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준의 21세기 해석자 칼럼7]
IV. 21세기의 바람직한 해석자를 위한 제안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삶의 정황 속에서 해석행위가 왜 중요한지 특히 성경 해석자에게 있어서 성령의 역할이 어떻게 실행되는지를 칼빈을 통하여 보았다. 이제 21세기에 바람직한 해석자를 위하여 몇가지로 제안한다.
1. 21세기의 바람직한 해석자는 성경과 자신이 사는 시대에 대하여 항상 열린 마음을 갖고 자신의 사고를 시대에 맞게 말씀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성(transformation)이란 개혁신학의 강력한 힘이다.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로마 카톨릭교회는 전통에 묶여서 정지된 신학이기에 기존의 자신들의 전통의 변화를 허락하지 않으며, 개인의 성경 해석을 금하지만, 개혁신학은 성경에 의하여, 성경을 향하여 항상 새롭게 온전하게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신학이다. 따라서 개혁신학에 변화를 추진하기 위한 원동력은 성경이라는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아울러 시대에 맞게 올바르게 성경을 해석하려는 해석자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보여준 중요한 교훈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점이었으며, 자신들은 이것을 사역의 소명으로 보았다. 따라서 올바르게 성경을 해석하는 행위는 교회를 개혁하는 출발점이 되며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참된 도구가 된다. 루터와 쯔빙글리 그리고 칼빈의 경우에서 그들의 올바른 성경의 해석이 종교개혁의 불을 당겼고 그들이 살았던 삶의 현장을 변화시켰던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바른 성경 해석에 근거하여 세워진 개혁된 교회는 힘이 있었고 사회와 역사를 주도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2. 21세기의 바람직한 해석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철저한 해석훈련이 요구된다. 여기에는 영적 훈련과 학문적인 훈련이 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적으로 연마하지 못할 경우에는 이단자로 전락하기 쉽다. 최근 영생교회 신도들이 우종진목사와 더불어 자살을 통하여 고귀한 생명을 허망하게 버렸다. 도대체 우목사는 성경 해석을 어떻게 배웠기에 이런 사태를 만들었는지 안타깝다. 기독교의 모든 이단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결과이다. 다시 한번 해석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된다.
창세기 2장 19절에서 23절까지 보면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영적이며 지적으로 해석하는 훈련을 받았다. 우리의 해석훈련은 학문적인 방법을 습득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성스러운 해석자로서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영적 해석훈련은 해석자의 태도를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자신을 복종하며 자신을 말씀으로 경건하게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이런 훈련이 지나치게 신비주의적이며 영성 만능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학문적인 훈련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칼빈이 당대의 인문주의의 훈련을 통하여 철학과 수사학을 소화하여 자신의 해석적인 작품 속에서 사용했듯이 우리 또한 세상의 학문과 새로운 이론 그리고 새로운 방법을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 따라서 해석자는 영적인 면과 학문적인 기술을 잘 겸비하여 해석에 사용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칼빈의 로마서 주석은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칼 바르트가 이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는 칼빈의 로마서 주석이 역사적이며 영적인 해석을 분명하게 결합시킨 점에서 기쁨을 얻었다고 하면서 칼빈의 로마서 주석은 자신의 Der Römerbrief의 연구에 외형적인 모델뿐만 아니라 로마서의 내용을 위한 확신한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해석을 위한 지식인으로서 최대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원어에 대한 능숙한 사용은 물론 세상의 학문적인 방법들을 습득해야 한다. 정보에 익숙한 문화인으로서 그 정보를 분석하고 사용하여 자신의 해석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하루하루 지식과 정보가 발전하는 사회에 사는 우리는 정보와 지식을 처리하는 능력을 배워야 21세기의 바람직한 해석자로서 준비를 갖추게 된다. 이런 학문적인 습득과 영적인 훈련을 지속적으로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는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참된 해석자는 성경에 근거하여 미래의 역사를 예리하게 미리 진단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해석자는 미래에 대한 예언자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예언자적 역할은 소위 말하는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한국교회에 망령처럼 붙어 다니는 극단적 재림사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성경과 세상의 역사와 학문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철학과 과학 그리고 문화와 역사가 질문하는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가지고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정확한 해석을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세계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준비해야 한다. 인류의 문명과 변천 그리고 발전과 전망에 대한 해석자의 뛰어난 감각을 소유해야 한다. 문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한다. 신학교의 수업은 단지 신학자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런 모든 학문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의 중요성을 그리고 어떻게 신학과 다른 학문들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학생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말씀의 해석자는 성경신학에 근거하여 미래의 세상의 역사를 종말론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4. 하나님의 영이 해석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거룩성이다. 해석자는 성스러운 사람이다. 해석자 자신이 본질적으로 성스러워서가 아니라 성경 해석의 주체가 되는 성령이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시며,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거룩한 분이기 때문이다. 해석자란 말씀에 대한 신성한 사역을 감당하는 자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일이란 일시적인 황홀 속에 지껄이는 신비한 계시도 아니며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를 심리학적으로 조사하는 일도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위한 자신의 거룩한 삶을 통한 신성한 봉사의 사역이다. 따라서 해석자는 자신이 거룩하고 성스런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항상 인식하여 한다. 참된 경건와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유지할 때 참된 해석자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성경의 해석을 바르게 할 수 있다. 