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내가 안양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던 때의 이야기다. 동료 죄수 중에 원충연(元忠淵,1912-2004) 대령이란 분이 있었다. 박정희 장군의 비서실장으로 있다가 소위 반혁명사건(5·16군사쿠데타 주체세력에게 민정이양을 주장)의 주범으로 검거되어 모진 고문 끝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로 감형이 되어 살고 있는 분이었다.
이 어른이 비록 옥살이를 하면서도 다른 죄수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으며 지내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런 그가 부러운 생각이 들어 내가 한번은 그에게 물었다.
“원 대령님은 같은 빵잽이(‘감방에 사는 사람’의 속어)이면서 어떻게 다른 죄수들로부터 그런 존경을 받습니까? 우리는 성직자이지만 신도들로부터 그만한 존경을 받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하고 물었더니 원 대령께서 진솔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이런 존경을 받게 된 것은 나의 인격이 훌륭해서나 신심이 두터워서가 아닙니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습니다”하며 다음의 사연을 일러 주었다. 신앙의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를 말해 주는 대목이겠기에 30여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이야기이다.
“내가 반혁명사건에 연루되어 이문동에 있는 보안사 취조실에 끌려갔을 때입니다”하며 자신이 죽음에 직면한 절대절명의 처지에서 체험하였던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길에 대하여 간증했다.
“나는 박정희 장군을 위시한 혁명 주체 세력인 군인들이 정권을 민간에 넘기고 군인들은 순수 군인으로 군으로 돌아가 국토방위에 전념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였어요. 그래서 군사혁명이 어느 정도 성공하여 혁명의 명분을 쌓게 되었으니 우리들 군은 군으로 돌아가고 정권은 우리들이 처음 약속하였던 바대로 민간에 넘겨주고 우리는 ‘군 본연의 자리로 돌아갑시다’고 건의하였어요. 그러나 박정희 장군은 이미 옛날의 군인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박정희 장군의 그런 변화된 모습을 보고 군은 군으로 돌아가는 운동을 일으켰지요. 그것이 반혁명 사건으로 된 것입니다”
“내가 이문동에 있는 군보안사 취조실로 끌려가 상상하기 어려운 고문을 받게 되었어요. 고문이 진행되는 중에 수차례 기절하고 깨어나고를 되풀이 하였어요. 그런데 마지막 고문이었던 것 같아요.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몸이 너무나 망가져 내 손가락을 내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팔다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온 몸이 식어가는 것을 느꼈어요. 마지막에는 심장 부분만을 제한 몸 전체가 굳어져 가는 것을 느꼈어요. 그때 나는 내가 지금 죽어가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래서 내가 믿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회개의 기도를 드렸어요”
“하나님 저가 군인으로서 나라 위해 일하다가 죽게 된 것은 이미 각오한 바이니 여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가 나의 어머니께서 평소에 말씀하신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세상 일 하다가 죽게 된 것을 회개합니다’하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어요.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려 내리는 것을 느끼며 회개했지요. 그런데 그때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고문으로 완전히 망가진 몸으로 죽음을 맞을 차비를 하고 있을 때에 천정에서 밧줄이 내려오는 것이었다. 고문실은 주로 지하에 위치하고 천정 높이가 낮다. 낮은 천정에서 느닫없이 내려오는 밧줄을 보며 난데없이 왠 밧줄일까? 하며 의아하게 여기고 있을 때 영음(靈音)이 들려 왔다. 영음이란 하늘로서 들리는 음성이다.
그의 귀에 들리는 소리의 내용인즉 “이 줄을 잡아라”는 말이었다. 그가 그 말을 들은 순간 고문으로 인하여 손가락도 움직일 수 없었던 몸에서 갑자기 힘이 솟아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그 밧줄을 꽉 잡았다. 그랬더니 두 번째 음성이 들리는 것이었다.
“다시는 이 줄을 놓지 말찌니라.”
이렇게 두 번째 음성을 들은 후로 온 몸에 힘이 쏟으며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전후 사연을 들려준 다음 원대령은 나에게 다음 같이 말해 주었다.
“김선생님, 제가 다른 죄수들로부터 어떻게 존경을 받느냐고요?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나의 인격이 존경 받을 만하거나 신앙심이 남달리 두드러져 존경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런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 이후로 나의 삶의 자세가 바뀐 탓입니다. 이 옥중에서 무기수의 기약없는 나날을 살아가면서 좌절감이 들 때나 분노가 치밀 때나 나는 항상 그 때의 밧줄을 생각하며 나를 지키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묵상하곤 합니다. 그것으로 나 자신을 추스려 나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사노라니 다른 죄수들로부터도 무언가 인정을 받게 된 것이지요”
나는 지금도 원대령님의 말을 자주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삶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은혜의 밧줄을 생각하곤 한다.
김진홍 목사(두레교회 담임, 두레공동체 대표)
[김진홍 칼럼]이 줄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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