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법 연내 제정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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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법의 제정이 또다시 해를 넘기고야 말았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가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안)’을 입법예고한 이후 법제정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는 듯 싶더니 일부 과학자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그리고 이를 등에 업은 과학기술부의 이견을 조정하는데 실패함에 따라 결국 법안을 올해 정기국회에 상정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핵심적인 쟁점은 ‘인간배아복제와 이종간 교잡의 허용여부’였다. 복지부는 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향후 구성될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승인할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안을 내놓았다. 더군다나 법제정 이전에 진행되고 있는 연구는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계속 진행하도록 경과조치를 두었고, 3년 이후에는 법을 다시 수정할 수 있는 일몰규정까지 두었다.

복지부가 이렇게 굴욕적인 안을 제시했음에도 과학기술부와 일부 생명공학자들은 “법안이 과학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거나 “윤리만 있고 과학은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과학기술부는 입법주관부처인 복지부에 불만을 터뜨리며 부처간 조정절차에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인간배아복제와 이종간 교잡연구는 특히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여 그들의 주장처럼 함부로 허용해선 안된다. 더군다나 그들의 주장처럼 질병치료를 위한 인도주의적 목적에서라면 윤리적·사회적 문제가 없는 다른 대체기술 연구에 더욱 집중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무조건 허용하라는 것은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일 뿐, 진정 생명윤리와 안전을 존중하고 보호하겠다는 마음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특히 과학기술부는 생명윤리법 제정에 있어 왈가왈부할 자격조차 없다. 지난 2000년말 과학기술부 장관이 구성한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무시하는가 하면, 장관이 바뀔 때마다 계속 말을 바꾸며 조속히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번번이 어겨왔다. 그리고 결국엔 생명윤리법의 정기국회 상정을 앞두고 발목을 붙잡아 연내 제정을 무산시킨 장본인이다.

또한 생명윤리법 제정 무산에 있어 언론의 보도태도도 한 몫 했다. 국내 생명윤리법 제정 논의는 벌써 5년이 넘게 끌어왔고 주요 쟁점도, 각계의 주장도 이미 그 윤곽이 드러난 상태이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친 사회적 논의와 토론, 그리고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과학자 등 전문가 뿐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함께 성숙한 논쟁의 장을 만들어 온 것이다.

하지만 생명윤리법 제정을 둘러싼 언론의 보도태도는 이러한 사회적 논의과정은 무시한 채 ‘과학 對 윤리’라는 평면적인 대립구도로만 그리고 있어 생명윤리법 논쟁에 있어 우리사회의 다양한 경험과 여러 의견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특히 대부분의 언론이 “선진국에서는 배아복제를 허용하고 있다’”는 특정 과학자의 주장을 사실확인 없이 계속해서 싣는가 하면, 지난 2~3년간의 논쟁을 통해 배아연구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표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찬/반의 극단적 주장만을 소개해왔다.

이미 국내에는 인간복제실험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집단이 있고, 정부의 지원하에 인간배아연구가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생명윤리법의 제정은 정말 시급한 과제이다. 불행중 다행일까. 지난 11월 정기국회가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김홍신 의원의 대표발의로 여야의원 88명이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제 남은 것은 국회와 정부의 선택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소수 전문가나 이해당사자에게만 맡겨선 안되고 일반시민의 민주적인 참여가 보장될 때에만 올바른 ‘선택’이 가능해질 것이다. 생명윤리법의 온전한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배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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