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춘 목사의 크리스천 경영칼럼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는 특이하다. 그는 10대 때에 독일군에 징집돼 전쟁터로 내몰린다. 당시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그는 독일전선에 배치됐다가 그만 영국군한테 포로가 되고 만다. 그는 3년 동안이나 포로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히틀러의 독일군이 연합군한테 패전을 거듭하자 수많은 독일인들이 절망에 빠지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 목숨을 끊는 독일인들도 있었다. 그도 절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히틀러가 병사들에게 나눠준 괴테의 책과 니체의 책을 갖고 있었지만 그 책들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런데 군목이 그에게 시편이 딸린 신약성경 한 권을 주었다. 그는 크리스마스 때나 다른 절기 때에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간 것 빼고는 제대로 신앙생활을 해 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제 포로가 돼 성경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시편을 읽어가다가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희망이다. '내가...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139:7-8).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정말 주님이 지옥과도 같은 이 포로수용소에도 계실까.' 그러다가 그는 확신하게 된다. '그렇다. 주님은 철조망 뒤에도 계신다. 아니, 철조망보다 더 미미한 것들의 뒤에도 계신다.' 그는 한밤중에 수용소 복판의 작은 언덕 위에 있는 예배당 주위를 맴돌면서 희망을 키워나갔다. '나는 반드시 이 수용소에서 풀려날 것이다.' 그 희망대로 그는 드디어 수용소에서 풀려났다.
원래 그는 양자 물리학을 전공하고 싶어 했으나 그것을 포기하고 신학공부에 매달렸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그 유명한 희망의 신학을 전파하게 된다. 희망의 신학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이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현재의 이 세상은 어렵고 모순투성이인 것 같지만 반드시 주님이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다. 현재의 이 세상은 부패한 것 같고 십자가의 고통이 있는 것 같지만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언젠가 이 세상도 완전해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희망의 신학이다. 주님의 부활을 믿고 주님의 재림을 믿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부활과 주님의 재림을 믿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미래를 희망하는가. 아니면 현재 이 세상의 불의와 개인적인 고통 때문에 절망하는가. 주님은 이전에도 승리하셨고 지금도 승리하고 계신다. 앞으로도 완전히 승리하실 것이다. 언뜻 보기에 십자가는 완전한 패배다. 저주받은 사람이 매달리는 곳이 바로 십자가였다. 그러나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아주 극적인 승리였다.
“여러분도 전에는 죄와 할례받지 못한 육적인 욕망 때문에 영적으로 죽어 있었으나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여러분을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에게 불리한 율법의 채무증서를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권세를 짓밟아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골2:13-15).
우리는 다 죄 값을 치러야 하는 채무자들이다. 그런데 주님 자신이 몸소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그 채무증서의 효력을 완전히 말소시키셨다. 주님이 사탄의 권세를 짓밟고 승리하시되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승리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십자가가 바로 놀라운 승리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 쭉 계속해서 승리해 오고 계신다.
그 승리의 주님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돕고자 하신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이것이 이 세상의 온갖 부조리 속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선택할 수 있는 근거다. 믿음은 지속적으로 희망을 붙잡는 선택이다.
김종춘 목사(www.dreamel.com 운영자)