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성탄절을 맞이하며 교계는 오늘날의 성탄문화가 예수님의 탄생 축하라는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점을 지적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 또한 성탄문화가 퇴폐적이고 향락적이어서 그 심각성에 대한 우려도 자주 표명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비기독교인이 변질된 성탄문화를 만들어내고 즐기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교회 안에서까지 왜곡된 성탄문화가 만연된 것은 안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 탄생으로 이 땅에 들어온 참 평화가 교회에서부터 세상으로 퍼져나가지 못하고 교회 안조차도 평화가 깨진 상태로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요하고 거룩한 밤에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가져온 평화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스며들고 그들의 삶으로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해관계 때문에 서로 다투고 싸우는 일이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평화의 노래를 불러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우리 안을 향해서도 세상을 향해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던져준 평화의 노래를 기억하고 불러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생명을 내어던지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는 것 자체가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하나님으로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시고자 할 때 예수님은 마리아의 자궁 속에서 탯줄에 자기 생명을 거는 일부터 하셔야 했다. 그것은 생명을 걸고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헌신과 사랑이다. 이런 헌신과 사랑 없이 상업주의에 물들어 자기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세상에 성탄절 의미로서의 평화를 전해줄 수 없다.
예수님 탄생은 죽은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는 소망의 사건이다. 이런 소망이 교회로부터 빠져나간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심각한 현실이다. 생명의 빛이 들어온 상황에서 따뜻하고 정겨운 나눔이 일어나고 기쁨과 환희가 넘쳐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형편은 여전히 소망을 잃어버려 씁쓸한 맛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남아 있다. 여기서 소망의 춤을 추어야 함을 깨닫는다. 잃었지만 깊은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춤사위를 지친 영혼들을 향해 풀어내야 할 것이다.
어둠 속이지만 내면 속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소망의 춤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산 자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고 계시다. 이 능력에 대한 믿음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생명을 던져주는 춤을 살려낼 수 있다. 이 춤은 낮아질 때만이 출 수 있다. 부와 권세를 좇아 높아지려는 자에게는 그 춤이 멈추게 되지만 낮아지는 겸손을 선택하는 자에게는 그 춤이 살아난다. 낮아짐은 소망을 꺼내는 의지이다. 바로 그런 낮아짐을 통해 소망의 춤을 새로 발굴하는 일은 의미 없이 형식과 행사만 남이 껍데기 문화가 되어버린 성탄 문화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라 하겠다.
2002년 크리스마스에는 잃어버린 의미를 찾는 새 출발의 해가 되기를 구주 예수께 소원해 본다. 그리하여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되찾은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박양식 교수(숭실대학원 기독교문화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