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화려한 인생을 사는 듯 하던 장 안에 있었던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던 짙은 고독과 방황을 보며, 오늘날의 부족함 없이 당당하게만 보이는 현대인들 안에 역시 동일하게 배어있는 깊은 슬픔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장국영 한 개인의 일회적인 육신적 죽음을 보며, 우리 기독교인들은 더 많은 현대인들의 다발적인 영적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듯 하다. 장씨처럼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말할 수 없는 고독과 아픔의 상태에 처해있는 현대인들 앞에서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그들의 고독과 아픔은 바로 하나님의 한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고통 가운데 함께 눈물 흘리실 주님의 눈물을 우리는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 눈물을 닦아드려야 한다. 즉 영혼들에게 전도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의 공허감을 진정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이라고 확신했기에 기독교인이 된 이들이다.
헤어나올 수 없는 죄악의 구렁텅이와 깊은 영적인 갈망의 골짜기 가운데 있던 사마리아 여인을 예수님이 피곤하시다고 그냥 지나치셨더라면 어찌되었을까?
목 말라 애태우는 그 여인을 위해 생명의 물을 가지신 주님은 낮아지셔서 오히려 그 여인에게 물을 구하는 겸손한 자세로 전도를 시작하셨다.
전도는 바로 이런 것이다. 생명의 물을 가진 자가 먼저 낮아져서 물이 필요없다 사뭇 당당한 이들에게 오히려 물을 구하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도는 가난함이고 겸손함이고 간절함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성육신적 사역을 통해서 영혼들의 깊은 갈증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장씨처럼 목말라 죽어가는 영혼들이 오늘 이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정말 간절히 물이 필요하지만, 자신이 물을 필요로 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안타까운 현대인들은 또한 얼마나 많은가?
그렇기에 오늘날 너무나 미련하고 거리끼는 행위 같이 보이는 전도는 그럼에도 아직도 기독교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라고 말했다. 말씀을 가진 우리가 전하지 않으면 고독한 영혼들이 어떻게 듣고 또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현대인들의 말할 수 없는 우울과 방황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우리 기독교인들은 물울 주기 위해 오히려 물을 구하는 겸손의 자세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복음을 외쳐야 할 것이다. 사순절 기간 이것을 기억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