발휘하는 자랑스런 민족의 역사를 만드는 일에 기폭점을 만들어내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민족의 미래를 책임질 우리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거창한 구호보다 사랑의 작은 실천이 필요한 때입니다. 손님이 아닌, 주인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준곤 목사(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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