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고슴도치의 침인가? 독사의 이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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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우리 집 한 귀퉁이에서 고슴도치가 발견되었었다. 정말 등에는 침이 무수히 있었고, 위협이 느껴지면 몸을 웅크린 채 그 침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슴도치의 침에는 독이 있기 때문에 찔리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고슴도치는 빠른 발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점프를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위협적이지는 않다. 따라서 고슴도치의 침은 남을 위협하기 위한 공격용이 아니라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용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북한의 특기 중 하나가 시쳇말로 “오리발 내밀기”이다. 해놓고는 안했다고 말하거나, 약속을 지키라고 윽박지르면, 언제 그런 약속했냐는 식의 전술을 능란하게 구사하는 것이 북한이었다. 그런데 그런 북한이 이번에는 순진해 보이도록 솔직해진 모습을 보였다. 납치 인정이 그랬고, 핵개발 시인이 그랬다. 이것은 그만큼 북한이 다급해졌다는 것을 예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일수교는 사실상 북한이 경제재건을 위한 엄청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이다.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이 한일수교와 베트남전이라는 뒷받침에 크게 고무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면, 북한이 북일수교를 위해 애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북한은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교섭과 관련, 지난 2000년 식민지 피해 배상금으로 130억 달러를 일본측에 제시했었다.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전체의 인도적 대북지원 규모가, 북한 경제난이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던 지난 95년부터 2002년 3.4분기 현재까지, 약 8년간 총 24억3천600여만 달러 정도였던 것과 비교해서 본다면 엄청난 금액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북일수교로 가는 길에는 ‘일본인 납치사건’이라는 큰 걸림돌이 놓여져 있었다. 김정일은 이것을 ‘인정과 사과’라는 파격적인 방법으로 풀고, 수교와 그 이후의 배상금에 대한 흥정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전과는 많이 변모한 태도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이후의 전개는 김정일의 의도와는 다르게 펼쳐지고 있다. 북한측은 피납자들 중 일부의 일본 방문을 허가하고, 사망한 자의 유해를 일본으로 보내주는 등의 후속조치를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일본의 반북감정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어 현재 북일수교를 위한 대화가 거의 중단되었다. 결국 북한은 가장 큰 양보를 하고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시인과 지속되는 강경대응 역시 같은 맥락 속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김정일 정권이 얻고자 하는 가장 큰 목표는 ‘현체제의 영속적인 생존’일 것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치, 사상적 기조를 지키면서, 어떻게 지금의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핵심문제이다. 그리고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에서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는 물리적인 수단을 가져야만 한다고 인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북한은 남쪽을 향해 핵개발이 민족의 자주권이 달려있는 문제이므로 남북한이 함께 미국과 대응하기 위해 민족적 공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북한의 주장은 아주 일방적이고 단선적인 것이다. 오히려 북한의 핵개발은 전세계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를 펼쳐갈 수 있는 빌미가 되고 있으며, 미국으로 하여금 남북한관계에 끼어들 수 있는 틈을 그만큼 제공한 것이 된다. 또한 핵무기는 다른 재래식 무기와 차원이 다르다. 만에 하나라도 한반도 내에서 핵을 사용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우리민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입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민족의 미래를 완전한 파괴로 이끌 수 있는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 자체는 민족적 차원에서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한다.

그렇지만 북한의 핵 개발시인이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발을 시인했다는 이야기는 북한의 의도가 더 이상 핵무기를 제조하는 것 자체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에 어떻게든 핵무기를 보유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결코 마지막 순간까지 그 사실을 시인하지 않고 은폐하려 했을 것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북한의 핵이 고슴도치의 침으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독사의 이빨처럼 상대를 공격하여 죽이기 위해 사용될 것인가는 남한을 위시한 외부세계의 대응에 달려있다고 보아진다. 감시카메라와 봉인을 제거하고 핵시설을 재가동하려는 북한의 의도가 핵무기를 기필코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플루토늄 추출과 농축 우라늄 분리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우리가 전쟁과 같은 폭력은 결코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것에 대해 합의한다면, 북한을 몰아붙이기보다는 차분히 달래는 것이 보다 현명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남한 국민들이 남북한 관계에 있어 매우 성숙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북한의 핵문제 관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1%가 ‘북한의 핵문제는 외교적으로,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으며, 북한에 대한 식량. 비료 등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64%가 ‘북한의 핵개발 시인에도 불구,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핵파문 가운데서도 남북간의 여러 대화들이 지속되고 있고, 노 대통령 당선자의 생각도 같은 맥락에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징표로 보여진다.

이번 북한 핵파문은 한민족의 미래에 주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무엇이 우리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더 현명한 결정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움직여야할 때이다. 감정적인 반미운동이나 미군철수 주장, 혹은 반공과 안보의식 고취 등과 같은 근시안적 대응은 자제되어야 한다. 그 대신 뿌리깊은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 가운데 서로 다투는 두 개의 코리아가 아니라, 평화롭게 하나된 코리아의 이미지를 심기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평화의 주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오성훈 목사 (서울신학대학교 북한선교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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