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영성과 자발적가난영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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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십자가의 영성: 자발적 가난의 영성

국가의 부와 권력에 유착된 기독교는 세상의 영광을 추구한 기독교였다. 세상 안에서 세상의 영광을 누리는 기독교는 십자가의 기독교가 아니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세상에서 부와 권력을 누리는 영광의 기독교를 거부하고 세상에서 고난과 수치를 감수하는 십자가의 기독교를 추구했다. 십자가의 기독교는 참 하나님과 참 구원에 이르는 참 신앙의 종교였다.

루터와 칼빈을 비롯해서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의 죄성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신학의 사고를 시작했다. 루터는 인간의 덕 속에까지 죄가 스며 있다고 보았다. "덕이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덕 때문에 인간들은 스스로 만족하며 의존하며 이것들이 악하지 않은 것처럼 느끼며 찬양하기 때문에 덕이란 깊숙이 감추어진 죄의 뿌리이다."(스콜라 신학에 반대하는 토론. 논제 44) 따라서 인간의 덕과 행위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인간의 교만과 허영에서 벗어나야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입을 수 있다고 보았다. 젊은 시절에 루터는 자신의 영적 구원을 얻기 위해서 세속과 완전히 단절하고 철저한 금욕생활을 추구했다. 종교개혁 초기에 그는 '영광의 신학'과 '십자가의 신학'을 구별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고난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십자가와 고난을 싫어하고 행위와 일을 행함으로 얻어지는 영광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십자가의 선함을 악이라 부르며 악한 행위를 선이라 부른다...누구든지 자신의 일이 스스로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이루어졌음을 깨닫고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를 알게 되면, 그 때 가서 하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부풀어 있던 교만을 깨뜨려 버리게 되고, 자신의 선행이 얼마나 거만한 것이었는가 알게 된다."(하이델베르그 토론. 논제 21)

칼빈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종교개혁의 원리를 철저화시켰다. 칼빈은 엄격한 신정통치를 추구했으나 자신은 청빈하게 살고 명예를 누리려 하지 않았다. 아이가 많이 딸린 가난한 과부와 결혼하여 수 십 년 살다 죽은 칼빈이 남긴 유산은 거의 없다고 할 만큼 청빈하게 살았다. 그는 또한 무슨 자랑할 게 있다고 죽어서까지 이름을 남기려느냐면서 자기 무덤에는 기념비를 세우지 말라고 해서 변두리 땅에 초라한 무덤에 묻혔다. 칼빈은 이단과 일탈행위에 엄격한 통제를 가했으나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돌리는 신앙의 원리를 지켰다고 여겨진다. 그는 물질적 욕망을 버렸을 뿐 아니라 명예욕마저 버린 청빈한 삶을 살았다.

종교개혁 좌파로 여겨지는 재세례파, 메노나이트파, 퀘이커파는 종교의식을 단순하게 하고 예수를 따르는 평화주의적 실천을 했다. 이들은 예수의 삶과 일치하려 했다. 검소하고 평화적인 삶,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하려 했다는 점에서 종교개혁의 원리에 좀더 철저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들은 소종파로 머물렀고 사회의 주도 세력이 되지는 못했다.

서구의 종교개혁은 철저하게 실행되지 못 했다. 종교개혁의 주류는 새로운 정치경제세력과 결탁하고 부와 권력을 누리게 되었다. 이로써 국가체제에 안주하고 부와 권력의 영광을 누리는 종교가 되었다.

루터와 칼빈, 루터교와 장로교는 황제와 교황에 맞서 싸웠으나 그들에 맞서는 봉건 영주와 자유도시의 정치세력과 결탁했고 이들의 정치세력의 보호를 받았다. 이들이 시작한 개신교는 봉건사회가 해체되고 새롭게 등장한 자본주의와 밀착되었다. 유럽에서 개신교는 대체로 새롭게 등장한 부르주아적 시민계급, 자본가계급과 결합되었다. 새로 등장한 부유한 시민계급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도 주도하는 지배세력이 되었고 이들과 결합한 개신교는 다시 세속국가사회의 문명에 예속되었다. 종교개혁의 신앙원리는 개인의 심정과 삶에서만 적용되는 것으로 위축되었다. 결국 교리로만 남게 되었다.

칼 바르트와 본회퍼는 종교개혁의 신앙원리에 따라서 국가와 문명에 예속된 교회를 오직 말씀과 은총에 충실한 교회로 개혁하려고 힘썼다. 개신교의 신앙원리는 믿음, 은총, 성서만을 내세웠는데 이것은 기독교가 국가권력과 부에 대한 의존과 예속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나 사이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십자가의 고난과 사랑에서 구원의 길을 여는 종교임을 말해준다.

박재순 목사(열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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