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절규가 들리지 않는 이유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지난 12일, 충현교회에서는 수십여명의 여성들이 교회 건물 내로 진입하고, 교회 직원들이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작은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실랑이가 있었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지만 항상 점잖고 품위있는 이미지로 유명한 충현교회에서 벌어진 이같은 모습은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날 실랑이는 충현교회가 장애인들을 위해 운영해온 시설인 '충현복지관' 내부의 갈등으로 인한 것이었다. 재단법인측이 임명한 '재단 사무국장'을 복지관장이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무국장을 임명하자, 재단측이 관장이 임명한 사무국장과 관장을 연이어 해임한 데서부터 10년간 '모범적으로' 운영돼왔던 충현복지관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문제가 이렇게 되니 이같은 알력의 피해가 고스란히 장애 아동들에게 왔기에 학부모들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재단측은 몇 차례에 걸쳐 학부모회와 만남에 불참을 통보해왔다. 이에 학부모회는 12일 직원노조를 제외한 면담을 제안했으나 재단측이 또다시 불참을 통보함에 따라 약속대로 만나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이날의 실랑이가 일어난 것이었다.

"약속을 지켜주세요",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세요" 어머니들이 외치는 것은 '구호'가 아니었다. 절박함에서 터져나온 '외침'이었을 뿐이었다. 당연했다. 그들은 투쟁에 익숙해진 노동자도 아니고, 운동권 학생들도 아니라 그저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두었을 뿐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주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맞은 재단측의 반응은 실망스러웠다. 이들을 맞은 재단측 한 장로는 어머니들의 외침에 당혹스러워하며 "이런 강압적인 분위기에선 대화를 할 수 없다"고 말하고는 자리를 피했다. 물론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자신들을 만나달라며 교회로 들어가려는 어머니들에게 거친 제지도 있었다.

물론 재단이라고 해서 어찌 할 말이 없겠는가. 재단측은 인사권 문제는 학부모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고, 학부모들이 자신들을 비방하고 있으며, 자신들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모임에 불참을 통보했다.

그러나 이같은 이유들은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만나지 못할 이유'까지 되긴 힘들어 보인다. 어찌됐건 그들은 자신들의 복지 서비스에 대한 고객이고, 세상 어디서도 달갑게 맞아주는 곳이 많지 않은 장애아를 둔 어머니들이다. 또 애초에 약속대로 만나주었다면 재단측의 말마따나 '강압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이유가 어디 있었겠는가.

어쩌면 어머니들을 만나주지 않은 진짜 이유는 자신들을 향한 비판으로 인해 상처입은 '자존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여기서도 우릴 이렇게 대하면 우린 대체 세상 어디서 이 심정을 호소해야 하느냐"고 외치는 어머니들의 절규조차 들리지 않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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