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준의 21세기 해석자 칼럼6]
III. 칼빈의 해석학에서 성령의 역할
4.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조명
칼빈은 해석자가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그를 죄로부터 보호하고 본문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성령의 조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조명과 인간의 해석 사이에 관계에 대해 질문을 갖게 된다. 그것은 성령이 성경을 해석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비록은 칼빈은 성령의 조명이 어떻게 역사하는가에 대한 세밀한 방법을 논한 작품을 쓰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들을 조사해 본다면 우리는 칼빈이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성령의 활동으로서 몇 가지의 강조한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첫째로, 칼빈은 성령이 성경의 참된 저자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해석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성령님께 있다. 결국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해석자는 성령의 도우심을 필요로 한다. 브로밀리 또한 성령이 성경의 저자이며, 성경의 적절한 이해를 위해 본질적이다 라고 말한다. 루터는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신비들을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며, 그의 빛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방법으로 성경을 왜곡시킨다고 말했다.유일한 해석자로서 성령을 말하는 것은 성경의 둘레를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칼빈은 ‘성령 그 자신이 해석자’ 라는 말로써 그의 해석학의 신학적 전제를 설명한다. “복음의 교리의 원천인 성령은 우리에게 그것을(복음의 교리) 열어 줄 수 있는 참된 유일한 해석자이시다. 그러므로 그것을(복음의 교리) 판단 할 때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조명을 받지 않는다면 반드시 장님이 될 수밖에 없다.“ 칼빈은 말하기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성령은 스스로가 참된 유일한 해석자다”라고 한다.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신 성령은 확실한 해석자“ 라고 말한다. H. W. 루쏘는 이것이 영적으로 잘못된 해석이라고 오해받지 않게 칼빈의 견해를 방어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령이 유일한 참된 해석자로 보는 칼빈의 교리는 쉽게 말한다면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성경을 정확하기 해석하기 위한 조종은 인간의 해석 활동이 역할을 하지 않은 하나의 순수한 신비적인 사건이다. 그런 영적인 해석은 칼빈이 설명을 분명하게 주지 않지만,본문 해석에 광범위하게 공헌을 주었다.
칼빈은 비록 인간이 성경을 해석하지만, 성경 해석의 참된 권위는 인간이 아니라 언어의 최고 권위자이신 성령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성령은 내적 선생이요, 충성스런 해석자이다.
성령이 유일한 참된 해석자이다‘ 라는 칼빈의 견해는 결코 성경 해석에 있어서 인간적인 측면을 결코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하게 성경의 저자는 성령의 도구임을 주장한다. 칼빈은 말하기를 모세는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지 않았고, 성령이 우리에게 유용한 것을 구술하시고, 그의 입에 그것을 제안하셨다.“ 라고 한다. 사도들은 성령의 확실하고 진정한 기록자들이었다(certi et authentici Spiritus Sancti amanuenses). 그러므로 칼빈은 성경의 모든 책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칼빈에게는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성경 저자들은 성령의 도구들이었다. 성경의 문학적 스타일에 관하여 논평하면서 칼빈은 인간 저자의 정신은 성경을 산출하는데 남아 활동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칼빈 또한 이 과정은 성경 저자들의 전체 인격들이 관련되었다고 믿었다.결과적으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우리 자신만을 믿지 말고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있게 하시는 분은 참된 해석자이신 바로 성령이시다.