요셉과 다니엘의 경우에서 그들의 삶은 유대인 종교의 언어적인 놀이가 아니었다. 그들이 해석시에 사용한 언어는 참된 해석자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해석이 힘을 가지고 있었던 배후에는 그들의 거룩한 삶이 있었다. 말씀의 해석자는 거룩함을 보여야한다. 비록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죄악에 물들지 않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세속에 자신이 더렵혀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신성한 해석적인 능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받게된다. 세상 사람들이 목사들을 무시하는 이유는 바로 너무나 세속적이고 또 깨끗한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무당보다 더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삶을 산다면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지금 시대는 강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성결한 삶을 사는 해석자가 되어야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힘과 권위를 얻을 수 있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Ebeling은 sola Scriptura의 원리는 오직 경험(sola experientia)의 원리를 통해 해명되고 완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루터는 오직 경험이 신학을 만든다(sola experientia facit theologum)라고 말한다. 따라서 경험을 어떻게 하는지는 신학과 해석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인으로 거룩한 삶의 체험은 올바른 신학의 형성과 성경 해석을 위하여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성화가 칼빈 신학의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할 때 개혁주의 해석자의 거룩한 삶은 성경 해석의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로마서 12장 2절은 우리가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수동태이며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고 거룩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에 의해서 날마다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바울은 이어서 우리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도록 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할 것을 말한다. 바울의 말을 종합하여 말한다면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성결한 삶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는 참된 해석자로 거듭나게 된다.
5. 성령의 해석자는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주권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현대의 급진적인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역사하신다. 성령과 말씀의 관계에 대하여 Lutheran은 성령이 말씀을 통하여서(per verbum)만 역사 한다고 하여 성령이 말씀 안에 구속되는 듯한 주장을 하지만 Reformed는 성령이 말씀과 함께(cum verbo) 주권적으로 역사하신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해석자는 성경의 해석시에 자신 안에서 성령이 이렇게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도록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에 대하여 예민하게 촉각을 세우고 그의 인도하심과 조명하심을 통하여 말씀을 해석 할 때 겸허하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신학을 연구하는 자는 성령 충만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인간이 자신의 지혜로 모든 학문을 통달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직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의 도움이 항상 함께 해야 한다. 칼빈은 이해의 영이 하늘로부터 임하는 자가 적절하고 충성스런 하나님의 해석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참된 해석자가 되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다. 김영한 교수는 개혁신학적 사고의 원리는 오로지 성령에 입각한 사고라고 말한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성령에 의한 해석원리들이 방법론적으로 많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6. 21세기 교회를 위한 해석자로서 준비가 필요하다. 최근 한국에서 열린 세계칼빈학회가 그주제를 칼빈의 목회사역에 두었다. 칼빈의 신학은 어떤 상아탑의 이론을 쌓았던 스콜라주의의 재생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신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해 주었다. 그의 주석이 바로 이런 실제적인 기독교 공동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오늘날도 그 영향은 지속되고 있다. 신학의 목적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 되어야함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21세기의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해석자로서 준비가 요구된다. 칼빈이 말했듯이 해석자의 최선의 노력은 교회의 공적인 유익을 위하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해석자의 멧세지를 듣는 자들에게 유익과 도움을 주는 공헌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준비해야 한다.
7. 한국적 해석학을 위한 새로운 모색이 있어야 한다. 서양의 기독교는 한국교회와 신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많은 혜택을 보았고 앞으로도 서방 기독교의 영향은 많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제 신학자들은 기독교는 서구의 기독교라는 등식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점점 민족과 문화의 다양성을 중요시하면서 기독교는 다양성을 갖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물론 기독교는 성경을 중심으로 통일성을 갖는 유일한 계시종교로서 특성이 있다. 다양성과 통일성을 인정하면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기독교로서 발전하고 더 나아가 세계 기독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한국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오늘날 신학은 한국인 위한 한국적인 특징을 갖는 시대적 요구를 요청 받고 있다. 여기에 해석학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하다. 서구의 신학은 자신들의 철학과 문화를 이용하여 기독교를 발전시켰다. 이런 것들이 자신들의 해석학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도 5천년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와 풍습과 전통과 사상이 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이 성경에 의하여 검증받고, 성경적인 방법과 연결되고 새롭게 조명되어 한국적 해석학의 태동과 발전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한국의 전통사상을 성경을 통하여 다시 한번 재생시켜 한국 기독교뿐만 아니라 세계 기독교에 큰 공헌이 되는 새로운 성경 해석학의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
안명준 교수(평택대학교,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