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신기술이나 발명품 등에도 어느 시점에서는 부작용이 발견되듯이 인터넷이 무한정 우리를 기쁘게 만들어 주지만은 않고 있다. 인터넷으로 인해 발생되는 피해는 이미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넘어 범죄로까지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노력으로 초․중․고등학생들의 인터넷 이용률(2001년 기준)은 각각 88.4%, 99.8%, 99%를 넘을 정도로 정보통신 최강국의 면모는 갖추었으나 초등학생 때부터 음란사이트를 접속하고 있으며, 폭력, 자살사이트 접속, 인터넷 게임 중독, 채팅, 사이버 테러 등에 의한 문제점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사이버상에서의 청소년 유해 매체물은 매년 급속한 증가세를 보이는데 반해, 이에 대한 모니터링은 한계가 있고,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도 한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사이버상에서 벌어지는 범죄 가운데 인터넷 이용률이 가장 높은 10대 청소년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0년에는 30.8%, 2001년에는 43.5%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요컨대, 인터넷에 의한 다양한 콘텐츠는 우리들의 삶을 매우 편리하고 유용하게 바꾸어 놓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발생되는 피해에 대한 관리는 거의 무방비 상태이고, 청소년들은 여과되지 않은 정보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추진 중인 인터넷 내용 등급제 도입은 늦은 감도 있지만 시의 적절한 시도라 하겠다. 인터넷내용등급서비스란 정보제공자가 객관적 등급기준에 따라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에 자율적으로 등급을 표시하면 학부모, 교사 등 정보이용자가 내용선별S/W를 이용하여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보를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이다. 인터넷내용등급서비스는 인터넷에 대한 자율규제라는 대 전제하에서 정보이용자의 정보선택권을 보장하고 청소년의 안전한 인터넷 이용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하루속히 이 제도의 확산이 시급히 요청되는 과제라 하겠다. 인터넷내용등급서비스는 정보 선택의 최종적 권한이 내용선별S/W를 관리하는 학부모나 교사 등 청소년보호자와 정보이용자에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검열 없는 자율규제"를 가능하게 하며, 청소년의 연령이나 지적 수준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정보를 선별할 수 있어 학부모․교사들에게 교육적인 수단을 제공하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정보제공자로 하여금 정보의 신뢰성을 높여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함으로써 그 동안 쌓여 왔던 인터넷 이용자와 공급자간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최적의 장치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라는 아주 좋은 제도가 있다 하더라고 인터넷정보제공자들에게는 ‘의무적인 제도’가 아닌 ‘자율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이익을 고려하는 업계에서는 반기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용자들도 내용선별S/W를 돈을 지불하고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점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이 제도가 일반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 졌다 하더라도 이용률이 매우 저조한 결과를 낳고 있다.
우리 나라가 세계 최강의 정보통신강국이지만, 인터넷 내용등급제도에 관한 논의는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지난 1996년 타임지의 사이버 포르노 논쟁(Cyberporn Debate)이 대두되었고, 1996년~1997년 어간에 통신품위법 등 인터넷 불건전정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이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대안으로서 1995년 W3C(World Wide Web Consortium)의해 개발된 PICS 기술을 이용하는 인터넷내용등급 서비스가 부상하였다. 이는 Parental Empowerment Group(정보고속도로 하에서 부모들의 권리 향상을 위한 모임)에 의해 처음 제안되어 민간단체 차원에서의 운동에 제도로 정착된 선례가 있다. PICS 관련 기술은 "검열 없는 인터넷 규제(Internet Access Control without Censorship)"의 방법으로 설득력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인터넷 내용 등급제 서비스는 미국을 비롯한 인터넷 주요 선진국에서 민간자율규제나 정부주도 규제방식으로 이미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민간 기업 주도의 자율 규제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고, 일본에서는 통산성의 지휘아래 전자네트워크협회(ENC: Electronic Network Consortium) 주도로 "Safety Online"이라는 독자적인 등급서비스 구축하고 있다. 또한 E U에서는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민간 영역의 자율 규제 노력과 결합시킴으로써, 정부 규제와 자율규제의 절충안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민간자율규제 방식과는 달리 중국, 싱가포르 등은 정부 주도의 규제 방안을 택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시도되고 있는 방식은 미국의 방식과 일본의 방식을 혼합해 놓은 듯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나, 인터넷업계의 자발적인 협조가 저조한 관계로 앞으로는 중국이나 싱가폴에서 추진되고 있는 정부주도의 규제방안을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내용 등급서비스 자체가 검열 없는 규제로써 정보이용자들에게는 정보의 선택권이 주어지고 정보제공자들에게는 사회적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주어 상호간에 신뢰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 주도의 규제 방안을 도입하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적절한 방안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안전한온라인을위한민간네트워크(안전넷)를 주축으로 한 시민단체들이 학부모들과 청소년단체 관계자들, 그리고 인터넷 산업 관계자들과 만나 의견 조율이 필요한 과제가 남아있다. 또 한편으로는 정부당국에 입법청원을 할 뿐만 아니라, 법제화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압력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내용 등급제를 도입하려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리고 정부차원에서 이 제도를 입법화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인터넷에서의 정보이용자들의 권리는 거의 인정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스팸메일을 열었을 때, 원치 않는 성인사이트가 도미노처럼 뜨는 것이나 채팅에서의 사이버언어 폭력 등에 대해 정보이용자 스스로 등급을 마련하여 스스로 규제할 수 있는 어떠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았었고, 마련되었던 하더라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어서 잘 알려지지 않아 그냥 피해만 입는 경우가 허다했다. 때문에 차제에 인터넷 내용등급 서비스를 법으로 제정한다면, 인터넷으로부터 당했던 피해사례는 현격히 줄어들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2천4백만개의 인터넷 전용회선이 보급되어 있고 전국적으로 3만개의 PC방이 성업중이다. 그야말로 정보통신최대 강국의 입지를 굳건히 세운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인터넷 서비스 인프라를 보급하는 데만 앞장섰지 정보의 내용을 선별하고 이용할 수 있는 법적 제도장치는 없었다. 인터넷 내용등급 서비스를 민간자율규제로 보급하려는 지금의 작업들은 가장 이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유용한 정보와 함께 유해한 정보가 마구잡이로 섞여 포화상태에 이른 우리 나라에서는 민간자율규제 방식은 적합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자녀들을 둔 학부모들은 자녀들보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민간자율규제 보다는 법적인 제도를 마련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정보통신사업을 진흥한다는 미명하에 인터넷 업계의 이익을 고려하는 정책으로 일관해 오면서 많은 사회적인 폐단을 양산해 왔다. 이제는 산업을 진흥하는데만 열을 올리기보다는 정보제공자와 이용자 모두 유익한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진정한 통신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정책을 입안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제도화하지 않은 민간자율규제는 현실성 없는 이상이기 때문이다.
주성진(기윤실 문화소비자운동본부 정책간사 / gidohasey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