두 번째로, 칼빈은 성령의 의도를 성경 해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했다.칼빈에게 있어서 성령의 의도는 성경의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해석자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의도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의도를 이해함이 없이는 결코 성경의 참된 의미를 이해 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이 말씀하신 그 목적에서 우리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참된 의미를 얻을 수 있다.”칼빈 만큼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의도를 강조한 해석자는 없었다. 스가랴서 5장 1절의 주석에서 칼빈은 말하기를 “성령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해석자들은 결코 이 예언을 이해 할 수 없다고 한다.그는 성경의 구절들에서 성령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칼빈이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저자를 강조한 사실은 그의 주석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었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령의 의도란 무엇인가? 칼빈은 성령의 의도를 우리 마음속의 새로운 내적 계시로 보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성령의 의도는 성경 밖에서 오지 않고, 오히려 저자가 성령의 말씀을 통하여 기록한 본문 안에 나타난다. 칼빈은 성령이 선지자들이나 사도들과 같은 저자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성령의 의도를 성경 저자의 의도와 동일시한다. 칼빈은 성경의 참된 의미를 성령의 의도로 본다. 그에게 있어서 성령의 의도를 찾는 것은 본문의 참된 의미를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 성령의 조명에 의하여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 리쓰는 칼빈이 믿음의 유추를 규정하는데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말하기를 “ 칼빈이 믿음의 유추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데 실패한 것은 궁극적으로 그가 강조한 자신의 신학에서 성경의 통일성을 충분하게 다루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칼빈이 믿음의 유추나 사랑의 유추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그의 신학을 매우 어렵게 인도한 반면에 불링거는 믿음의 유추와 사랑의 유추를 발전 시켰다고 한다. 그러므로 리쓰는 칼빈이 믿음의 유추에 의하여 성경의 본문을 해석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탑페르너는 주장하기를 칼빈은 성령의 의한 믿음의 유추를 사용했다고 한다. 성례전에 대한 설명에서 그는 말하기를 칼빈이 해석학적 법칙으로 믿음의 유추를 성례전 설명에 사용했다고 한다.리쓰의 견해와 탑페르너의 견해 가운데 믿음의 유추에 관해 어떤 것이 정확한 것인가? 탑페르너의 진술이 리쓰의 견해 보다 더 정확하다. 푸르만에 따르면, 칼빈의 장점은 믿음의 유추에 의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한다.칼빈은 말하기를 “믿음은 성령의 주요한 사역이며, 오직 믿음에 의해서 성령께서 우리를 복음의 빛으로 인도한다” 고 한다. 성경은 믿음이 있을 때만 이해가 될 수 있다. 칼빈에 따르면 “오직 믿음이 이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해는 믿음과 분리될 수 없다.”칼빈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인간 이성이 아닌 성령을 통해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것은 그의 유일한 선물이며, 또 믿음은(오직 믿음에 의하여 그는 올바르게 알려진다) 성령의 조명으로부터만 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인간의 정신은 그것을 이해를 할 수 없고, 우리를 단지 본성으로 인도한다.”칼빈은 믿음이 이해를 앞서야 한다고 믿었다. “사실상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 순종함과 함께 시작하며, 이해를 앞서며, 그런 방식으로 믿음은 확실한 지식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을 조명한다.”“눈으로도 결코 보지 못하고 귀로도 결코 듣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초월하는 모든 것들을”믿음에 의해서 우리는 이해 할 수 있다. 믿음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더욱더 많은 이해의 불빛을 불태울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역사는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고, 우리를 조명하는 성령의 힘에 의해서 된다. 우리가 믿음에 따라 성경을 해석 할 때 성령은 우리가 육신의 이성에서 보호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인도하신다.
네째로, 칼빈은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성령의 조명을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예를 들면 칼빈은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오 전능한 하나님 우리에게 올바른 판단력이 없을 때, 또 우리 마음이 대낮에조차 소경이 될 때, 당신의 영으로 우리를 비추사 당신의 말씀의 빛에 들어가게 하소서.”칼빈은 우리가 성령의 의도에 의해 다스려지기 위하여 기도해야 함을 보여 주었다.우리는 기도를 함으로써 “올바른 이해를 주시는 성령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을 수 있다.“챠일즈도 성령의 조명을 위하여 우리가 기도하는 일이 올바른 성경 해석을 위하여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칼빈과 챠일즈와 같은 의견을 갖지 않은 학자들은 성경 해석을 위해 기도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다. 칼빈은 성령의 내적인 조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되면 우리는 “단지 문자를 배우는 열매 없는 일에 힘을 소비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주장한다.” 칼빈의 기도 생활과 그가 성령을 의지하는 일 사이에 하나의 고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칼빈은 성경 해석자는 그의 부족과 무지를 알기 위하여 기도해야 하고, 성령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을 믿었다.
안명준 교수(평택대학교,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