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러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해야 할 책임이 있다. 특히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비신앙적 행태들, 특히 이기적 교파주의와 권위주의는 가장 먼저 척결되어야 할 과제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로부터 다양한 교파로부터 선교를 받아왔고, 따라서 선교초기부터 교회일치를 통한 선교협력이란 커다란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대, 소위 교세성장이라는 미명하에 교회 일치의 가시적인 성과들을 이루기 위한 노력들이 부족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복음화라는 미명하에 교회의 몸불리기에 신경을 쓰다보니 일치와 화해를 통한 선교협력이 보다 교인쟁탈전으로 계속되었고, 여기서 타교단에 대한 비방을 통해 자기 우위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들이 일치를 저해해 왔다. 특히 교회일치신학에 대한 인식의 결여는 교파간에 특히 천주교와 개신교간의 뿌리 깊은 불신을 조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문제점들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을 때 교회는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음은 자명한 이치일 것이다.
다행히 최근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국교회 안에 이른바 "그리스도교 일치회의"를 통해 새로운 일치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과거 한국교회의 일치운동은 다분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혹은 한기총을 중심으로 한 개신교간의 반쪽짜리 일치운동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 안에서는 엄연히 개신교와 천주교의 두 신앙적 전통이 현존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일치회의"를 통한 일치운동은 신,구교를 아우르는 범교회적인 일치운동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일치회의"는 매년 1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가맹교단들과 천주교, 루터교, 정교회 등이 함께 참여해서 지키는 "그리스도인 일치기도회"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기도회는 가톨릭의 제2차 바티간 공의회 중인 1964년 11월 21일 교회일치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이 선포된 이후 1966년부터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과 직제위원회"와 "로마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촉진 평의회"가 공식적으로 매년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한 주간을 기도주간으로 설정하고 공동으로 자료를 준비해서 지키고 있는 데, 한국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주로 한국천주교회와 대한성공회가 서로 방문을 하면서 기도회를 갖다가 1986년부터 이를 확대하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가맹교단인 예장통합, 기장, 기감, 성공회, 구세군, 복음교회, 기독교대한한나님의성회와 한국천주교 그리고 거기에 루터교회와 정교회가 참여함으로 새로운 일치운동의 틀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 회의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하나이지만, 현실은 여러 교회와 교파로 나뉘어져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이 회의가 추구하는 일치는 어떤 기구적 통합이 아니라 공동의 증언과 선교를 이루어냄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인류와 세계에 희망으로 나타나게 하는 가시적 일치를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교 일치회의는 매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주간의 합동기도회와 더불어 교단장 간담회, 실무회의, 신학자 연구모임, 그리고 신학생 교루모임을 운영함으로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사업의 폭을 넓혀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는 향후 한국교회가 가야 할 일치운동의 방향성을 잘 제시해주고 있다. 즉, 종래 WCC를 중심으로 한 일치운동이 지향하고 있는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근간으로 현장 중심의 선교협력을 통한 일치와 더불어 아직 한국교회 안에서 일천한 각 교단간의 신학적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신앙의 전통들을 배우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들이 요청되는 것이다. 따라서 종래 부정적인 입장에서 서로 다른 전통들을 찾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 격려하고 협력하는 일이야 말로 새 시대가 요구하는 에큐메니칼운동의 방향일 것이다.
김광준 신부(대한성공회 교무원 총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